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 대전에서 이순신이 공을 세우고…
한산도 대전에서 이순신이 공을 세우고…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 호수 37
  • 승인 2013.04.05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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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25회 ①

한산도 큰 싸움에서 만일 조선이 패했다면 조선 땅으로 오직 하나 남아 있던 전라도마저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다. 평양에 있는 소서행장 종의지 등 제장은 수군의 응원과 연락을 얻게 돼 기다리던 수준 10만과 합세해 평양 이북으로 출병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삼천리강산은 풍신수길의 손바닥으로 들어가 다시는 회복할 길이 망연하게 될 것이었다.

 
대장선의 북소리를 듣고 한산도 바다에 매복하고 기다리던 주력 함대 50여척이 일제히 내닫는다. 어영담 등의 선봉대가 죽도 앞 큰 바다에 다다랐을 때에는 뒤따라오는 적의 층각대선이 36척 중선이 24척 소선이 13척 합 73척의 대함대 대세력이 꼬리를 물고 그 뒤를 추격하여 온다. 이는 적의 총대장 부전수가와 총사령장관 협판안치 이하 가등가명 구귀가륭 등 칠장군의 연합함대였다. 이밖에도 후군으로 또 40여척이 방금 안골포를 거쳐 뒤쫓아 온다는 것이었다.

순신이 또 한 번 북을 울리니 일성방포가 뒤미처 일어나며 아까 말한 한산도 안 바다로 판옥대맹선 25척이 중선 15척 소선 10척을 달고 합 50척의 이순신의 주력부대가 마치 물속에서 솟아 오른듯하게 쑥 나선다. 이억기와 원균의 병선도 역시 화도1)뒤에 숨었다가 좌우로 갈라 나와 후로를 단절하였다.

적의 함대는 승승장구하듯이 몰려오다가 불의에 의외로 큰 함대가 돌연히 앞뒤를 막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서 행렬이 어지러워졌다.

이편 함대는 학익鶴翼의 진세를 벌여 적의 함대를 안아 싸고 풍우 치듯 지•현자 대포와 승자대포의 각양 무기를 난사하였다. 맨 앞에 선봉으로 오던 적선 3척이 대포에 맞아 깨져서 배에 탔던 적병이 하나 남지 못하고 물에 빠져서 깨진 널조각을 붙들고 부르짖었다.

용감하게 추격하여 오던 적의 선봉선 3척이 당파되어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뒤에 물밀듯 오던 적선들은 예기가 좌절되어 뱃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도망가려 할 때에 경각간에 난데없는 병선 오륙척이 고성 두룡포2) 쪽으로부터 내닫는다. 이는 순천부사 권준의 병선이었다.

중위장 권준은 각양 대포와 화전을 맹렬히 쏘아 적의 층각선 한 척을 깨뜨리고 적의 응전하는 탄환과 포연을 무릅쓰고 돌입하여 적장 이하 10여급을 베었다. 적진은 견디지 못하였던지 거제 쪽으로 쫓겨 달아나려 하던 판에 문득 소쿠리도로 부터 복병선 십여척이 풍우치듯 내닫는다. 이는 송희립 가안책 등이 탄 순신의 별동대였다.

서까래 같은 크기의 화전과 각종 천지현자대포와 장편전 유엽전을 퍼부어 쏘았다. 적도 사력을 분발하여 맹렬히 응전하였으나 사면으로 이편 함대에게 겹겹이 에워싸여 화전에 맞아 돛에 불이 붙어 타오르니 마치 수없는 불기둥과 같아서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불빛이 되었다. 적선들은 감당치 못하여 갈팡질팡 도망할 길만을 찾을 때에 이 편 장졸의 기세는 충천하였다.

선봉장 어영담이 뱃머리를 돌려 적선 중으로 포탄의 비를 무릅쓰고 돌입하여 적의 층각선 한 척을 깨뜨리고 적장을 쏘아 맞혀 반생반사된 적장을 화살이 몸에 박힌 채로 생포하였다.

때는 점점 황혼이 되어간다. 적선 70여척은 불타고 깨졌으며 남은 배는 틈을 타 도망하려 하였으나 미륵도彌勒島와 한산도의 사이 넓은 바다를 가로막은 수천 수만의 낙화3) 불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적은 이것도 정녕 이순신의 복병이리라 하여 다시 뱃머리를 돌렸다. 멀리서 바라보는 적의 눈에는 낙화 불을 순신의 병선으로 그릇 인정하고 죽도 사이를 향하고 돌아 들어갔다.

