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24회

조선 전국의 힘이 다 무너지고 선조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혼이 달아나고 백이 흩어졌다. 오직 명나라 조정에 구원병을 청하기 위해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이때 아랫녘 한구석에서 일개 수군절도사인 이순신이 홀로 삼천리 조국을 두 어깨에 들러 메고 조정에서 잘 알아주지도 않는 수전의 길을 떠났다. 일국의 운명을 자기의 양 어깨에 지기에는 너무도 낮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일본군은 부산서 의주까지 육로 2000리의 전선을 늘어놓고 조선의 해상권을 손에 넣지 못하고는 도저히 중원中原으로 군대를 길게 늘어뜨려 깊이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평양에 근거지를 잡은 소서행장 등은 군사를 휴양하며 어느 날이고 일본 수군이 이순신의 함대를 깨뜨리고 평안도 바다로 돌아오기를 고대하였다. 그리하여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의주를 엄습하여 조선 왕을 사로잡고 완전히 조선을 저의 수중에 넣으려 한 것이었다.

풍신수길은 일본의 원정군이 육전에는 연전연승하는 보고를 받고 만족하였으나 그와 반대로 수전에서는 유독 이순신에게 연전연패하였다는 보고를 받고는 심히 불평하여 분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다. 박홍 원균 이일 신립 같은 조선장수는 말할 가치도 없어서 문제시할 것이 없지만 이순신은 정말 영웅이었다. “하늘이 어찌 나를 내고 또 어찌 이순신을 냈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였다. 그래서 조선의 제해권은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고는 도저히 군사를 끌고 중원 400여 주를 칠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풍신수길은 다시 중서中書[중서는 관명官名이니 즉 내부대신內部大臣이다] 협판안치로 수군총사령을 삼고, 도변칠우위문渡邊七右衛門(와타나베 시치에몬)과 일기수壹岐守 모리민부 이하 일곱 장수로 부장을 삼고, 먼젓번 싸움에 실패한 가등가명 등당고호 내도통총 구귀가륭 등 제장에게도 다시 군사를 주어 먼젓번에 패한 군사와 합세하여 십만이라는 대함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관문인 부산포를 호위하게 하고는 기어코 이순신의 함대를 섬멸하여 전일에 참패한 치욕을 복수할 것을 엄명하였다.

이번 수군으로 말하면 조선 팔도의 모든 바다를 지배하기 위함보다도 이순신에 대한 원한을 갚아서 전에 패전 사망한 일본장졸의 영혼을 위안할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일본 수군이 이순신의 손에 연전연패한 것은 일본 전토의 민심에도 극도로 자극을 주어 불안케 하였다. 따라서 일본 전국을 통일하여 지배하는 자리에 올라앉은 풍신수길의 위신에도 영향이 적지 아니하여 그 명성이 깎이게 되는 것이었다.

또 일본의 수군이 경상도 연해에서 조선의 명장 이순신의 전략적 수완에 죽기가 바빴다는 소식이 한성에 들어왔다. 조선 왕궁을 차지한 적의 총대장 부전수가는 팔뚝을 걷어붙이며 분노하고 이순신이라면 이를 갈았다.

부전수가는 수길의 막하에서 용병이 귀신같다 하여 지위가 재상에까지 올라간 장수였다. “일개 이순신을 깨뜨리지 못함은 우리 일본군의 수치이니 이 수치를 어찌 씻지 아니하랴!” 하고 한성에서 부하 제장을 4개 부대로 나누어 조직하여 부전수가가 친히 통솔하고 서울서 출발하여 부산과 양산 김해로 내려와 중무대보中務大輔 협판안치 이하 제장과 합세하여 부전수가가 최고지휘권을 가져 전함대를 출동하여 위무당당하게 서쪽으로 항해하여 전라도를 향하였다.

이때 일본으로부터 새로 대함대가 부산포 방면으로 건너왔다는 경보가 이순신의 본영인 전라좌수영에 들어온 것은 6월 그믐이었다. 순신은 반드시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짐작하였던 터라 곧 관하 제장에게 전령을 내리고 일변은 수륙 양로로 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원균에게 관문을 보내어 7월 7일을 기약하여 노량목에서 서로 만나 제3차로 적의 수군을 토벌할 것을 약속하였다.

