위기의 한국 車산업 현주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격변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은 각자의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자동차산업은 내수위축•노사불안•환율하락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아봤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지속발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자동차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자동차협회)는 2월 26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창조경제를 이끄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 방향’ 세미나를 열었다.

이성신 BMR컨설팅 대표는 우선 자동차산업 선도국의 변화 추세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이 20세기 초반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면서 자동차 산업을 주도했다. 20세기 후반 일본이 새로운 생산시스템을 발판으로 자동차 대국으로 성장했다. 21세기 초반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다극화 체제의 경쟁구도가 형성됐다.”

이 대표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판매가 크게 줄어들었고, 신흥국 판매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그 결과 신흥국 판매 비중은 2007년 39%에서 2011년 51%로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로 전세계가 감염되고, 신흥국 성장세가 한풀 꺾인 지난해에는 5% 성장을 하는 데 그쳤다”고 주장했다.

▲ 중국 자동차산업의 성장이 가파르다. 사진은 베이징 시내에서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모습.

그렇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성장한 신흥국 자동차 시장이 둔화세로 돌아선 지 오래다. 2010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위축됐던 일본이 성장한 것을 제외하면 세계 각국의 자동차 시장은 침체를 면치 못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고성장 시대를 마감했다는 이야기다.

향후 5년 자동차산업 미래 결정돼

시장이 위축되면서 자동차 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특히 선진국 자동차 업체의 공세가 거세졌다. 일본 자동차 업체는 동일본 대지진 사태 이후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인센티브 전략을 썼다. 많이 팔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전략은 통했다.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빅 3업체는 2012년 세계 판매 증가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노사가 한 목표를 향해 뛰기 시작한 미국 자동차 업계도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 주요국 업체의 해외 진출 강화 추세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국내시장의 상황 역시 크게 변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업체와 선진국 업체가 정면충돌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시장 역시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수입차 판매량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는 20%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10%대에 진입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규모는 117만대인데, 그중 수입차가 13만대다. 수년만 지나도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국내차를 턱밑까지 쫓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자동차 업체의 성장세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업체는 수출 100만대를 돌파했다. 한국이 수십년간 노력해서 300만대를 돌파한 것과 비교해 상당히 빠른 성장세다. 이성신 대표가 한국 자동차산업의 리스크로 중국 자동차업체의 성장을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대표는 “원가 경쟁력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는 볼보 등 해외 완성차, 전기차업체를 인수하면서 기술격차를 줄이고 있다”며 “중국이 원가경쟁력 확보와 기술력 증진을 바탕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국내 자동차산업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기 위한 과제로 경직된 노사관계로 인한 생산력 저하 문제 해결, 부품업계의 성장 기반 확대와 중견기업화 촉진, 내수시장의 안정적인 성장 기반 구축, 미래형 첨단 자동차 기술 개발 보급과 확대,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 등을 꼽았다.

그는 특히 “첨단 자동차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해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전문인력을 육성해야 한다”며 “아울러 고부가가치 신제품, 신기술 개발과 상용화 지원, 해외진출 지원 등 부품업계의 세계화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 중 하나는 환율이다. 원고-엔저가 장기화할 조짐이 보임에 따라 한국 자동차산업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100엔 환율 1% 하락 시 자동차 수출액은 1.2% 감소해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비용경쟁력 약화 우려


▲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2월 26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창조경제를 이끄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 방향’ 세미나를 열었다.
김기찬 가톨릭대(경영학) 교수는 “원고-엔저 현상의 장기화가 예상된다”며 “국내 자동차산업의 수익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6개월 이내 경상수지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술력을 쌓고, 이를 발판으로 생산성을 향상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소장 역시 기술혁신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각 정부가 경제성장•고용창출을 위해 자국 자동차산업 육성•보호정책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며 “친환경•전장화•스마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소장은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 자동차산업의 향후 5년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수욱 서울대(경영학) 교수는 자동차산업이 다시 성장세를 그리기 위해선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경쟁관계에서 협력관계로 전환하는 대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라며 “자사의 기술력과 경쟁사의 장점을 결합해 새로운 경쟁 우위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하면 늘어나는 R&D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짧아지는 제품주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자동차 전문가들은 “지나친 노동시간 유연화 전략이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지만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휴일근로를 제한하는 근로시간 단축정책을 실시하면 결국은 생산라인 추가설치 등 신규투자가 있어야 생산량을 맞출 수 있다”며 “그러면 고정비가 증가하고 설비가동률이 떨어져 제조원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울러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신규인력을 충원해야 하기 때문에 이는 비용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방향을 유지하되 휴일 근로제한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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