순신의 계교에 속은 적선

▲ 조선은 한산도 대첩의 승리로 조선 전토의 제해권을 되찾았다.
순신은 짐짓 대섬 앞바다를 비어두고 멀리 적의 패잔한 함대를 포위태세로서 멀찍이 공격하고 있었다. 갈 길을 잃은 적선은 문어포4)에서 길을 묻고 한산도 속 바다를 외양으로 터진 바다라고 가르쳐 주는 통에 이것이 다 미리 순신의 계책인 줄을 알지 못하고 적선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얼마를 가서 보니 이것이 막다른 골목인 줄을 깨닫고 이순신의 계교에 속은 줄 알았다.

이 수십척의 적선 중에는 장수 협판좌병위脇坂左兵衛(와키자카 사베에)5)와 진과좌마윤真鍋左馬允(마나베 사마노조)6)이 탄 배도 있어서 그들은 용감하게 최후의 항전을 하였다. 그 좁은 한산도 속 바다에서 일대 야전의 격투장이 일어나 포성은 산악을 흔들고 화광은 하늘에 닿은 듯하였다.

그렇게 되어 결국은 세력을 잃은 적선이 전부가 불타고 깨지고 오직 진과좌마윤의 배 한 척만이 겨우 도망하여 그 부하 장졸과 함께 산으로 올랐으나 그 나머지 수천의 군사는 협판좌병위 이하로 다 한산도 속 바다의 귀신이 되고 말았다.7)

진과좌마윤이 부하 수백명을 데리고 산에 오르자 조선수군은 그 탔던 배를 불살라 버렸다. 진과좌마윤은 산 위에서 자기가 탔던 배가 불이 붙는 것과 그밖에도 자기나라의 병선들이 다 불타서 섬멸되는 참담한 광경을 내려다보고 문득 자기만 목숨을 보존하여 도망한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나서 동쪽을 향하여 자기네 임금과 조상의 영靈을 부르며 통곡하고 그 자리에서 칼을 빼어들고 할복자살하였다. 그 부하들 중에도 20여 명이나 주장의 장렬한 죽음을 본받아 따라 배를 갈라 죽고 그 나머지는 혹시나 도망할 길이 있나 하고 캄캄한 밤중에 수풀 속으로 헤매며 애를 썼다.

그 다음날 7월 9일 아침에 도망한 적병의 종적을 수색하는 조선 군사는 진과씨 이하 20여인이 할복자살한 자리를 발견하고 순신에게 보고하였다. 순신은 그 죽은 정경을 양해하고 군사를 지휘하여 적이나마 그 시체들을 묻어주고 술과 음식을 놓고 축제문을 지어 그 충혼을 위로하였다.

한산도 싸움에 이공이 사용한 낙화絡火라는 것은 일명은 연강거화連江炬火라기도 하고 일명은 초부草桴라기도 한다. 칠팔척 되는 나무 두 개를 교차하여 십자형을 만들어 수면에 띄우면 비록 파도가 일어도 전복될 염려는 없다. 그 교차점인 중앙에다가 삼척쯤 되는 돛대를 세우고 그 위에 횃불을 두세 개씩 달고 불을 켜면 이것을 낙화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천개를 만들어 줄로 연결하여 해면을 가로막아 띄우고 밤에 발화하면 황연히 수백척의 병선이 연환진을 벌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날 이 한산도 큰 싸움에 대하여 만일에 조선이 패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일본군은 그 전함대의 세력으로 전라 충청 경기 황해의 제도의 연해를 차례로 점령한 뒤에 서해로 돌아가 조선 전토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어 조선 땅으로 오직 하나 남아 있던 전라도마저 적의 수중에 들어갈 뿐 아니라 평양에 있는 소서행장 종의지 등 제장은 수군의 응원과 연락을 얻게 되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군 10만과 합세하여 평양 이북으로 출병하게 되어 평안도 서북변을 마지막으로 석권하고 의주까지 들이쳐서 선조는 전조선을 다 내어주고 압록강을 건너가게 될 것이니 그리 된다면 삼천리강산은 풍신수길의 손바닥으로 들어가 다시는 회복할 길이 망연하게 될 것이었다.

이날 이 한산도 대승첩에 가장 먼저 적의 층각선 한 척을 깨뜨려 큰 공을 세운 장수는 순천부사 권준이었다. 순천은 큰 고을이라 병선도 상당히 많이 준비하였으며 권준도 용략이 있는 장수이다.

맨 처음 순신이 원정군을 일으킬 때에는 순신의 출정을 반대하던 사람이나 그는 그를 후회하여 지난 번 당포싸움 이래로 순신의 인격과 지략에 성심으로 감복하여 마침내 순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되어서 순신의 고굉심려8)가 된 장수였다.

