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25회 ②

한산도 승리가 있는 다음날 적군의 시체가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을 백성들이 베어 가지고 순신의 함대에 찾아왔다. 자신에게 바치는 것을 순신은 타도의 대장으로서 받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며 백성들에게 타일러 해당 지방의 대장인 원균을 주라고 하였다. 얼마는 순신에게 바쳤으나 다수는 원균이 차지하여 졸지에 그 공이 이억기를 능가하게 되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휘하 제장의 전공은 순신의 제장이 많은 조력 또는 합력하여 주어서 성공하였는데 열기하면 아래와 같다.

전라우도 응양별도장1) 우후 이정충도 적의 층각선 1척을 빼앗아 머리 9급을 베었다. 또 중선 1척도 전포하였다. 좌응양장 어란만호 정담수鄭聃壽도 적의 층각선 1척을 빼앗아 머리 8급을 베었으며 또 중선 1척을 깨뜨렸다. 우응양장 남도포2)만호 강응표姜應彪도 대선 1척을 불사르고 머리 3급을 베고 또 적의 소선 1척을 깨뜨렸다. 조전助戰통장 배윤裵胤도 적의 층각선 1척을 당파하고 머리 8급을 베었다. 전 부장 해남현감 위대기도 적의 층각대선 1척을 빼앗아 머리는 7급을 베었고 또 소선 1척을 불살라 깨뜨렸다.

 
중위장 진도군수 김만수金萬壽도 중선 2척을 빼앗았다. 좌부장 금갑도3) 만호 이정표李廷彪도 대선 1척을 깨뜨렸다. 기전통장 곽호신郭好信도 대선 1척과 중선 2척을 빼앗았다. 우위중부장 강진현감 유해柳瀣도 층각대선 1척을 빼앗았다. 좌부장 목포만호 전희광田希光도 대선 1척과 중선 2척을 깨뜨리고 우부장 주부 김남준金南俊도 대선 1척을 깨뜨리고 머리 2급을 베었고 이억기의 대장선이 층각선 1척을 깨뜨리고 머리 6급을 베었다.

경상우도 제장에 옥포만호 이운룡도 층각대선 1척을 양중에서 전포하고 적의 머리 12급을 베었고 영등포만호 우치적도 대선 1척을 양중에서 전포하고 남해현령 기효근도 층각선 1척을 양중에서 전포하고 머리 5급을 베었고 미조항첨사 김승룡도 대선 1척을 양중에서 전포하고 지세포만호 한백록도 층각선 1척과 중선 1척을 양중에서 전포하고 사량만호 이여념도 대선 1척 중선 1척 소선 1척을 깨뜨리고 소비포권관 이영남도 대선 1척 중선 2척을 양중에서 전포하고 평산포만호 김축도 대선 1척 중선 2척을 양중에서 전포하고 당포만호 하종해河宗海도 대선 1척 소선 1척을 깨뜨려 불사르고 원균의 대장선이 중선 2척을 양중에서 전포하고 하동현감 성천유成天裕도 중선 3척을 불살라 깨뜨렸다.

 
그렇게 되어 나머지 적군 400여명은 힘이 다하여 배를 버리고 한산도 육지로 오르고 적장 중에 가등가명과 장종아부원친 등은 수군명장이라고 이름이 높던 장수이나 이순신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네들이 탔던 배가 깨지매 물에 떨어져 거의 죽게 되었다가 깨진 널조각을 잡아타고 목숨을 유지하여 황혼 어두운 때에 십송정十松亭이란 곳에 상륙하여 간신히 도보로 달아났다.

적장중 총대장 부전수가와 총사령관 협판안치는 이편 진중에 에워싸여 곤경에 처했더니 뒤떨어져 오던 전후장殿後將 관야정영과 굴내씨

 
선의 새 함대 십수척이 와서 구출하였다. 그렇게 되어 대선 2척 중선 7척 소선 5척 합 14척만이 남았다.

이순신의 위세를 빌려 가지고 원균이 방자히 구는 것이 일본군의 눈에 미웠던지 몰라도 관야씨 등 맹장은 바로 원균의 진을 돌파하여 한 귀퉁이를 헤치고 경상우수영 즉 원균의 본영인 오아포 앞바다로 해서 달아났다. 원균은 적장의 돌진에 겁을 내어 혼을 잃고 슬그머니 비켜 주었다. 이것을 본 이억기 이운룡 등은 원균을 욕하고 분기를 참지 못하여 곧 적을 추격하였다. 적선은 쫓겨 대해로 빠져 나와 매미도4) 방향으로 달아나버렸다.

부전수가 이하 적의 제장은 쫓기는 길에 풀이 죽어서 한성으로 돌아갈 때 이를 갈며 원통해하였다. 한시는 이러하다.

순신을 천신으로 숭배하는 제장들

▲ 순신은 잠든 삼군을 깨우며 적의 야습에 대비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순신은 그 시를 읽고는 “일본이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이웃나라를 침략하여 무고한 양국 백성을 죽게 하다가 필경에는 또 명나라의 출병이 있으리라는 뜻으로 이 시를 지어 그 임금 수길을 원망하는 뜻을 담았구나!” 하며 순신은 길게 탄식하였다.

오늘날 한산도에 의항5)이라는 지명이 있으니 그 당시에 적군이 항구에서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배를 버리고 육지에 올라 개미떼 같이 모였다 하여 이름을 의항이라 했다고 한다. 이 싸움에 일본군사는 합 9000명의 여인이 죽고 도망한 사람도 부지기수라 하였으며 처음에 공격해 올 때의 병력은 3만인이라는 말이 있다.

