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가 점찍은 썬스타 박인철 회장

 
여기 나이키 신발을 제봉하는 기업이 있다. 루이뷔통과 샤넬의 가방도 제봉한다. 사명社名조차 낯선 국내 중소기업, ‘썬스타’다. 재봉기ㆍ자수기 전문업체 썬스타는 기술력 하나로 세계시장에 우뚝 섰다. 최근엔 재봉기와 IT를 융합한 혁신기술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리에게도 애플 부럽지 않은 혁신기업이 있다.

2월4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WSJ) 인터넷판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국내의 한 중소기업이 봉제산업에 IT를 접목한 재봉기ㆍ자수기 생산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내용이었다. 국내 언론조차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사실이었다. 국내가 아닌 해외언론, 그것도 WSJ에서 크게 조명한 것만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기업은 1974년 단칸방에서 창업한 재봉기자수기 전문업체 썬스타였다. [※ 참고: 재봉기는 옷감을 바느질하는 제품을, 자수기는 천에 여러 색실의 무늬를 놓는 기계를 말한다.]

낯선 사명의 썬스타, 알고보면 알짜배기 기업이다. 썬스타가 해외에 자수기를 수출하는 국가는 대략 150곳. 자동자수기 해외시장 점유율은 13%에 달한다. 자동자수기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던 일본 다지마(시장점유율 12%)를 따돌리고 세계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로만 약 1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시장에선 적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재봉기 국내시장 점유율은 74%로, 1위를 기록했다. 2위와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61%포인트다. 갯벌에 파묻혀 있는 진주 같은 기업, 썬스타는 어떤 DNA를 갖고 있을까. 글로벌 기업이 인정하고, 세계 유명 언론이 주목하는 썬스타의 힘은 뭘까.

일본서 수입하던 재봉기 부품 국산화

 
1974년. 서울 청계천 인근 단칸방에서 조촐한 창업식이 열렸다. 썬스타의 모태, 한국 미싱공업주식회사였다. 창업주는 박정수 썬스타 초대 회장(2006년 작고)이었다. [※참고: 2001년 맏아들 박인철 회장이 썬스타 회장에 올랐다. 그는 회장에 오르면서 사명을 한국 미싱공업주식회사에서 썬스타로 바꿨다. 독자 편의상 썬스타로 기록한다.]

썬스타는 일본부품을 조립해 만든 재봉기를 팔았다. 때마침 국내에선 봉제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한국 미싱공업주식회사는 호황바람을 타고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박정수 창업주의 맏아들 박인철 회장(2대)은 그 무렵 대학(한양대 토목공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군제대 후 부친의 일을 돕기 위해 회사에 잠시 들어갔다. 젊은 박 회장은 불만이 하나 있었다. “왜 일본 부품을 수입해서 재봉기를 만들까”라는 것이었다. 그는 종종 이런 생각에 빠지곤 했다. “기술을 갖고 있으면 봉제시장의 선두주자인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텐데….”

그는 부친의 가업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일본업체를 한번 꺾어보겠다는 의지가 발동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선 안목부터 키워야 했다. 때마침 부친이 유학을 권했다. “인철아, 세계의 산업을 두루 공부하고 오거라.” 1981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웨인스테이트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특히 그는 재봉기의 핵심부품인 ‘제어장치’에 관심을 쏟았다. ‘제어장치’ 원리만 잘 배워놓으면 써먹을 때가 있을 것 같았다.
2년 후 생산이사로 돌아온 박 회장은 회사 재무제표부터 살펴봤다. 2년새 매출은 몰라보게 커졌는데 수익성은 턱없이 낮았다. 재봉기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좋을 리 없었다. 일본 부품에만 의존한 결과였다.

그는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일본도 기술을 개발하는 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라며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우선 재봉기에 들어가는 기본부품인 ‘본봉本縫’부터 개발하기로 했다. 박 회장은 전 직원을 모아놓고 말했다.

“1년 안에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을 우리기술로 개발하겠다.” 수입에 의존하던 사업구조를 바꾸겠다는 얘기였다. 1984년 겨울의 일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봉기 한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5000개에 달했다. 사람들은 ‘무모한 도전’이라며 핀잔을 줬다. ‘해외에서 공부해서인지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박 회장 역시 눈앞이 캄캄하긴 마찬가지였다. ‘재봉기 부품을 국산화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의 손에는 설계도면도, 매뉴얼도 없었다. 기술 조언을 받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때 그의 눈에 재봉기 한 대가 들어왔다. 세계 재봉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브라더의 재봉기였다. 박 회장은 6명의 연구원을 호출했다. 무작정 재봉기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라고 령令을 내렸다. 박 회장 역시 소매를 걷어붙였다.

