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2] 박근혜 인사청문회 ‘2중 잣대’

야당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한 인사검증을 강조했다. 그런 박 대통령이 달라졌다. 고위급 인사로 내정한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하자 ‘인사청문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인사청문회를 이렇게 강하게 하면 누가 정부에 들어오려고 하겠는가’라는 거다. 박 대통령의 인사철학이 구설에 오르는 이유다.

▲ '인사청문회 개선' 논란이 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철학이 시험대에 올랐다.
인사청문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발단은 박근혜 대통령이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에 불만을 내비치면서다. 김용준 전 후보자는 정치권과 언론이 제기한 두 아들의 병역기피와 부동산 투기를 둘러싼 의혹 등으로 1월 29일 자진 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김 전 후보자가 사퇴한 지 하루 만인 1월 30일 강원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 갖은 오찬에서 “인사청문회에서 죄인 취급하듯이 몰아붙이면 누가 후보자가 되려 하겠느냐”며 “청문회는 일할 능력에 맞춰져야 하는데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잇따른 인사실패의 원인을 언론과 인사청문회 탓으로 돌린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인사청문회의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월 31일 경남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고위 공직자의 신상문제는 비공개로 검증하고 국회에서 공개검증할 때는 정책과 업무 능력을 위주로 하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박 대통령은 ‘확실한 검증’과 ‘신상 털기’의 구체적인 차이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개선’ 논란의 계기가 된 김 전 후보자의 낙마는 두 아들의 병역면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전 후보자의 아들은 키 169㎝ 몸무게 44㎏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고시공부 때문에 비정상적인 몸무게가 됐다’는 김 전 후보자의 해명으로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일었다. 아울러 김 전 후보자가 아들 명의로 사들인 부동산이 투기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김 총리 후보자는 스스로 물러났다.

 

잇단 인사 실패, 청문회 탓으로 돌려

한가지 짚고넘어가야 할 게 있다. 김 전 후보자의 적격성 문제가 비단 개인의 비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립성이 요구되는 헌재소장 출신의 국무총리직은 인사 초기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헌재소장을 지낸 인물이 정부의 총리로 가는 게 헌재와 사법부에게 왜곡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5ㆍ18 특별법이 위헌이라는 의견이나 부산판 도가니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솜방망이 판결 등은 사회적 약자 보호와는 거리가 먼 인사로 인식됐다.

김 전 후보자의 낙마가 단순히 일신상의 이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은 스스로 논란의 불을 지폈다.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제도가 원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청문회 개선 발언은 그동안 밝혀온 인사철학과 다르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본말이 전도된 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지적하며 인사청문회가 문제라는 지적을 반박하고 있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 전 후보자는 인사청문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사퇴한 것인데 인사청문회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도개선을 주장하기 전에 도덕성ㆍ경륜ㆍ능력에서 하자가 없는 인물을 지명하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번 발언에서 박 대통령의 시각을 몇가지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는 언론관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은 정부가 파악하지 못한 신상문제를 보완하는 데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언론의 검증을 순조로운 인선의 한 과정으로 보지 않고 장애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박 대통령 스스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정부 말기였던 2002년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달아 낙마했다. 이유는 위장전입ㆍ부동산투기ㆍ세금탈루 등이었다. 그 중심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과 박 대통령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2005년 여세를 몰아 청문회 대상 공직자를 장관으로까지 확대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김 전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인사청문회 제도 완화의 뜻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6월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을 보자.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후보를 겨냥해 이렇게 말했다. “검증 주장을 공방으로 몰고 가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 후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국가관과 가치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권 등으로부터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해명이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기자간담회에서 선대위를 구성하는 과정에 대해 “어떤 분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국민 눈높이에서 어떨까 생각하며 계속 찾고 있다”고 밝혔다.

 

朴 인사철학 시험대에 올라

임기 내내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출신)’ ‘강부자(강남 땅부자)’ ‘회전문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서 “청문회에서 걸리는데 국민이 볼 때 저만한 인품과 경력이면 좋다는 공감대는 형성 돼야 한다”며 “밀어붙이는 것은 절대 안 되고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대선 때마다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말을 바꾼 셈이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이중 잣대를 넘어 같은 현안을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인사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인사청문회의 개선방향은 이렇다. 신상문제는 비공개로 하고 국회 청문회는 후보자의 능력을 검증하자는 거다. 미국 상원의 인사청문회처럼 말이다.

미국 상원의 인사 검증은 비공개이지만 청문회에 앞서 여러 국가기관을 통해 세밀하게 후보자를 조사한다.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기 전에 사전 인사검증을 상당히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진행한다. 미국이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행정ㆍ정책을 중심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이 미국식 사전 검증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집권자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국가기관의 세밀한 사전검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사전 검증이 지나친 사찰로 오해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현행 인사청문회가 도덕성을 검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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