패보를 듣고 탄식하는 이순신

▲ 이순신이 손수 북을 올리자 한산도 바다에 숨어 있던 주력함대가 출동을 준비했다.
7월 칠석날을 기다리는 동안에 혹은 가덕에 적선 10여척이 나왔다 하고 혹은 거제 송진포 앞바다에 적선 30, 40척이 떴다는 정보가 다다를 뿐 아니라 남해도의 남단인 금산포錦山浦에까지 적의 탐보선이 출몰한다는 것을 바로 좌수영의 정탐선이 발견하게 되었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자기의 본영인 오아포1)도 버리고 적봉을 멀리 피하여 어디엔가 쥐죽은 듯 숨은 모양이었다.

이순신은 선조의 거가가 한성을 떠난 것과 임진강에서 신할 유극량 등 조선군이 패망한 것까지는 들었으며 그 뒤에 개성을 버리시고 평양을 지키리라는 소식까지는 들었으나 그 뒤로는 아직 듣지 못하였다. 순신은 이러한 패보를 들을 때마다 서쪽을 향하여 통곡하였다. 순신은 “이렇게도 조선에는 사람이 없는가? 이렇게도 조선 사람은 다 못난 사람인가?” 하고 탄식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조선 팔로중에 칠도는 거의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오직 온전하게 남은 데는 전라도 일대 하나뿐이었다. 이 전라도 하나까지도 마저 적의 손에 들어간다면 조선의 강토는 전부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이에 순신은 결심하였다. 적의 수군이 전라도 이북의 바다를 지나지 못하게 할 것을 칼을 빼어 들고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였다.

새로 출동한 일본의 수군은 이순신이 이렇게 준비하고 맹세하는 동안에 경상도 연해 일대를 횡행 침략하였다. 또 육로로도 적군이 벌써 전라도 북단인 금산錦山을 범하여 의병장 전 부사 고경명高敬命이 방어사 곽영과 더불어 금산의 적과 2일간이나 싸우다가 곽영의 관군이 먼저 무너져 달아났다. 고경명이 이것을 보고 분노하여 군사를 지휘하여 역전하다가 전사하고 고경명의 둘째 아들 인후因厚도 고경명을 보호하며 싸우다가 부자가 동시에 전사하였다. 고경명의 제자로 부하장수가 된 유팽로柳彭老 안영安瑛 이하로 군사들이 하나도 아니 남고 모두 전사하였다.2)

고경명이 죽은 뒤에 충청도 의병장 조헌이 칠백의사를 거느리고 의승장 영규의 승군과 합세하여 청주의 적을 쳐 파하고 금산의 적을 치려 하였다. 이때에 충청도 방어사 이옥李沃과 조방장 윤응린尹應麟 등이 연달아 무너져 달아나되 승장 영규가 홀로 적과 맞붙어 버티었다. 조헌이 영규와 같이 금산의 적과 싸워서 조헌 이하 칠백의사가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싸워 죽었다. 승장 영규도 조헌이 죽는 것을 보고는 “내가 어찌 혼자 살 수 있느냐” 하고 적진으로 돌입하여 싸우다 전사하였다.3)

조헌의 호는 중봉重峰이니 백암 이순신과는 도의로 서로 인정하는 친우였다. 순신은 고제봉과 조중봉의 이 장렬한 전사의 소식을 듣고 순신은 노하여 머리카락이 갓을 찌르고 분한 마음에 간담이 찢어지는 듯하여 곧 육로로 올라 행군하여 금산의 적을 치고 싶었으나 사방의 정세가 여의치 못하였다.