 

컴퓨터 시스템 접목한 자수기 개발

‘분해→조립→다시 분해→재조립.’ 지루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박 회장은 솔루션을 찾았다. 재봉기 부품의 작동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이다. 부품개발에 속도가 붙었고, 1985년 부품 국산화에 성공했다. 박 회장이 ‘우리 손으로 부품을 만들자’고 선언한지 꼭 1년 만이었다.

직원들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헛꿈꾼다’며 비아냥거리던 사람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는 자만할 틈이 없었다. 그 무렵, 일본이 혁신적인 재봉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바느질이 끝나면 자동으로 실을 잘라주는 ‘자동사절’ 재봉기였다.

박 회장은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일본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선 1분1초도 쉴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막 재봉기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한 썬스타가 자동으로 실을 자르는 기술을 개발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정면돌파’가 어렵다고 판단한 박 회장은 ‘측면돌파’를 꾀했다. 벨기에 재봉기 생산업체와 손을 잡고 ‘자동사절’ 재봉기 개발에 힘을 쏟았다. 꼬박 1년을 투자했고,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터졌다. 재봉기에 제동을 거는 전자브레이크가 3개월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하루에 15시간 이상 기계를 돌리는 국내와 8시간 근무제가 정착된 유럽의 노동환경 차이에서 비롯된 오류였다.

 
박 회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낙심한 연구진을 달래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재봉기라면 알아서 척척 제동을 걸 텐데. 자동으로 제어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한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힘이 좋은 모터를 달면 전자브레이크의 수명이 길어질 것 같았다. 마침 ‘한번쯤은 써먹을 것 같았던’ 미국에서 공부한 제어장치기술이 생각났다. 또다시 사투死鬪, 시행착오를 거치며 매일 밤을 지새우길 7년. 썬스타는 일본업체보다 한발 빠르게 재봉기 전자제어장치인 ‘서보모터’를 개발했다. 일본보다 빨랐으니 당연히 세계 최초였다.

1992년 야심작 ‘서보모터’를 장착한 썬스타의 자동사절 재봉기가 글로벌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장이 꿈틀댔다. 없어서 못팔 정도로 제품이 팔려나갔다. 썬스타는 단숨에 세계 재봉기 시장 3위로 뛰어올랐다. 썬스타의 추격전에 일본 재봉기 업체 일본 브라더와 주키도 혀를 내둘렀다.

썬스타의 다음 행보에 업계의 시선이 쏠렸다. 자동절단 재봉기로 큰 성공을 이뤘으니 보수적 경영을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박 회장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깜짝 발표를 했다. “재봉기로 얻은 수익을 자수기를 개발하는 데 쏟아붓겠다.” 재봉기 시장을 넘어 자수기 시장을 노리겠다는 출사표였다. 간신히 세계 3위 재봉기 업체로 발돋움했는데, 이를 스스로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루이뷔통 직원이 감탄한 기술력

▲ 박인철 회장은 고민 끝에 결정한 일이라면 돌아보지 않고 추진한다. 그리고 묵묵하게 기술개발에 매달린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왜 그래야 하느냐’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박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봉제시장의 변화가 나타났다. 경쟁업체가 많아지면서 재봉기의 단가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가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려면 블루오션에 진출하는 게 능사였다.

박 회장의 자수기 시장진출 선언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세계 재봉기 시장에서 1ㆍ2위를 다투는 일본 브라더와 주키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자동자수기 시장에 진출한 일본 다지마의 아성이 워낙 탄탄했다. 자동자수기 개발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자수기의 핵심은 정교한 기술력이다. 섬유에 무늬를 넣으려면 재봉틀이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기계제어를 통해 자수를 하는 일본 다지마 제품이 시장을 점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기계제어를 넘을 만한 기술력도 그때까진 없었다.

예상대로 자동자수기 개발과정은 험난했다. 재봉기 부품개발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수기에 들어가는 부품만 2만7000여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썬스타 연구진은 다시 합숙에 들어갔고, 박 회장은 승부수를 띄웠다. “자동자수기에 컴퓨터 시스템을 적용하겠다.”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해 자수를 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거였다. 일본 타지마의 ‘기계제어 기술력’을 훌쩍 뛰어넘는 구상이었다.

사람들은 또다시 “이번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컴퓨터 시스템의 인프라조차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PC 자동자수기인가’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박인철 회장은 팔을 걷어붙였다.

