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순의 易之思之

산업기술의 불법 해외유출이 심각하다. 원인은 안팎으로 있다. 유출건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그나마 심각성을 인지하는 게 다행이다. 문제는 국가의 지식재산권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된 연구결과와 정책과제가 외부인에게 모두 공개된다. 내가 사는 집의 외벽은 보여줘도 안방은 공개하지 않는 법이다.

▲ 연구보고서와 정책연구물 등 국가의 지식재산권이 제약 없이 외국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첨단기술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 중 14.7%가 최근 3년간 내부기밀 정보의 유출로 피해를 경험했다. 피해규모는 건당 102억원에 달한다.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산업기술의 불법 해외유출 시도 적발건수는 총 264건이다. 기술이 유출됐다면 금액 피해는 얼마나 될까. 국가정보원의 자료를 보면 2004~2008년 기술 유출 시도가 성공했을 경우, 발생하는 피해금액은 253조에 이른다.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국가재산권

기술 유출 유형과 경로를 살펴보자. 전ㆍ현직 내부인력이 경쟁업체에게 유출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경쟁업체는 주로 고액연봉 보장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회유한다. 기술유출 적발건수 가운데 56%는 전직 직원에 의해서 발생한다. 2008년 인텔의 경쟁사인 소프트웨어 제조사 AMD로 자리를 이동한 직원이 100페이지가 넘는 인텔 대외비 자료와 칩 설계도면 19건을 보관하다가 FBI에 체포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회사의 인수ㆍ합병(M&A)을 통해 합법적으로 기술을 인수하지만 일부는 피인수 기업의 기술만 입수하고 계약을 파기한다. 2000년 대우자동차 인수를 시도했던 포드는 16개 공장과 300여개 부품업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후 인수를 돌연 포기했다.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를 인수한 후 디젤엔진과 SUV 차량의 주요 기술을 기술지도 명목으로 중국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동연구를 위해 초빙한 해외기술자나 파견된 연수생이 해당 기업의 핵심 기술정보에 불법적으로 접근해 유출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불순한 동기나 특정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범인에 대한 추적ㆍ검거ㆍ처벌ㆍ소송이 가능하다.

문제는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국가의 지식재산권이다. 보호를 해야 할 대상과 범위를 망각하다 보니 관리체계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특히 국가에서 세금으로 수행하는 연구결과물이나 연구보고서는 전 세계 누구나 인터넷을 활용해 내려 받을 수 있다. 인쇄ㆍ저장ㆍ배포도 자유롭다.

연구성과에 접근하는 통제 시스템이 없는 탓에 핵심기술을 빼돌리려는 산업스파이나 경쟁국의 활동이 자유롭다. 연구개발의 성과물은 상당히 큰 경제적 파급효과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성과물의 이전과 복제가 쉽기 때문에 기술유출 시도가 쉽게 일어나는 것이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국가안보의 위협과 산업경쟁력의 약화다. 연구개발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다. 당연히 국민에게만 선택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외국엔 필요한 경우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보 중요도 따라 공개해야

 
실제로 미국은 국외 IP의 접근을 차단하는 할 때가 있다. ‘Domestic Only’ 문구가 부착된 경우다. 우리나라는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공유와 공개라는 말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집의 외벽은 보여줘도 안방은 공개하지 않는 법이다. 정보의 중요도나 성격에 따라서 공개와 비공개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다.

기술의 연구결과가 미처 제품으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타 국가나 기업에 유출돼 판매되거나, 국가의 정책연구 결과가 국정에 반영되기도 전에 타 국가에서 미리 알고 대응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