임진1592년 7월 6일 아침에 이순신의 병선 대소 90여척과 이억기의 병선 대소 80여척이 좌수영 앞바다에서 만나 동쪽을 향하여 노량으로 출발하였다. 전번의 승전으로 적선이 가덕 이서에는 그림자도 없이 만들었던 것이 한 달이 못되어 그동안에 조선군은 용인에서 이광 등 삼도 감사가 패하고 한강에서 이양원 김명원의 무리가 패하고 임진에서 신할 한응인의 군사가 패하여 적의 기세만 돋아주었을 뿐이었다. 또 적의 수군도 첫 번 싸움 둘째 번 싸움에 실패한 분한을 씻기 위하여 바다를 덮어오는 대군은 경상도 연해 각처에서 날뛰고 있었다. 마치 누구의 군사를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조선 전국의 힘이 다 무너지고 선조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혼이 달아나고 백이 흩어져서 오직 명나라 조정에 구원병을 청하기 위하여 애걸복걸하고 있는 이때에, 아랫녘 한구석에서 일개 수군절도사인 이순신이 홀로 삼천리 조국을 두 어깨에 둘러업고 조정에서 잘 알아주지도 아니하는 수전의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실로 일국의 운명을 자기의 양 어깨에 지기에는 너무도 낮고도 적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생명보다도 자기의 맡은 사명을 더 중히 여기는 책임감, 이것이 이순신으로 하여금 이 길을 떠나게 한 것이었다.

순신은 이억기와 원균을 자기가 탄 기함에 청하여 이번에 싸울 방략을 지도하여 약속하였다. 그 약속의 요지는 전라좌우도와 경상우도 합 삼도연합군이 어디까지든지 통일된 행동을 취할 것, 부질없이 공을 다투지 말고 또 적을 멸시하지 말고 가장 신중히 지휘자의 명령에 의하여서만 행동할 것 등등이었다. 형식상으로 조직된 것을 본다면 삼도 연합함대인데다가 이순신이나 이억기나 원균이나 다 같은 동등한 관직이 되는 수군절도사에 지나지 못하니 명령이 통일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오직 과거에 두 차례나 연합행동을 하여 본 경험이 있는 관계상 수군의 세력 및 공훈으로 미루어 보아서 순신의 위세가 다른 두 세력보다도 압도적으로 강하며 또 이억기가 평소부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서 이순신의 위인을 공경하여 달게 그 절제를 받을 것을 보아서 이 삼도연합함대는 그 지휘권이 통일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싸울 방략에 대한 약속이 끝난 뒤에 순신은 말을 계속하여 “지금 성상이 몽진하시와 조정의 명령을 기다릴 수가 없소. 그렇지만 군중에는 일시라도 대장이 없으면 질서가 정연치 못하여 백해가 연해 발생할 것은 사실이 증명하는 터이니 우리 세 사람이 다 직위가 상등하여 막상막하지만 불가불 한 사람으로써 대장을 삼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오” 하고 삼인의 좌중에 말을 꺼냈다.

이억기는 서슴지 않고 “그것은 그러셔야 할 일이오. 벌써 늦었소. 전번에 할 일이지요. 물으실 것도 없이 대감이 대장이 되셔야 합니다. 금일의 군사상 정세를 본다면 두말할 것도 없지요” 하고 순신을 즉석에서 천거하였다. 순신은 옥포승전의 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서 가선대부동지嘉善大夫同知가 되고 당포승전의 공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가 되고 당항포승전한 공으로 정이품 자헌대부지사資憲大夫知事의 계에 승품되어 지금은 대감의 칭호를 받게 된 것이었다.

이순신 총사령장관 되다

▲ 조선 팔도 중 철도는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전라도 일대 만이 온전하게 남았다.
원균은 이억기가 자기를 천거하지 아니하고 이순신을 추천한데 대하여 속맘으로 반대하여 불편해하였다. 자기가 순신보다 나이 몇 살이 더하고 벼슬길에 나선지도 선배인데 불구하고 뒤진 것이 분하였다. 요행이 자기가 대장이 되기만 하였으면 순신의 덕에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기라도 할 것인데 하고 내심에 이억기를 원망하였으나 오늘날까지 패군지장이던 자기의 지위도 순신의 그늘이 아니면 유지할 수 없는 관계로 감히 입 밖에 말을 낼 수도 없어서 그만 분위기를 보아 이억기의 말을 극구로 찬성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원균은 억지로 극구 찬성하여 “그렇기를 두 말 있소? 좌수사 대감이 우리 중에 창도자이며 지시자이니 당당히 대장이 되시오” 하여 순신이 총사령장관이 되는 것을 쾌히 승낙하여 이억기 이상으로 생색 내기에 애를 썼다. 순신은 “두 영감이 그리하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소” 하고 순신은 “이로부터 두 영감의 관하제장들까지도 다 내 절제를 받을 것을 맹세합시다” 하고 순신이 칼을 빼어 높이 드니 이억기와 원균은 칼을 빼어 눕혀서 두 손으로 받들어 그 절제에 복종할 것을 표시하여 굳게 맹세의 예식을 행하였다.

