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1] 공직후보자 낙마 끊이지 않는 이유

▲ 박근혜 정부의 인사시스템이 파행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회전문 인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사진=뉴시스)
대통령이 인선한 장•차관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백화점 수준의 비리 의혹이 속속 드러나서다. 이번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공직사회의 고질병이다. 대체 왜 그런 걸까. 답은 간단하다. 맑은 윗물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 고위층의 ‘모럴 해저드’ 이게 문제다.

“부동산 투기나 병역기피도 모자라 이중국적에 성접대, 무기중개상이라니 그저 멍하다. 뭐 이런 사람들을 장관 자리에 앉히려 하는지 모르겠다. 내정자들도 그렇다. 스스로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알아서 거절해야지, 끝까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3월 25일 한 택시운전사가 라디오에서 나온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의 사퇴 소식을 접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장•차관 후보자가 6명이나 비리 의혹으로 낙마했으니 국민이 느끼는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사청문회가 마치 ‘비리경쟁’의 장으로 보여서다. 부동산 투기나 병역비리는 기본 옵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부패사건에 연루되거나 능력이 모자라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인물을 재임용하는 문화다. 이번에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이 증여세 탈루 의혹 외에도 의원 시절 성희롱 관련 동영상으로 논란에 휩싸인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명박 정부에선 이렇게 재임용 물망에 오른 인물이 13명에 달했다.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은 부동산 투기를 하고 쌀 직불금을 부정수급했다는 의혹이 드러났음에도 보건복지정보개발원 초대 원장으로 발탁됐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방송과 인터넷을 감성적 선동 매체와 저급 선동의 공간으로 규정해 물의를 빚었음에도 제1차관까지 승진했다. 이후 문화체육부 장관에 내정됐지만 부인의 위장취업, 위장전입, 스폰서 논란 등을 이유로 사퇴했다.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논문표절과 건강보험 부정수급, 세금 탈루, 공금유용 등으로 물의를 빚고도 사행산업통합감독 위원장 자리에 다시 앉았다.

 
윤태범 방송통신대(행정학) 교수는 “잘못이 있는 인사가 재임용되는 문화는 집권층이 정책실패나 부정행위를 용인한다는 걸 뜻한다”며 “정책의 성공과 실패, 공직의 적합성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공직자를 선발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퇴직공직자가 예비상관 되는 구조

또 하나는 회전문 인사다. 이번에 끝내 낙마하지 않고 장관 자리에 오른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해 황교안 법무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조윤선 여성부 장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두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는 인사다.

회전문 인사는 공직에 있던 사람이 사기업에서 일하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오는 걸 말한다. 말 그대로 ‘돌고 도는 인사’다. 문제가 되는 건 공직자가 사기업에서 사익을 추구하고, 다시 공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는 거다. 전문가들은 공익과 사익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2011년 국정감사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고 산은(KDB)금융그룹의 수장에 오른 강만수 회장이 양주수입업체 디아지오코리아의 탈세를 도와 관세청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건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현직에 있는 공직자가 퇴직자를 예비상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언제든 최고상관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 공직자는 퇴직자의 로비나 청탁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11년 5월 여론조사기관에 위탁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앙부처 공무원 1675명 중 고위공직자 24.3%가 퇴직한 전직 상관을 의식해 의사결정을 내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5.7%는 부당한 압력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문가들이 “사익을 위해 현직 공무원이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는 부정부패로 간주돼 법적 처벌을 받지만 전직 공무원의 권한 악용 행위에 대한 규제는 허술하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회전문 인사가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 박병원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 한승수 전 국무총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모두 고위공직자로 퇴임해 사기업이나 영리 협회의 CEO나 사외이사, 대형 로펌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다 다시 공직을 맡았다. 특히 이 중 일부는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또다시 사기업으로 옮겨 갔다.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BS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겼고, 박병원 전 경제수석과 한승수 전 국무총리는 전국은행연합회 회장과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취직했다. 회전문을 한번 더 돌면 공직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게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공직자윤리법)다. 이 제도는 공직자가 퇴직일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맡았던 부서 업무와 관련된 기업에 취업하는 걸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다. ‘직무관련성’의 범위를 ‘부서 업무’로 좁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직무관련성과 이해관계가 있어도 부서 업무와 무관하다면 기업에 얼마든지 재취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참여연대가 2012년 조사한 ‘퇴직 후 취업제한 실태보고서’를 보면 이 제도의 유명무실함이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6월부터 1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취업 가능하다고 통보한 퇴직공무원 172명 중 103명이 부처 업무와 이해관계가 있는 업체에 취업했다. 전체의 59.8% 수준이다. 그중 61명(전체 대비 35.4%)은 부서 업무에도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업체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태범 교수는 “공직자가 사기업으로 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순 없다”며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의 공직자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말을 이었다. “공무원의 퇴직 후 취업선택 제한은 이후에 벌어질 이해관계의 충돌을 막으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업종이 아니라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 관련 업종이 아닌 상황에서도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에 이런 내용이 일부 있지만 아직도 법안을 조율 중이다. 또 공직자들에게 재산등록을 하도록 했으면 등록재산과 이해충돌 문제를 심사해야 하는데 현행 제도에선 이 부분이 없다. 미국법을 참고해 현행법 체계를 만들면서 정작 핵심을 빠뜨린 셈이다.”

취업 업종 제한보다 행위 제한해야

미국은 연방법에 ‘뇌물수수와 이해상충’에 관한 내용을 명시했다. 이 법에는 퇴직공직자의 특정업체 취업을 금지하기보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법 적용 범위를 넓혀 유사한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막은 셈이다.
영국은 퇴직공직자의 취업가능 여부를 심사할 때 영리사기업 외에 비영리조직(유급만 해당)까지 심사대상으로 삼고 있다. 일본 역시 국가공무원법에 업무관련성의 판단기준을 퇴직 전 소속 기관과 영리기업의 관계, 소속 공무원의 권한과 영리기업의 관계, 퇴직공무원이 취업할 영리기업의 직책과 퇴직 전 소속기관 직책과의 관계 등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홍성태 상지대(교양학) 교수는 이번 인사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회든 상식에 기반하는 공식적인 제도와 욕망에 기반하는 비공식적 제도가 공존한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좁을수록 민주화되고 발전된 사회다. 독재체제에선 공식적인 법과 상식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자가 모든 걸 쥐락펴락한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문제가 드러난 만큼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극단적인 간극을 좁혀야 한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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