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깡통전세’의 늪

▲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전세가 확산되고 있다. 불안정한 부동산시장 탓이다.

매매가 하락과 전세가격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전세보증금과 대출금의 합계가 매매가격을 넘어버리는 ‘깡통전세’가 출현한다.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의 비율을 나타내는 ‘전세가율’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전세금을 날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A아파트에 거주하는 정명인(45•가명)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전세보증금을 떼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정씨는 2011년 4월 A아파트 130㎡(약 39평)형을 3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원래 2억5000만원 정도에 거래되던 아파트였는데 전세난이 시작되자 가격이 올랐다.

근저당 3억8000만원이 잡혀 있는 아파트였지만 정씨는 개의치 않았다. 계약 당시 해당 아파트의 시세는 9억원에 육박했다. 전세보증금과 근저당설정액을 빼더라도 2억원 가량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불황이 이어지며 문제가 생겼다. 아파트의 시세가 7억원대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문의한 결과 ‘급매로 진행할 경우 7억원 이하로 거래될 수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렇게 되면 전세보증금과 대출금의 합계가 매매가격을 넘는 위험상황이 발생한다.

갈수록 커지는 깡통전세 우려

정씨는 이미 지난 1월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집주인에게 통보한 상태다. 그런데 집주인은 다른 전세계약자가 나타나야 전세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아파트 매매가격은 떨어지는데 전세가격은 계속 오르면서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깡통전세란 입주한 주택의 대출금이 과다한 상태에서 집의 가치가 떨어져 세입자가 전세금을 되돌려받기 힘들어진 상태를 말한다.

현재도 아파트가격이 상승하기 힘들다는 심리는 여전하다. 반면 전세가의 고공행진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전월세시장의 전망과 리스크’ 보고서에서 “과거 전세가 추세를 고려할 때 향후 2년 이상 전세가 상승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서울의 전세가율은 65~77%까지 상승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런 상승은 2~4년에 걸쳐 이뤄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깡통전세에 대한 위험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세입자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3월 22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수도권 전세세입자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전세가격 상승의 영향과 시사점’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집값하락과 전세금 상승으로 전세보증금 회수에 불안감을 느끼는 응답자가 절반이 넘는 51.7%에 달했다. ‘아직은 괜찮지만 집값 추가하락 시 보증금 피해가 우려된다’는 답변도 33.5%로 나타났다.

 
이런 우려에도 세입자 5명 중 1명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확정일자•전세권등기•보증보험가입 등 임차보증금 손실에 대비한 대책이 있는지’에 대한 조사결과 응답자의 21.3%가 ‘없다’고 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전세계약 체결 시 반드시 등기부등본을 통해 대출여부와 규모를 확인하고 확정일자•전세권등기 등의 보증금 보장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깡통전세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거안정 대책에도 혼선을 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4월초 부동산종합대책을 발표한다. 여기엔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에 대한 대책도 포함될 예정이다. 그러나 렌트푸어보다는 하우스푸어 구제방안 위주로 짜일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한편에선 개인의 투자실패 사례인 하우스푸어보다는 높아진 전•월세보증금으로 애를 먹고 있는 렌트푸어를 돌보는 게 형평에 맞다고 주장한다. 김은진 부동산114 책임연구원은 “설문조사 결과 하우스푸어 구제를 위해 공공자금을 투입하는 것에는 70% 이상이 반대했지만 렌트푸어에 대해선 공공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깡통전세 위험성이 있는 주택이 수도권에서만 20만 가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은 가구는 전국에 515만, 수도권에 약 330만 가구에 이른다. 이들 주택담보대출 가구 중 수도권에서 전세임대하는 가구는 약 54만 가구이며, 이중 전세보증금을 포함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70%를 초과하는 가구는 19만 가구로 추정된다. 주택산업연구원 측은 이들 가구가 경매에 넘어갈 경우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의 평균 20%를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매가의 하락과 전세가의 상승은 렌트푸어를 유발하는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지만 주택매매활성화를 유인하는 순기능도 있다. ‘비싸게 전세 사느니 차라리 집을 사겠다’는 심리가 발동돼서다. 이에 따라 주택거래가 활성화되면 시세가 오르면서 깡통전세난은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전세가 상승이 주택거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주택가격이 계속 하락하리라’는 심리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주택구매 여력을 갖춘 사람들까지 전세거주를 선택하는 현 상황에서는 깡통전세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이 때문에 시장에선 전세보증금을 날리지 않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반전세나 월세를 찾는 분위기가 형성

 

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2월까지 서울에서 이뤄진 임대차 계약은 5만6889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월세계약은 1만9973건으로 35.4%를 차지했다. 2012년 1~2월 29.7%보다 5.7%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서울 동대문구 S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전세금을 떼일까봐 걱정돼서인지 최근 들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예전엔 집주인이 반전세나 월세를 원했지만 요즘은 세입자 측의 요구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반전세나 월세가 보증금을 날릴 위험이 적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매달 일정액을 지출해야하는 세입자는 생활이 빠듯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반전세•월세의 활성화도 깡통전세의 대책이라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깡통전세는 부동산침체에 기인한 것이고, 침체의 원인은 정부의 정책실패가 주된 요인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월세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정부는 단기적으로 주택매매전환 유인책으로 수요를 분산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공공임대주택정책을 확대해 시장조절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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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날 수 없는 족쇄

미혼 직장인의
또 다른 이름 ‘렌트푸어’

부모로부터 독립한 미혼 남녀 직장인 100중 45명은 렌트푸어인 것으로 나타났다.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274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전•월세 보증금 부담 정도’에 관해 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담되는 편이다’가 44.7%, ‘매우 부담된다’가 39.8%로 나타났다(발표일 3월 28일). ‘적당하다’는 의견은 8.1%였고 ‘부담되지 않는다’는 5.7%, ‘전혀 부담 없다’ 1.6%에 그쳤다.

응답자들이 전•월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은 곳은 ‘제1 금융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거 형태에 따라 대출 자금 조달 방법은 달랐다 . 전세 거주자는 ‘제1금융권(70.3%)’이라는 응답비율이 가장 높았던 반면 월세 거주자는 ‘부모 및 친지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37.5%)’는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보증금 마련을 위해 받은 대출금의 액수는 월세 거주자의 경우 평균 1173만원이었다. 이는 보증금의 약 70.8%에 해당된다. 전세 거주자는 3300여만원으로 전체 보증금의 56.5%를 대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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