순신의 휘하 제장의 전공은 이러하다.

권준은 적의 장수가 탄 층각선 일척을 당파하고 적장이하 십인의 목을 베고 적선에 있던 조선사람 일인을 생포하고 하여서 전군의 사기를 돋우었다. 이 생포된 조선인은 적군을 위하여 수로를 인도하던 자였다. 이 사람은 서울에 사는 김덕종金德宗이었다. 순신의 문초함을 따라 적의 수군이 어디 얼마 어디 얼마 있는 것을 상세히 고한다.

일본 수륙군 총대장 부전수가는 서울로부터 내려와서 일본에서 새로 나온 협판 중서의 대함대와 합세하여 군을 네 부대로 나누어 연속 출발하여 일거에 조선 수군의 명장 이순신을 섬멸하고 전라도를 향하려 하던 말이며, 구귀가륭 내도통총의 무리 여러 장수가 거느린 함대 40여척이 뒤를 따라온다는 말과 또 부산에는 아직도 백여척의 병선이 출발하여 올 것이라고 고하였다.

한산도 대승첩 이룬 조선 장수들

▲ 이순신과 조선 장수의 공으로 조선이 한산도 대첩을 해냈다.
그리고 오늘 싸움에 적의 제일 큰 대장은 부전수가와 협판안치라고 하는 말에 권준 어영담 정운 이운룡 이정충李廷忠 위대기魏大器 등 제장들이 베어온 수급 중에 그들의 머리를 찾아보라 하였으나 그의 수급은 없었다. 제 배가 깨질 때에 부전수가와 협판안치는 물에 떨어져 헤엄을 쳐서 다른 배에 기어올라 저의 부하에게 구호를 받은 것이었다.

권준의 다음에 큰 공을 세운 장수는 어영담이었다. 전 부장 어영담도 적장이 탄 층각선 1척을 빼앗아 거기에 탔던 적장 일인을 생포 결박하여 순신에게 바쳤다. 그 장수는 어영담의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어 말을 못한다. 이는 인동에 사는 우근신禹謹身이란 사람이다. 그의 말은 김덕종과 대동소이하였다.

그는 말하되 “일본군사가 제일로 무서워하는 장수는 이순신장군이라는 조선대장이라 합디다” 하고 직고하였다.

사도첨사 김완도 대선 1척을 빼앗아 그 배에 탔던 적장 하나를 사로잡고 머리 16급을 베었다. 흥양현감 배흥립도 적의 대선 1척을 빼앗아 머리 8급을 베니 남은 적군은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많았으며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도 적의 대선 1척을 빼앗아 머리 4급을 베니 이것은 죽이기만 위주하고 머리 베기를 힘쓰지 아니한 까닭이었다.

좌돌격장 영군관 급제 이기남도 대선 1척을 빼앗아 적의 머리 7급을 베었다.[즉 귀선장龜船將이라.]

좌별도장9) 영군관 윤사공尹思恭과 가안책이 합력하여 적의 층각선 2척을 빼앗아 머리 6급을 베었다. 낙안군수 신호도 대선 1척을 빼앗아 머리 7급을 베고 녹도만호 정운도 적의 층각 대선 2척을 불살라 깨뜨리고 머리 3급을 베고 조선사람 3인을 사로잡아 순신에게 바쳤다. 문초한 즉 거제도 사람10) 최필崔弼 등이었다.

여도권관 김인영도 대선 1척을 빼앗아 적의 수급 3급을 베었다. 발포만호 황정록黃廷祿도 적의 층각대선 1척을 깨뜨려 불사르고 머리 2급을 베었다. 우별도장 전 만호 송응민宋應珉도 적의 머리 2급을 베었다. 흥양 통장 전 현감 최천보崔天寶도 적의 머리 3급을 베었다. 참퇴장 전 첨사 이응화도 적의 머리 1급을 베었다. 우돌격장 급제 박이량朴以良도 머리 1급을 베었다.[제2귀선장이었다.]

이순신의 탄 대장선의 제장들도 적의 머리 5급을 베었다. 유군일령장遊軍一領將 손윤문孫允文도 소선 2척을 따라가 대포를 발사하여 적군을 한산도의 산으로 올려 쫏고 유군오령장 전 봉사 최도전崔道傳도 조선 사람 소년 3인을 적선에서 생포하였다.

문초한즉 한성 사람 중남仲男 용이龍伊와 비안11) 사람 영락永樂이었다. 그들의 말에 적의 대장이 한성으로부터 내려올 때에 용인땅에서 전쟁이 있었다는 말과 조선군이 겁을 내어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졌다는 말과 전라도를 향할 것이라는 말이 거의 대동소이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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