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1]부산·경남에서 느낀 일본마트의 힘

유통규제의 사각지대를 일본계 마트가 파고들고 있다. 주요 상권은 물론 골목상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특히 부산·경남지역은 일본계 마트가 깃발을 꽂은 지 오래다. 문제는 일본계 마트의 모기업이 대기업인데도 규제조차 하지 못한다는 거다. The Scoop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일본계 마트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 일본계 마트가 부산,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 사진은 바로마트 김해 율하점.
명지국제신도시 개발과 함께 서부산의 명지국제신도시 개발과 함께 서부산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부산 강서구 명지동 오션시티. 184만㎡(약 55만7000평) 규모의 대지에는 퀸덤 1·2단지, 극동스타클래스, 명지롯데캐슬아파트, 엘르쿠블루오션 아파트 4~6단지가 둥지를 틀고 있다. 개발이 한창인 이곳엔 아직 대형마트가 없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 Mar ket)가 가득하다.

3월 10일 일요일. 오션시티에 있는 롯데슈퍼와 홈플러스익스프레스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따른 월 2회 의무휴업 규제 때문이다. 이날 오션시티에서 문을 연 중대형 마트는 두 곳. 국내 토종 신화마트와 일본기업이 운영하는 바로마트다. 다른 SSM이 문을 닫아서인지 신화마트와 바로마트엔 손님이 북적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주민들이 쇼핑을 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유통법 허점 파고드는 일본 마트

▲ 대기업 SSM은 월 2회 의무휴업을 따라야 한다. 사진은 3월 10일 일요일 문을 굳게 닫은 부산 명지동 오션시티 내 롯데슈퍼의 모습.
흥미롭게도 두 마트를 찾은 고객의 구매패턴이 조금 달랐다. 신화마트에는 바구니를 들고 쇼핑하는 이들이 많았다. 바로마트를 찾은 고객 대부분은 카트를 밀고 쇼핑을 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바로마트가 신화마트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바로마트의 대지 면적은 991㎡(약 300평)로 신화마트(495㎡·약 150평)보다 두배가량 크다. 바로마트엔 60여대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도 있었다. 도로변에 있는 바로마트의 입지를 최대한 살리려는 전략으로 보였다.

규모가 큰 만큼 취급상품수 또한 다양했다. 바로마트 매장에 들어서면 신선·가공식품은 물론 ‘한우고로케’ ‘유부초밥’ ‘치킨’ 등을 파는 즉석요리 코너까지 마련돼 있다. 프라이드 치킨은 한마리당 6970원, 한우 크로켓은 하나당 970원이다. 한쪽에는 자체 ‘베이커리 코너’까지 있다. 피자는 한 조각을 1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다. ‘최저가 도전’ ‘이 가격에 주목’이라고 붙은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일요일에만 한정 세일하는 품목도 있다. 바로마트는 주차시설부터 상품구성, 배치까지 동네마트와는 차원이 달랐다. 차라리 ‘대형마트’와 경쟁하는 게 나을 듯했다.

주요 상권은 물론 골목까지 침투

▲ 3. 즉석조리식품과 베이커리 섹션까지 갖춘 바로마트.
신화마트 관계자는 “바로마트가 저가물량 공세를 펼치다 보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며 “더군다나 의무휴업규제에도 걸리지 않아 늘 손님이 북적인다”고 말했다. 오션시티에 사는 한 주민은 “신화마트의 위치가 조금 더 좋지만 바로마트의 가격이 저렴하고 물건 종류도 많아 일부로 찾아간다”며 “바로마트가 일본계 마트라는 소리를 듣고 ‘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을 몇 번 했지만 다른 SSM이 문을 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찾는다”고 전했다.

외국계 유통업체가 국내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규제를 받는 대형마트와 대기업 SSM이 문을 열지 않는 주말에 외국계 유통업체는 ‘골목상권’에서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부산이 심하다. 앞서 언급한 바로마트가 대표적이다. 바로마트는 일본 유통기업 ‘바로그룹’이 부산 명지동에 별도법인을 두고 운영하는 중소형 마트다. 바로그룹은 1958년 ‘주부의 가게’라는 소규모 슈퍼마켓으로 출발해 드러그스토어·홈센터·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 유통업체다. 일본 현지에서 슈퍼마켓만 200개 이상 갖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조7000억원에 달하고, 직원수는 4400명이 넘는다.

