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실업급여•체당금

▲ 고용노동부가 실업급여와 체당금의 부정수급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하고 있지만 부정수급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실업급여와 체당금이 줄줄 새고 있다. 사업주와 노동주가 공모해 실업급여•체당금을 부정수급하는 사례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실업급여•체당금을 불법으로 빼돌리기 위한 유령회사까지 설립되고 있다. 경기침체가 부른 또 다른 재앙이다.

#허위 직원 수십명을 모집해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알선하고, 그 대가로 수억원의 체당금을 챙기려 한 일당이 올 2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0년부터 경영난을 겪던 소규모 봉제공장 사업주들에게 접근해 실업급여•체당금의 부정수급을 공모했다.

글로벌 불황이 깊어지던 2010년. 소규모 봉제공장 사업주에게 한 일당이 접근했다. 이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던 사업주들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실업급여와 체당금 제도를 악용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체당금은 퇴직한 근로자가 받지 못한 임금을 국가(고용노동부)가 대신 지급해 주는 것을 말한다.

한 푼이 아쉬운 사업주와 손을 맞잡은 일당은 우선 가짜 직원 39명을 모집했다. 급여기록과 출퇴근 카드, 매출 장부를 조작해 고용신고를 했다. 단속을 피할 요량으로 일당은 가짜 직원들에게 업무와 직책까지 교육했다. 이런 식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최소기한인 180일을 넘겼다. 이후 가짜 직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관할 고용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해 수급했다. 가짜 노동자들이 2010년 5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총 182회에 걸쳐 받은 실업급여는 1억6000만원에 달한다. 이 돈 중 일부는 일당과 사업주들에게 넘어갔다. 쉽게 말해 사업주들은 직원을 고용하지도 않고 돈을 번 셈이다. 일당은 ‘알선’ 대가를 받았고, 가짜 직원들 역시 수고비를 챙겼다.

이 일당은 약 5억5000만원에 달하는 체당금까지 부정수급하려다 고용감독관의 현장실사에 덜미가 잡혔다.

# 또 다른 일당은 2008년 한스아이테크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이들은 2008년 12월~2009년 2월 가짜직원 69명을 회사에 허위 입사시킨 뒤 급여를 송금했다가 현금으로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회사공금 3억1695만원을 횡령했다. 가짜직원 69명 중 18명은 실업급여와 체당금 1억2987만원을 부정수급했고, 돈의 일부는 일당에게 흘러들어갔다.

 
검찰은 올 3월 11일 공금횡령은 물론 실업급여와 체당금까지 편취한 일당 3명을 구속했다. 검찰 관계자는 “체당금 불법수령은 만연해 있는 사기 수법이며, 사업주와 노동자가 공모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며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실업급여와 체당금이 줄줄 새고 있다. 사업주와 노동자가 짜고 실업급여와 체당금을 부정수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터넷에 실업급여를 편법으로 타내는 방법이 버젓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심지어 실업급여와 체당금을 노리는 유령회사까지 설립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는 연평균 2만3818여명이다. 적발된 부정수급액은 연평균 157억원가량이다. 같은 기간 체당금의 부정수급액은 연평균 약 2억8519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것이 적발된 부정수급 규모라는 점이다. 실제 부정수급액은 훨씬 많다는 얘기다.

부정수급 적발 어렵고, 적발에 한계도…

무엇보다 실업급여의 부정수급이 문제다. 실업급여의 규모가 체당금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기침체 장기화로 실업급여 지급이 늘어나면서 고용보험기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실업급여•고용안정•직업개발 등에 사용되는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 3268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5조6071억원이 걷힌 반면 5조9339억원이 지출됐기 때문이다. 고용보험기금의 80% 이상은 실업급여로 지급된다. 그 결과 실업급여 계정은 2007년 이후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적립액은 4년 전보다 60% 이상 줄어들었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철저하게 가려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를 적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업주와 노동자가 공모를 하면 더욱 그렇다. 실업급여나 체당금의 부정수급 여부를 조사했던 일선 고용지원센터 관계자는 “실업급여 부정수급 사건은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부서에서 이상하다고 판단해 조사를 의뢰하거나 주변 인물들의 제보를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실상 사업주와 직원이 공모하면 적발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적발이 쉽지 않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지급요건을 강화하고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면 부정수급을 적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해 약 120만명에 달하는 실업급여 신청자를 일일이 조사하기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일이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선 고용지원센터 조사업무 담당자를 모두 합해봐야 1000여명에 불과하다”며 “인원을 늘려 부정수급을 포착한다고 해도 인건비를 감안하면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원을 늘려 부정수급을 적발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론 손해라는 얘기다.

실업급여•체당금의 지급업무는 일종의 서비스 분야고, 부정수급 조사는 처벌 분야이기 때문에 지급요건을 강화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다른 고용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에 자격요건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신청절차가 까다롭게 만들면 선의의 실업급여 신청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어, 어디다 장단을 맞춰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실업급여의 부정수급은 제보를 통해 적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보가 활발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고용노동부가 부정수급자 제보에 관한 포상금 제도를 적극 홍보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부정수급액의 20% 내에서 최고 3000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지난해만 해도 총 3억5500만원가량의 포상금이 지급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정수급자의 지인들이 제보를 하지않아 높은 포상금을 지급함에도 제보는 뜸하다.

 
사업장 관리 강화에 역점 둬야

고용노동부가 실업급여 부정수급자에 대한 각종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장석철 고용노동부(고용지원실업급여과) 사무관은 “실업급여나 체당금을 부정수급하기 위해 공모하는 행위는 범법행위로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다”며 “실업급여를 부정수급하면 실업급여액의 최고 5배까지 회수금을 물릴 수 있는 법안을 상정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선 이 개정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처벌규정 강화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황덕순 연구위원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모니터링을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며 “유령회사를 만들어서 실업급여와 체당금을 부정수급하는 경우에는 조세정보와 고용보험정보를 대조 확인해서 적발하고, 사업장 규모에 비해 실업급여 지급이 많은 기업들은 잠재 위험군으로 분류해서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1%씩 임의로 사업장을 선정해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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