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중고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서울 지역 호텔사업은 난관에 부닥쳤고, 항공우주사업의 길도 멀어 보인다. 여기에 8월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경영권 승계 방안도 뚜렷하지 않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선 대한항공의 ‘질적 성장’에 대한 고민이다. 대한항공의 최근 실적 추이를 보면,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 영업이익은 줄어들고 있다. 대한항공은 그룹 총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다.

대한항공은 2010년 매출 11조4591억원, 영업이익 1조1191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 실적이다. 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영업이익은 감소추세다.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2011년 4601억원, 2012년에는 3252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무려 7939억원 줄었다.

조 회장이 올해 질적 성장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실적 악화를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1월 초 임원세미나에서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양적인 목표를 위한 전진보다는 질적인 성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올해 영업이익 100% 성장치인 6600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대한항공 영업이익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화물의 수송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노선(여객)의 수요 감소도 부담스럽다. 현대증권은 “대한항공의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7% 감소한 2조9800억원, 영업손실은 351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항공의 영업이익 감소는 조양호 회장의 두번째 고민을 부른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항공사업은 글로벌 경기에 따라 민감하다. 사업 컨트롤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항공의 화물과 여객 수요가 감소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가(급유단가)도 경영 변수로 작용한다. 대한항공 외에도 또 다른 핵심 계열사를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의 질적 성장, 신성장동력 육성,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핵심 경영사안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조 회장이 선택한 분야는 항공우주와 호텔사업이다. 현재 대한항공은 회사 내에 항공우주사업본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항공기 제작 기술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조 회장은 국내 유일한 항공기 제작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를 선택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올해까지 4번째 KAI 인수에 도전했지만 계속해서 고배를 마시고 있다. 국내 항공우주사업이 아직은 걸음마 단계로 국가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대한항공이 인수하면 성장이 더딜 수 있다는 업계의 반대 여론 때문이었다.

호텔사업 역시 성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한진그룹은 인천과 제주도에서 호텔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역인 서울에는 운영하고 있는 호텔이 없다. 대한항공은 2008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옆에 위치한 부지(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13만7000㎡)를 매입했다. 전통호텔을 짓기 위해서다. 그러나 학교 경계선 200m 이내 호텔을 지을 수 없다는 학교보건법에 막혀 현재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막혀있는 항공우주와 호텔사업 열어야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이 부지를 공익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찾기에 나섰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세부적인 내용은 계획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방향으로 공익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땅 주인은 대한항공이다.

조 회장이 고민에 빠질 수 있다. 우선 서울시에 땅을 파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땅값만 약 3200억원에 달한다. 서울시가 땅을 매입할 만한 재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서울 지역에서의 호텔사업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떠오르는 방안이 서울시와 대한항공의 협조를 통한 문화시설 건립이다. 호텔건립이 법적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숙박•오락 부문을 최대한 줄이고, 서울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서울 역사관이나 박물관•미술관 등 복합문화공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직 대한항공과 서울시와의 접촉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서울시가 공문을 보내거나 정확한 방향을 제안하면 그에 따른 충분한 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수 경희대(호텔관광학) 교수는 “대한항공이 서울시와 함께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살린 복합문화공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서울시에서 문화시설 건립에 도움을 주려 한다면 호텔 허가를 기다리는 것보다 서울시와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게 (대한항공에게) 훨씬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항공이 호텔 부문을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만약 조 회장이 대한항공 홀로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독자 노선’을 걷는다면 호텔 건립 최종 허가권을 지닌 서울시가 끝까지 대한항공에게 허가를 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조 회장의 선택에 따라 대한항공 호텔•문화시설 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 ‘속도를 내느냐’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 회장의 마지막 고민은 대한항공의 지주사 전환작업이다. 대한항공은 올 8월부터 회사 인적분할을 통해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사실 대한항공은 2~3년 전부터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김&장이 지주회사 전환 업무를 맡고 있지만 처음에는 법무법인 광장이 주관했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한 변호사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경영 투명성 제고, 경영권 승계와 세금 줄이기가 핵심”이라며 “특히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부과되는 엄청난 세금을 피하는 부분에 대해 고심했다”고 말했다.

얽히고설킨 지분관계를 지주회사-자회사 구조로 단순화해 경영 투명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를 위해 대한항공 지분을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조현아 부사장•조현민 상무 등 조 회장의 세 자녀에게 양도하고, 부과되는 증여세를 최대한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조 회장은 대한항공 지분 9.6%, 한진 6.9%, 정석기업 27.2%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며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3남매는 대한항공 지분 0.1%씩을 보유하고 있다. 정석기업 1.2%, 한진 0.03%도 각각 갖고 있지만 지배력을 발휘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주사 전환 핵심은 세금 줄이기

▲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호텔부지. 최근 서울시와 대한항공의 협력을 통해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때문에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선 조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아야 하는데 증여세 세율이 50%에 달한다. 상장사인 대한항공을 예로 들면, 조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대한항공 지분 9.6%(703만7556주)의 평가액은 2850억원이다.(3월 27일 종가 4만500원 기준). 만약 세 자녀가 이 지분을 양도받는다면 1425억원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나머지 핵심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면 승계 비용을 다소 줄일 수 있다. 대한항공이 인적분할하면 사업자회사인 대한항공의 가치는 높게 평가되는 반면 지주회사인 한진칼홀딩스의 가치는 낮게 평가된다. 주식 가격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지주회사 체제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선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진칼홀딩스의 지분율만 높이면 된다는 얘기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홀딩스 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데 이를 조원태, 조현아, 조현민 세 자녀에게 어떻게 넘겨주느냐가 문제”라며 “직접 증여세를 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자금을 마련하는 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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