문제는 이런 대형 유통업체가 만든 ‘바로마트’는 국내시장에서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월 2회 의무휴업은 고사하고 영업시간 규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유는 허점투성이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있다. 유통법에 따르면 대규모·준準대규모 점포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영업시간 제한(오전 0시~오전 10시)과 월 2회 의무휴업 규제를 받는다. 대규모 점포는 총 매장면적이 3000㎡(약 909평) 이상이다. 준대규모 점포는 대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회사나 그 계열사가 운영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일본 대형 유통업체가 모기업인 바로마트는 이 법에 걸리지 않는다. 국내에는 3000㎡ 이상 규모의 점포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마트 부산 명지점은 991㎡(약 300평), 김해 장유점은 1320㎡(약 399평)이다.

지식경제부 유통물류과 관계자는 “외국계 유통업체의 경우, 자국에 제 아무리 많은 유통채널이 있어도 국내에 대형점포가 없다면 규제할 수 없다”며 “이런 허점을 악용하는 일본 유통업체가 늘고 있어 (우리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법의 허점을 노리고 외국계 유통업체가 ‘규제 사각지대’를 파고들고 있다는 얘기다.

지경부 “일본 마트 때문에 골머리”

실제로 부산을 점령한 외국계 마트는 바로마트뿐이 아니다. 부산 골목상권까지 깊숙이 침투한 트라이얼컴퍼니도 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본사가 있는 트라이얼컴퍼니는 2004년 국내에 트라이얼코리아를 세우고 중소형 점포 10개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부산에만 4개가 있다. 2011년 3월 해운대구 좌동에 트라박스 1호점을 세운 이들은 지난해 2월 좌동 2호점·재송동 3호점, 5월엔 재송동 4호점을 차례로 오픈했다. 2년 사이에 부산에만 4개 점포를 연 것이다. 바로마트와 마찬가지로 트라이얼코리아도 국내에 3000㎡ 이상의 대형 점포가 없기 때문에 유통법 규제를 받지 않는다.

▲ 부산 제송동 골목에 위치해 있는 트라박스.
3월 11일, 트라박스 3·4호점이 있는 재송동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산꼭대기에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산 중턱에 올라가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주변에는 중소형 아파트들이 있는데, 말 그대로 골목 슈퍼였다. 매장에 들어서자 ‘트라박스는 365일 언제나 싸게 팝니다’는 문구부터 눈에 띄었다. 트라박스가 ‘의무휴업 규제’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00㎡(약 90평)가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매장에는 각종 가공·신선식품뿐만 아니라 프라이팬 같은 주방용품까지 팔고 있다.
좁은 통로까지 활용해 의류와 속옷까지 진열해 놨다. 바로마트가 대형할인점의 틈새를 공략했다면 트라박스는 골목슈퍼마켓을 업그레이드한 듯했다.

트라박스 재송동 3호점 맞은편에서 그린할인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은 “1년 전쯤 트라박스가 생긴 이후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며 “대량구매로 물건을 가져오기 때문에 상품구성이든 가격이든 경쟁 자체를 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매장을 연 지 1년이나 지났는데 ‘나가달라’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의무휴업 규제라도 받으면 숨통이라도 트일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그린할인마트는 중소기업청이 대형 할인마트와 SSM의 진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네슈퍼를 육성하기 위해 2010년 1월 마련한 ‘나들가게’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매장면적 300㎡ 이하 동네슈퍼가 대상인 정부지원책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책마저도 트라박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린할인마트 주인은 “나들가게를 통해 지원받은 것은 새로운 간판과 POS기기가 전부”라며 “트라박스는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 저렴하게 팔기 때문에 한마디로 승부를 겨룰 수 없다”고 말했다.

