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용산」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도구로 오만방자한 국가 폭력을 되새기게 하는 책

만화책이라면 재미가 있어야 맛이다. 함박웃음이 나오거나 가슴 찡한 감동이 밀려오면 금상첨화다. 만화책을 정색하고 읽는 일은 많지 않다. 「꽃피는 용산」은 만화로 된 편지를 묶었으니 분류하자면 만화책이다. 하지만 재미로 보는 만화책과는 거리가 멀다. 답답하고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올라갔다가 공안사범으로 4년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된 김재호씨다. 그가 옥중에서 딸과 아내에게 쓴 400여통의 만화편지를 책으로 엮은 게 「꽃피는 용산」이다. 감옥에서 그린 그림은 거칠고, 문장은 부드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아니, 주목할 만하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4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어서다. 피해자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지금도 농성 중이지만 용산의 그날은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광주의 하늘이 5월만 되면 잿빛으로 보이는 이유와 같다고나 할까.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다. 평범하던 김재호씨가 한순간에 범죄자로 전락하는 과정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이 왜 국가에 찍소리 한번 못해야 하고, 피해자인 국민이 무슨 이유로 쇠고랑을 차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저자는 1984년부터 용산에 터를 잡고 평범한 금은방을 운영하며 살았다. 사실 금은방 이름이 ‘진보당’이니 그리 평범하진 않다. ‘진짜 보물을 취급하는 곳’이란 뜻에서 지었겠지만 말이다.

그는 늦둥이로 본 외동딸 혜연이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진 ‘딸 바보’였다. 그러다 2007년 용산 도시정비사업으로 인해 정들었던 가게가 부당하게 철거될 위기에 놓이면서 어쩔 수 없이 망루에 올랐다. 그는 용산 개발을 반대한 게 아니었다. 터무니없이 책정된 가격을 현실에 맞게 고려해 달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국가는 그를 비롯한 철거민의 요구를 가볍게 묵살했고,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저자는 다행히 참혹한 현장에서 목숨을 건졌다. 대신 그는 순식간에 ‘도심 테러리스트’로 전락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국가는)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사랑하는 처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생이별시켰다”며 “이들이야말로 가정 파괴범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항변한다.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수감생활을 마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4년 만에 나와 보니까 딸아이 몸이 많이 망가졌더라고요. 딸도 이제 사춘기라 한창 절 따라다니며 좋아하던 시절이 지나가서 아쉬워요. 같이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소원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요즘엔 딸아이와 ‘카톡’하면서 지내요. 지금은 딸아이와 아내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합니다.”

사랑으로 꽉 차 행복했던 저자의 가정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과연 이처럼 아름다운 국민의 행복한 삶을 무참히 짓밟는 나라가 저자에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해친 범죄자’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일 만한 자격이 있을까. 얼마 전 개봉했던 ‘남쪽으로 튀어’라는 영화의 연장선에서 다시 한번 짚어볼 대목이다. ‘남쪽으로 튀어’는 국가의 무분별한 구속을 은근히 꼬집는 영화다.

<북 에디터 한마디>
「꽃피는 용산」을 구해온 곳은 광화문 교보문고였다. 출간된 지 겨우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책은 인기없는 책이 꽂히는 서점의 벽면, 그중에서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꺼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용산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이 책으로 다시 한번 용산을 들추고 싶다. 끝을 보고 싶어서다.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김태일 저 | 웅진지식하우스
국가가 돈을 거두고 쓰는 규모와 방향은 개개인의 살림살이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좋은예산센터 소장인 김태일 고려대 교수는 재정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거둘까?’‘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쓸까?’로 구분해 재정의 핫 이슈를 심도 있고 알기 쉽게 풀었다. 이 책은 재정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는 데 제격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저 | 아름다운사람들
정치를 떠나 지식인으로 돌아온 유시민이 내놓은 첫번째 책이다. ‘힐링 열풍’이 불어 닥친 ‘멘붕의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내놓은 유시민식 해독제다. 물음에 연관되는 많은 문제를 부드러운 톤으로 다루고 있다. 세상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한걸음 앞서 시대와 삶의 과제를 고민한 저자의 시각이 돋보인다.

「2013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8명 저 | 문학사상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한국문학 애독자들이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책이다. 특히 대상을 받은 김애란 작가의 「침묵의 미래」는 우화의 형식을 취한 독특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언어’다. 인간이 언어를 상실하는 과정을 개인의 죽음에 연결하는가 하면 언어가 스스로 그 존재와 가치를 되묻고 운명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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