한성에 남아 있던 일본 제장과 각도에 주둔한 일본 장수들이 저의 총대장 부전수가 이하의 수군 제장이 한산도 싸움에 대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이순신을 상대로 싸울 용기가 없어져 감히 서해를 엿볼 생각을 내지 못하였다. 이 한산도 대승첩이 끝난 뒤에 순신은 전함대를 몰고 승전고를 울리고 예기당당하게 견내량 안바다로 나아가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전군은 다 잠이 들었는데 어떤 배 4, 5척이 바다 가운데로 가만가만히 떠돌아다니는 것은 원균이 낮에 공을 세우지 못함을 한하여 바다에 떠다니는 적병의 시체를 찾아 죽은 목이라도 베는 것이었다.

 
원균은 이 어두운 밤에 적병의 시체를 찾아 머리 50~60급을 베어 소금에 절였다. 이것은 싸움이 끝나거든 순신이 모르게 조정에 공을 보고하자는 비루한 생각이었다. 조정에서도 원균을 장재로 알고 불러 올려주는 서인들 대관 중에 이항복, 동인 대관 중에 이산해 같은 무리가 있었던 것이었다.

순신은 밤에도 갑옷을 벗지 아니하고 북을 베개하고 누웠더니 아득한 밤하늘에 기러기와 물새 떼가 높이 떠서 울며 날아온다. 순신은 자다가 돌연히 일어나 북과 나팔을 울리도록 명하여 삼군의 잠을 깨우고 제장을 자기 배로 불러들여 하령하기를 “적이 본래로 속임수가 많고 또 금일의 패전을 보복하려 하여 우리의 피폐한 때와 잠든 틈을 타서 야습을 할 듯하니 다들 미리 준비하였다가 곧 응전하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삼도 병선은 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들어 포문을 열고 싸움을 시작하였다. 적은 크게 놀라 낭패하여 급히 뱃머리를 돌려 오던 방향으로 달아났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삼도의 대소제장이 순신의 귀신 같은 도략을 듣기 위하여 상선에 모여들어 그 먼저 아는 도리를 물었다.

순신은 빙그레 웃으며 “그것 어렵들 않은 것이오. 내 한번 시험해 본 것이 우연히 들어맞음이오” 하며 고시 일수를 읊는다.

“원래 밤이 깊어지면 기러기와 물새들이 높이 뜨는 일이 없소. 조류는 대개가 밤눈이 어둡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난밤에는 기러기와 물새들이 높이 떠 날아오르니 정녕코 적선이 엄습하여 옴으로 물새들이 놀라 날아오른 것이니 격물치지라는 것이 이러한 것이 아니겠소?” 하고 설파하였다. 제장들은 원균 한 사람 외에는 다 탄복하여 이로부터 순신을 천신으로 알고 숭배하기를 더 하였다.

 
판부사 석금石琴 신헌申櫶이 “월흑안비고 선우야둔도月黑雁飛高 單于夜遁逃 역시 공의 뜻이 나타난 것이며 독룡잠처수편청毒龍潛處水偏淸7)이란 것과 벌목정정산갱유伐木丁丁山更幽8)라는 글귀도 세상에 전하길 공의 실제 행적이라 한다.

이순신은 그 뒤 수년 후 늦가을에9) 한산도 제승당에서 그 시운을 따라 일수시를 지어 답답한 심사를 나타내니 그 시는 이러하였다.[한산이십음閑山二十吟 중의 하나이다.]

후인이 시를 지어 추화追和하니 아래와 같다.

명재 윤증이 시에 덧붙였다. “지금 나라의 남북에 적으로 인해 근심이 가득하나 수치를 아직 씻지 못하였으니, 사람들이 장군을 그리는 마음은 오래되어도 다하지 않는다. 우리 같은 무리들은 다만 무딘 칼일 따름이다.”

한산도 대승리가 있은 그 다음날에 적군의 시체가 화살에 맞아 죽은 것, 배가 깨져 물에 떨어져 죽은 것이 그 수가 기천기만이어서 조수를 따라 밀려서 한산도 부근 일대 연안에 사는 백성들이 그 수급을 베어 가지고 순신의 함대에 찾아와 바치는 것을 순신은 타도의 대장으로서 받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 하여 그 백성들에게 타일러 해당 지방의 대장인 원균을 주라고 하였다.

그리되어 그 수급 좋아하는 원균은 좋아서 미칠 뻔하였다. 얼마는 순신에게 바쳤으나 다수는 자기가 차지하여 졸지에 그 공이 이억기를 능가하게 되었다.

한산도 큰 싸움의 승첩한 장계가 의주 행재소에 이르기는 십여일 뒤 7월 하순께였다. 적막한 행재소에서 군신이 소서행장 종의지 등 일본군이 밀려들어 오지나 아니하나 하며 또 명나라로부터 구원병이 언제나 나올 것인가 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일본수군 10만이 서해로부터 와서 수륙병진할 터이니 대왕의 행차가 장차 어찌 될지 살피지 못하겠습니다.

이는 부전수가와 협판안치 등 수군이 남방연해에서 이순신의 수군을 멸하고 서해를 돌아오리라는 말이었다. 선조는 이러한 서면의 위협을 받고는 수륙군이 병진할 것이라는 데 혼이 몸에 붙지를 못하였다.

이때에 전라도사 최철견이 감사 이광의 명을 받아 좌수사 이순신이 견내량 한산도 사이에서 대승전한 첩서를 가지고 밤낮 달려와서 행재소로 온 것이었다. 후에 남파 홍우원의 시에 일렀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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