노량에서 맹세로 약속을 정한 삼도연합함대는 일체로 이순신의 절제를 받기로 하고 즐겨 따랐다. 원균 한사람 외에는 다 이순신의 지용과 은혜와 신의를 존경하여 순신의 탄 상선에 모여들어 술잔을 잡아 하늘에 축도한 뒤에 전함대가 노량목을 떠나 창선도 앞바다로 와서 밤을 지냈다. 이튿날 7월 칠석날 아침에 동풍이 크게 불어 파도가 산과 같은 것도 무릅쓰고 배질을 하라는 순신의 장령이 전군에 내리었다. 순신은 바람의 방향과 조수의 순역을 잘 알기 때문에 전군은 다 안심하고 신뢰하는 것이었다.

산에 숨었던 피난민들이 우리 함대를 보고 마치 오래 이별하였던 부모를 만난 듯이 반겨 내려와 기쁜 뜻을 말하는데 그중에 김천손金千孫이라는 소치는 사람이 자청하되 이순신 사또께 여쭐 말씀이 있다고 하므로 배에 태우고 데리고 와 연유를 아뢰었다.

김천손의 밀고하는 말은 “소인이 볼일이 있어서 거제지방에 갔더니 적선 대소 70여척이나 되는 대함대가 영등포 앞바다에서 나타났다가 고성 견내량목에 와서 닻을 주고 섰소” 하였다. 김천손의 이 충심적 고발은 군사상으로 보아서 실로 중차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적선의 소재처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행군하였지만 이제는 김천손의 이 보고를 말미암아 적선의 소재처와 그 선척 총수까지 명백하게 안 것은 마치 큰 힘을 얻음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각각 부서를 정하여 누구누구는 모처모처에 매복할 것과, 먼저 갈 자와 어떻게 어떻게 도전할 자와 또는 뒤에 책응할 자를 정하고, 방포로써 군호를 정하고 그 군호를 응하여 어떻게 진퇴할 것과, 만일에 밤이 되면 각선의 등불을 제각기 달리 할 것과, 대장선의 등불을 보아 행동할 것을 철저하게 지시하였다. 그리고 전쟁할 때에 지킬 신조를 조목조목 명시하였다.

一. _결코 제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오직
약속한 대로 절대 복종할 것
二. _먼저 득승하였다 하여 공을 다투지
말고 각각 제 맡은 직분을 사수할 것
三. _애써 적병의 수급을 다수히 베려 하지
말고 많이 싸워서 적을 죽이는데 힘쓸 것
四. _애걸하고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서 대장에게 보고하여 처치할 것

이 네 가지 조항은 전공을 자랑하기 위하여 수급을 베어 모으기만을 위주로 하는 폐풍이 있음을 경계한 것이니 순신은 싸울 때마다 비록 수급을 전공의 증거로 보이지 아니하더라도 누가 잘 싸우고 힘써 싸운 것을 내가 보아서 아는 것이니 머리 하나를 베는 동안에 적을 둘 셋을 죽이라는 훈시를 한 것이었다.

이순신의 통솔한 대함대가 기고당당하게 새벽녘의 바다물결을 헤치고 한산도 앞바다에 다다랐을 때에는 소쿠리도渡 위로 태양이 솟아올라서 70여척 판옥대맹선의 돛 복판에는 일시에 뜨는 해의 붉은 빛이 비쳐서 찬란한 문채를 이루었다. 참 이편의 의기는 충천하였다. 그러다가 순신의 장령이 한번 내리는 통에 그 70여척의 대맹선은 각기 계획한 방향으로 분대 분대로 조각조각 갈라 가서 그림자를 감추어 버리고 오직 판옥선 6척만이 견내량을 향하여 달려갔다. 다른 배들은 순신의 미리 정한 방략을 지켜서 동서남북의 산그늘과 섬그늘에 숨어버리고 순신의 직할하는 주력함대중 대소 50척만을 한산도 앞 죽도4) [대섬] 뒤, 지금으로 말하면 제승당制勝堂 좌우 항만 속에 숨기고 자기만 다섯 척 병선을 거느리고 나섰다.

