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총론] 한국GMㆍ르노삼성ㆍ쌍용차의 눈물

해외자본에 팔린 한국GM•르노삼성•쌍용차 3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자동차 기업의 생명인 연구개발(R&D) 기능을 잃었다. 적자의 늪에 빠진 쌍용차는 R&D 비용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3사의 ‘R&D 심장’이 멈추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자동차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파산 위기를 맞았다. 미국 정부는 두 업체를 해외 자본에 매각하지 않았다. GM은 정부가 직접 나서 지분을 매입했다. 국유화를 통해 회생절차를 밟은 것이다. 포드는 독자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미국 정부가 GM을 살리기 위해 쏟아 부은 돈만 400억 달러(약 44조6000억원)가 넘는다. 미국 정부가 출혈을 감수하고 위기에 몰린 자동차 메이커를 끌어안은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 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13년 전 한국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처 방안은 미국과 달랐다.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한국 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GM(당시 대우차), 르노삼성(당시 삼성차), 쌍용차 3사가 무너졌다. 한국 정부는 인수할 기업을 찾았다. 하지만 IMF 상황 속에서 인수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업계에선 “삼성마저 내던진 자동차산업을 어떤 업체가 인수하겠느냐”는 말이 떠돌았다.
 

정부는 해외 자본으로 눈을 돌렸다. 외자를 유치해 국내산업을 살리겠다는 의도에서였다. 2001년 한국GM은 GM에 매각됐고, 르노삼성은 2000년 프랑스 자동차 업체 르노에 팔렸다. 쌍용차는 2005년 중국 상하이차, 이후 2011년 인도 마힌드라에 인수됐다.

해외 본사의 ‘물량 빼내기’

당연히 반발이 심했다. 자동차 업체의 공장이 있는 지역경제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해외자본이 생산과 고용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인가’라는 의문은 꼬리를 물고 확산됐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성장이 더딜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외자본이 생각만큼 투자를 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는 거였다.

13년이 흐른 현재,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외형은 그럴듯하지만 내실은 시원치 않다. 흔히 국내 완성차 업체를 두고 ‘현대차•기아차•한국GM•르노삼성•쌍용차’ 5개사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현대차•기아차를 제외하면 국내 완성차 업체는 없다. 한국GM•르노삼성•쌍용차는 해외 자동차 업체의 자회사다. 한국GM은 GM 계열사들이 지분 82.98%를 보유하고 있고, 르노삼성은 르노가 80.1%를, 쌍용차는 마힌드라가 69.63%를 갖고 있다.

 
해외자본에 넘어간 자동차 업체 3사의 사정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한국GM와 르노삼성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무엇보다 이들은 마음껏 경영하기 어렵다. 해외 본사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주요 경영진을 파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맞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해외 본사에서 하달된 명령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자동차 기업의 생명으로 여겨지는 연구•개발(R&D)도 부진하다. 한국GM•르노삼성이 해외자본에 넘어가기 전에는 R&D에 혼신의 힘을 쏟으며 신차개발에 몰두했다면 지금은 조립•생산만 하는 처지가 됐다. 해외 본사에서 R&D를 맡고, 이들은 조립•생산만 하는 ‘하청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R&D 개발능력을 상실한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자체 신차개발 능력이 없다. 해외 본사에서 신차 개발 프로젝트를 주지 않기 때문에 기존 모델의 연식 변경(업그레이드)만 하고 있다.

한국GM•르노삼성은 본사에 신차개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한국GM 노조 관계자는 “자체 엔진을 개발했던 대우차는 부도 직전 몇 개의 엔진을 새로 만들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우차가 무너지면서 GM에 인수됐고 새로운 엔진개발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GM 본사에 통사정을 해도 신차 개발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르노삼성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1995년 닛산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생산하는 방식으로 탄생한 르노삼성은 자체 기술력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르노삼성은 신차개발이 아닌 닛산의 2014년형 로그를 부평공장에서 위탁생산한다고 밝혔다. 르노삼성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차 개발능력 잃은 한국GM

