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신데렐라 마돈나
세계적인 엔터테이너 마돈나가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마돈나의 재산은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마돈나는 지난해 월드 투어 ‘MDNA’를 통해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향수 제품 ‘트루스 오어 데어(Truth Or Dare)’로 6000만 달러, 패션 상품 판매 등으로 7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재산 규모로 마돈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연예인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 정도다. 마돈나는 공연뿐만 아니라 화장품·패션제품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이런 부대사업은 마돈나라는 브랜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적인 엔터테이너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면 이룰 수 없는 성취다.
마돈나의 성공 비결은 과감한 변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음악은 물론 이미지에서도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다. 그의 음악세계는 이런 변화에 힘입어 영역을 계속 확장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짜릿한 감동을 주는 음악이나 춤도 여러 차례 접하면 흥미가 반감된다. 나중에는 밋밋하다거나 단조롭다는 느낌마저 갖는다. 이게 한계 효용 곡선의 본질이다.
대중은 까다롭고 변덕스럽다. 지루한 걸 참지 못한다. 같은 스타일, 고정적인 이미지를 고집하면 어느새 외면당하고 만다. 단순한 변화로는 부족하다.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대세에 밀려 변화를 모색하면 감동을 줄 수 없다.
도넛 아르바이트생의 팔색조 변신
마돈나는 여우처럼 대중의 심리를 꿰뚫어 봤다. ‘지속적인 변주變奏가 성공 비결’이라는 진리를 놓치지 않았다. 로큰롤·발라드·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한편 도발적인 섹시 아이콘을 고집하다가도 에비타 같은 영화에서는 성녀聖女로 탈바꿈했다.
마돈나는 1978년 미시간대학교 무용과를 중퇴한 후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진출했다. 뉴욕에 왔을 때 손에 쥐고 있던 돈은 달랑 35달러였다. 던킨 도넛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엔터테이너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는 “뉴욕으로 진출한 게 내 생애에서 가장 용감했던 결정”이라고 평가한다.
마돈나는 1994년 발라드풍의 ‘기억할게요(I’ll remember)’를 발표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장르 변화에 맞춰 조신한 모습을 연출했다. 마돈나는 1995년 에비타에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자신보다도 훨씬 더 사랑하는 ‘에바 페론’을 연기했다. 마돈나는 연출을 맡은 앨런 파커 감독에게 “나는 이 배역을 위해 태어났으니 반드시 나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편지로 요구하기도 했다. 마돈나는 열연을 통해 이런 요구가 터무니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녀는 영화 촬영 도중 몇 번이나 앓아누울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변신으로 매력 극대화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겸 지식정보부장
참고문헌
1) Madonna worth a billion dollars? PRESS
ASSOCIATION. Fri, Mar. 29, 2013
2) Madonna, WIKIPEDIA(The Free Encyclopedia)
정문재 뉴시스 부국장
webmaster@thescoop.co.kr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