광양현감 어영담과 옥포만호 이운룡이 거느린 선봉대 6척은 적함이 정박하고 있는 견내량을 향하여 살같이 달려갔다. 때마침 한산도 앞에서 하회를 기다리는 순신은 뱃머리에 나서서 북동으로 견내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 조수가 썰물이 되도록 어영담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보고 순신은 생각하되 자기의 계획이 썰물에 적함을 한산도 속 바다로 유인하여 끌어넣어 싸우는 동안에 저녁 밀물을 만나면 적으로 하여금 외양으로 달아나지 못되게 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순신은 지금이 조감5) 때임을 한하였다. 만약 8일의 조금이 아니고 15일경 사리이면 오죽 좋으랴 하였다.

순신은 결코 견내량에서는 적함과 싸우지 말고 만일에 적이 따르거든 달아나 돌아오라고 일렀지만 혹시나 솟아오르는 용기를 억제하기가 어려워 싸우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하여 순신은 근심하였다. 지난밤에 군사회의를 할 때부터 견내량으로 뒤따라가서 싸우기를 주장하던 원균은 순신의 번거로운 계획을 비웃었다. 원균의 생각에는 병목 같은 견내량 좁은 곳에 몰아넣고 싸우지 아니하고 넓고 큰 바다로 끌어내어 싸우려 하는 것이 무슨 어리석은 일이냐며 코웃음 치는 것이었다. 날이 늦도록 선봉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원균은 자기의 선견지명을 자랑하여 순신에게 자청하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견내량으로 따라갑시다. 소인의 병선이라고는 7척뿐이니 대감께서 병선 30척만 소인에게 빌려 주신다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그놈들을 모조리 무찌르고 또는 사로잡아 오리다” 하고 빈정댔다.

자신의 전투 계획 과신하는 원균

 
원균은 전쟁 초에 영등포에서 일본군이 무섭다는데 풍성학려6)로 혼을 잃고 싸우지도 아니하고 그 많은 병선과 군기와 수군 6천명을 흩어버리고 노량목으로 도망한 장수가 자기가 아니고 딴사람인 것같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순신은 말없이 머리를 흔들어 원균의 말이 옳지 아니하다는 뜻을 표시하였다. 순신은 원균더러 그렇지 아니한 설명을 하여 “견내량과 같이 암초와 얕은 여울이 많은 곳은 지키기에 편리하나 치기에는 마땅치 못한 곳이오. 또 설사 견내량에서 싸워서 이긴다 하더라도 적병은 배를 버리고 좌우에 가까운 육지로 올라 달아나기가 쉬우니 그렇게 되어 적병이 상륙 도주하고 보면 결국 적에 대한 인명적 손해는 적을 것이오. 또 이편의 전함도 좁은 목에서 일자로 새 날개의 진을 벌여서 좌우로 엄습할 수도 없고 마치 구멍 안에서 단둘이 싸우는 것 같을 것이요, 우리 배가 혹여 풀등에 올라앉고 혹은 암초에 부딪혀 손해를 면치 못할 것이오” 하였다.

이 설명을 들은 제장은 다 순신의 높은 의견을 해득하고 칭찬하지만 완고하고 어리석은 원균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이윽고 견내량으로부터 달려오는 배가 보였다. 아직도 사오미巳午未 삼시의 밀물을 타서 잠시간에 어영담 이운룡 등의 거느린 배인 것이 판명되었다. 한 척도 상실되지 아니하고 쫓겨 온다. 은은한 포성이 들리는 것은 일변 싸우며 일변 달아나는 것을 알기 쉽다. 아니나 다를까 이편 병선들의 뒤를 따라 다수한 일본군함들이 검은 돛을 달고 기러기 떼 모양으로 콩 볶듯 조총을 난사하며 어영담 이운룡 등의 배 뒤를 따라서 급추격하여 오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순신은 손수 북을 울렸다. 한산도 속 바다에 숨어 있던 이순신의 직계 주력함대에게 출동하기를 명령하는 암호였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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