연구진과 함께 합숙하다시피 기술개발에 몰두했다. 한번 결정한 일이라면 돌아보지 않고 추진하는 그의 성미가 발휘된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샘작업으로 박 회장은 또다시 일을 냈다.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한 자동자수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업계 사람들은 ‘기적’이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한국에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의 일이었다. 썬스타가 컴퓨터 자동자수기를 개발했다는 소식에 업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썬스타가 일본 다지마보다 한발 앞서 자동자수기를 개발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 깜짝 놀랄 일은 기술개발 후 11년 만인 2008년 일어났다. 글로벌 브랜드 루이뷔통의 직원이 썬스타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정교하게 만든 루이뷔통 브랜드가 새겨진 가방을 꺼내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똑같이 만들 수 있겠는가.” 박 회장은 며칠 후 샘플을 보여주면서 답했다. “그 이상도 가능하다.”

루이뷔통 직원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계약을 체결하자고 했다. 현재 루이뷔통의 가방은 썬스타의 자동자수기와 재봉기로 만들어진다. 이후 샤넬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기업과도 계약을 맺었다. 박 회장이 뚝심 있게 기술개발에 매달린 게 알찬 열매를 맺은 것이다.

 

AS로 시장 장악해

컴퓨터 자동자수기 개발로 자신감을 얻은 썬스타는 해외시장을 노크했다. 박 회장은 자수시장의 메카인 베트남을 첫째 타깃으로 삼았다. 세계 유명 브랜드의 하청업체가 몰린 곳이었다. 하지만 한발 늦은 진출이었다. 일본 다지마가 시장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략이 필요했다.

박 회장은 다지마의 자동자수기를 사용하는 국내 업체를 찾아다녔다. 소비자의 불만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다른 게 아니었다. 제때 이뤄지지 않는 애프터서비스(AS)였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면서 이렇게 외쳤다. “이거다!”

다지마의 약점인 AS를 무기로 삼으면 베트남 진출뿐만 아니라 세계시장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썬스타는 철저한 AS를 철칙으로 정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게 어디든 3일 내 기계가 작동하도록 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내는 24시간 내에 해결하도록 했다.

박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소비자의 실수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무상 AS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예외는 없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든 기계값을 후불로 받든 무관했다. 동일하게 AS를 제공했다.

이런 AS전략은 파란을 일으켰다. 어떤 이집트 바이어는 자수기 전체를 썬스타가 만든 것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일본의 취약점인 AS를 승부수로 던진 썬스타의 쾌거였다.

그렇다고 썬스타가 순항을 거듭한 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수출기업인 썬스타로선 피하기 어려운 타격이었다. 자금사정이 급속도로 위축됐다.

자금난에도 기술개발 계속

 
2011년 4월 박 회장은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중국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유럽미국아프리카 등 150여개 국가를 돌아볼 작정이었다. 전 세계 썬스타 해외법인지사영업소•ㆍ에이전트를 순방하는 장기출장이었다. 두눈으로 위기를 보고 패션트렌드를 읽어야 극복책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안 그래도 ‘일본 유니클로, 스페인 자라 등 SPA 브랜드를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터였다. 그런데 장기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박 회장은 예상치 못한 솔루션을 꺼내들었다. “스마트기기와 결합한 봉제기술이 필요하다.” 그는 전 직원을 불러모았다. “SPA 브랜드가 패스트 패션을 주도하는데 봉제산업은 아직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진정한 패스트 패션이 실현되려면 제조업과 IT가 융합돼야 한다.”

직원들은 갸우뚱했다. 박 회장은 더 자세하게 계획을 설명했다. “스마트폰 등 스마트기기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섬유공장 재봉기에 생산지시를 실시간으로 내리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이런 기술력을 확보해야 패스트 패션시대에 발맞춰 성장할 수 있다.”

걸림돌은 자금이었다. 글로벌 경제의 침체로 직원 월급을 몇 달간 주지 못할 정도로 재무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개발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험을 택했다. 70억원을 연구개발자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하루 수면시간을 3시간으로 줄였다. 항상 그랬듯 묵묵하게 기술개발에 매달렸다. 직원들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썬스타는 IT기술을 융합한 재봉기자수기 생산관리시스템 ‘SDMS’를 개발했다.

봉제기술에 IT기술 심어

시스템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재봉기나 자수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관리자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실시간 확인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섬유공장 재봉기를 원거리에서 조절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박 회장의 말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주목한 게 바로 이 기술이다.

“의류업계는 혁신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썬스타를 시작으로 생각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데이터 중심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 2월 4일자 인터넷판 발췌)” SDMS 기술은 썬스타의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있다. 일본 유니클로와 손을 잡은 데 이어 GAP 등 SPA 브랜드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박 회장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믿는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거다. 개발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에 선명한 발자국을 먼저 찍는 것과 같다. 누군가 먼저 걸어간 길을 쫓다보면 경쟁력을 찾기 어렵고, 남과 다르지 않으면 선두에 서기 힘들다. 세계 1위 썬스타의 성장비결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