 
이런 이유로 해외본사에서 물량을 빼내겠다고 통보하면 한국GM과 르노삼성은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GM이 위기다.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물량을 다른 공장으로 돌리는 게 GM의 경영전략이라서다. GM은 현재 해외공장을 신축하거나 증설하고 있다. 이 공장들이 가동된다면 한국GM에서 생산하는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생산인력은 감소된다. 국내 한국GM 직원들이 해외 본사의 결정으로 직업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 한국GM은 2012년 11월 군산공장에서 2014년 신형 크루즈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크루즈는 한국GM의 주요 수출차량이다. GM은 “공장시설•물류비를 감안했을 때 국내공장에서 생산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GM의 생산물량 빼내기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빼낸 크루즈 물량이 GM의 영국•독일에 있는 유럽공장으로 넘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GM 유럽공장의 주력 생산모델은 ‘오펠’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펠 판매량이 부진의 늪에 빠지자 GM 유럽공장은 감산 또는 폐쇄 직전에 몰렸다. GM이 위기에 처한 유럽공장을 살리기 위해 크루즈를 한국에서 빼낼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이성신 BMR컨설팅 대표는 “GM이 오펠 독일 공장을 폐쇄하고, 영국 공장은 감산에 나서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폐쇄하는 공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만 감산하는 공장은 되살려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물량을 유럽공장에 넘길 공산이 크다. GM이 러시아 공장과 중국•브라질•인도 등 신흥국 시장에서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한국GM의 수출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 르노삼성 부산공자의 자동차 조립라인. 르노삼성은 2012년 국내시장에서 전년보다 약 50% 감소한 5만9926대를 판매했다.
 
르노삼성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르노가 직접 생산하는 차량과 배기량이 비슷하면 수출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르노는 1999년 닛산까지 인수해 르노삼성이 닛산의 수출시장에도 진출하는게 현재로선 쉽지 않다.

문제는 르노의 중심무대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시장이고, 닛산은 미국시장을 주름잡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르노는 최근 중국•브라질•인도 등 신흥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차량 라인업이 SM3•SM5• SM7•QM5 4개에 불과한데다 신차개발능력을 상실한 르노삼성이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고 내수가 좋은 것도 아니다. 르노삼성은 2012년 전년(10만9221대)보다 약 5만대 감소한 5만9926대를 판매했다. 2011년 214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비슷한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경영권이 없고 신차개발을 하기 어려운 한국GM•르노삼성과 쌍용차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해외자본에 넘어간 자동차 메이커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쌍용차는 경영자율권을 일정 부분 인정받고 있다. 최고경영자도 한국인 이유일 CEO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는데, 기술유출이다.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는 기술만 빼돌리고 회사를 팔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현재 최대주주인 마힌드라 역시 상하이차처럼 ‘먹튀 행각’을 저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쌍용차에게 중요한 것은 투자와 신차출시, 그리고 흑자경영이다. 최근 마힌드라는 2016년 출시가 예정된 소형 SUV X100 개발에 8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차량 개발에 필요한 금액은 2000억원. 2016년까지는 총 1조원이 예상된다.

그러나 마힌드라는 추가투자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신차 개발에 필요한 추가자금은 은행대출과 영업이익으로 충당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쌍용차가 흑자로 돌아서야 하는 게 우선이다.

쌍용차는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조8638억원을 올렸지만 영업손실은 990억원에 달했다. 간간이 흑자를 내기도 했지만 약 100억원에 불과했다. 현재로선 쌍용차가 소형 SUV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삼성차, 대우차 합병했다면…

▲ 르노삼성 부산공자의 자동차 조립라인. 르노삼성은 2012년 국내시장에서 전년보다 약 50% 감소한 5만9926대를 판매했다.
미국은 자동차 산업을 떠안았고, 한국은 해외기업에 매각했다. 결과론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국내 정부가 외자유치를 위해 자동차 업체를 해외에 매각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이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운신의 폭도 좁아진 지 오래다. 지경부는 해외 업체에 매각된 3사에 정책적으로 개입하지 못한다. 다만 한국GM 지분 17.02%(비토권)를 보유한 산업은행이 한국GM의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지경부 자동차총괄과 관계자는 “한국GM과 르노삼성의 물량이 빠지고 있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 3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손을 쓸 수 있는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현영석 한남대(경영학) 교수는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내 자동차 회사를 매각했지만 실제 투자는 거의 없었다”며 “해외기업들은 이익과 기술을 빼가고, 국내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정체시켰을 뿐이다”고 꼬집었다. 현 교수는 “대우차와 삼성차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이들 두 개사를 합병하거나 또 다른 기업에게 넘겼다면 국내 자동차 시장엔 더욱 활력이 감돌았을 것”이라며 “현대차•기아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진짜 국내 완성차 업체가 없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해외에 매각된 한국GM•르노삼성•쌍용차 3사. 그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고, 정부는 먼산만 바라보고 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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