중소마트 지원책 효과 별로 없어

재송동 3호점에서 600m 떨어진 곳에 4호점이 있다. 3호점보다 조금 작다. 동네 구멍가게보다 약간 큰 규모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진출해 장사를 하면 돈이 될까라는 의문까지 생긴다. 하지만 근처 상인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처음에 얼마나 심하게 저가로 물량공세를 펼쳤는지 모른다. 요즘엔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수위를 봐가면서 가격을 낮추고 있지만 아직도 저렴하긴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런 마트가 골목까지 진입할 수 있는가. 처음부터 잘 막았더라면 일본마트에 골목상권이 무너지진 않았지 않겠는가.”

 
트라박스를 운영하는 트라이얼컴퍼니의 본거지는 부산이다. 해운대구 좌동에 본사가 있다. 하지만 부산은 활동영역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부터 경남 함안·김해·밀양·마산, 경북 영천, 전남 광양 등 6곳에 ‘트라이얼마트’ 또는 ‘트라이얼슈퍼센터’라는 이름의 대형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 365일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는 트라이얼마트.
트라이얼컴퍼니의 세勢를 확인하기 위해 김해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산의 매장 이름은 ‘트라박스’였지만 이곳에선 ‘트라이얼 마트’로 불렸다. 트라박스가 슈퍼마켓 수준이라면 트라이얼마트는 SSM보다 크고 대형마트보단 작은 규모다.

당연히 상품수가 훨씬 많았다. 이불부터 시작해 넥타이·양말·속옷 등 의류, 스탠드·믹서기·전기밥솥 같은 가전제품, 바비인형부터 스티커까지…. 말 그대로 없는 게 없었다. 트라이얼코리아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트라이얼마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상생활 안에서 반드시 사용하는 것, 그리고 먹는 것, 입는 것, 이것들을 한층에 모아 고객의 편리와 만족을 추구….” 진짜 그랬다. 트라이얼 마트엔 종류를 불문한 모든 상품이 한 층에 있었다. 더구나 트라이얼마트 김해점은 365일 연중 무휴 24시간 영업이 가능하다. 의무휴업 규제를 받지 않아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변 상권이 입는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15년 동안 슈퍼마켓을 운영해 왔는데, 트라이얼 마트가 생긴 후 타격을 많이 받았다”며 “의무휴업도 없이 365일 연중무휴 운영하는 데 감당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문방구를 운영하는 상인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최근 매장 평수를 넓히고 오전 7시부터 나와 장사를 하는데도 매출이 늘지 않았다”며 “24시간 동안 운영하는 바로 앞 트라이얼 마트에서 문구·장난감·학생준비물까지 죄다 팔고 있으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한탄했다.

김해 골목상권을 흔들고 있는 건 트라이얼 마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13㎞ 떨어진 곳에는 1320㎡(약 400평) 규모의 바로마트 김해 율하점이 있었다. 부산보다 좀 더 큰 규모로 200대 차량의 주차가 가능했다. 부산에 이어 김해에도 일본계 유통업체가 득세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지에선 대기업, 왜 규제 못하나

 
엄태기 ‘골목상권살리기 소비자연맹’ 실장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마트의 모기업은 일본 현지에서 수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라며 “이런 유통업체가 국내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데, 아무런 제재조차 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와 SSM을 규제하는 것은 옳지만 이 틈을 타 일본계 마트가 세력을 넓히고 있다”며 “특히 국내 소비자가 바로마트나 트라이얼 마트가 일본계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 대기업이 한국시장 진출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자국 유통시장의 성장이 한계에 부닥쳐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2011년 타시로 마사미 바로그룹 사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일본과 달리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슈퍼마켓의 이익률이 높다”며 “앞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상현 영남대(경영학) 교수는 “포화상태에 다다른 일본 유통시장은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일본 유통기업이 한국시장에 속속 진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유통기업의 한국시장 진출  가능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며 정부는 일본 유통업체 규제를 어떻게 할지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렇다. 부산과 김해는 작은 사례일 뿐이다. 트라이얼 마트의 세력은 경북에까지 뻗어 있다.
바로마트는 2017년까지 점포수를 20개까지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들 일본계 유통채널이 2년 뒤에는 대전, 3년 뒤에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까지 침투할지 모를 일이다. 혹시 아는가. 대형마트가 의무휴업하는 일요일, 바로마트에 가고 동네슈퍼 대신 24시간 운영하는 트라이얼 마트에 갈지 말이다. 제 아무리 견고한 둑도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지는 법이다. 유통시장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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