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막 내린 금융권‘4대 천왕’시대

‘금융권 4대 천왕’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을 쥐락펴락하던 그들이지만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 특히 우리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의 차기 수장이 누가 될 것이냐에 관심이 쏠린다. 새 인물이 등장하면 금융권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까. 금융권 지각은 벌써 흔들리고 있다.

▲ 3월 28일 강만수 KDB산은그룹회장(사진 오른쪽)이 사퇴한 데 이어 4월 14일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전 회장은 일찌감치 떠났다. 강만수 KDB산은금융그룹 회장은 3월 28일 사퇴했고,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사의를 밝혔다. 어윤대 KB금융그룹 회장이 남았지만 연임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 4대 천왕’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어윤대 회장, 이팔성 회장, 강만수 전 회장, 김승유 전 회장을 일컬어 금융권 4대 천왕이라고 불렀다. 모두 친MB 인사들이다.

금융권의 초점은 우리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의 차기 수장에 모아지고 있다. 우리금융은 4월 23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하마평이 벌써 무성하다. 사실상 공기업인 우리금융그룹(정부지분율 57%)의 특성 때문이다. 우리금융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빛은행•평화은행•경남은행•광주은행•하나로종합금융 등 5개 금융회사를 정부가 하나의 그룹으로 묶으면서 탄생했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 인사에는 정부 입김이 크게 작용해 왔다.

차기 회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주요 인물은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 민유성 전 KDB산은금융그룹 회장이다. 이순우 우리은행장, 이덕훈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 대표(전 우리은행장), 이종휘 신용회복위원회위원장(전 우리은행장) 등 전현직 우리은행장도 강력한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권 안팎에선 불편한 시선이 쏟아진다. ‘돌려막기식 낙하산 인사’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성낙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대변인은 “공공기관의 기관장은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으로 임명되도록 정해져 있다”며 “금융기관 수장 인사는 정부의 부당한 개입과 외압 없이 이해당사자들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선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KB금융그룹은 어윤대 회장의 퇴임 이후에 대비해 새판짜기에 돌입했다. 4월 26일 예정된 이사회에서 차기 회장 선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KB금융그룹 역시 ‘낙하산 인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KB금융그룹은 순수 민간회사임에도 정부의 인사개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주주’는 있지만 ‘사주’가 없는 구조를 낙하산이 파고든 탓이다. 더구나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KB금융그룹차기 회장에 친정부 인사가 앉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금융의 민영화가 추진될 경우 이를 인수할 유력후보가 KB금융그룹이라서다. 이에 따라 KB금융그룹 차기 회장 후보는 우리금융그룹 회장 후보군과 동시에 하마평에 오르내릴 공산이 크다.

떠나는 사람, 새로 올 사람

실제로 KB그룹 차기 회장에 오르내리는 인물은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전광우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

 

장,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등으로, 내부인사가 아니다. 박병권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정부 인사가 후보군에 오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이제는 내부에서 경영진이 탄생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선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과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내부 경영진 중 유력한 회장 후보인 것으로 본다.

인사논란은 우리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임명절차가 마무리된 홍기택 KDB산은금융그룹 회장도 적격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기택 회장은 과거 금산분리를 반대하고, 산은 민영화를 찬성하는 견해를 많이 폈다. 그런데 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과 거리가 있다.

금융업 경험도 부족해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이전에 금융기관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긴 했지만 홍 회장은 주로 학자의 길을 걸어 왔다”며 “현장경험은 농협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것이 전부”라고 꼬집었다. 실무감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금융권을 쥐락펴락하던 4대 천왕이 물러나면서 금융권의 지각변동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첫째 관심사는 우리금융의 민영화다. 박근혜 정부가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금융업계 한편에선 사직 의사를 밝힌 이팔성 회장에게 미련을 보이기도 한다. 이 회장은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해 2010~2012년 세차례에 걸쳐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 M&A 작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정부 지분 17%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는데는 성공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차라리 이 회장이 ‘민영화 작업’을 끝내고 떠나는 게 우리금융에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민영화 이후 전문성 있는 민간 인사를 우리금융 수장에 앉히고 깨끗이 새출발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다”고 덧붙였다.

학계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윤석헌 숭실대(금융학) 교수는 “어떤 의미로 그런 의견이 나오는지 이해는 하지만, 이 회장이 물러나겠다고 뜻을 표명한 현 시점에서는 불필요한 얘기”라며 “지금은 우리금융 민영화에 적합하면서도 납득이 갈 만한 인물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KB금융그룹이 인수하면 ‘메가뱅크’ 논란이 일 게 뻔하다. 우리금융 직원들의 거부감도 크다. 외국계 회사가 인수하면 ‘제2의 론스타 사태’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다. 우리금융의 민영화가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 급선무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하나금융그룹과 외환은행의 통합건이다. 외환은행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 하나금융지주는 바람 잘 날이 없다. 합병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시너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외환은행은 현재 상장폐지가 진행 중이다.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됨에 따라서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어떻게 이들을 아우를 수 있을지도 금융권의 주목거리다.

 
KB금융그룹은 비은행권으로의 사업 확대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KB금융그룹은 영업이익의 80~90%를 KB국민은행에 의존하고 있다.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KB금융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한 2008년부터 시작됐다. 어윤대 회장도 ING생명 인수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꾀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금융지주사의 존재 이유는 다양한 사업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은행 업종 하나에 에너지가 집중되는 모양새는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라 차기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사업다각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KB금융그룹 같은 공룡사업자가 사업다각화를 추구하게 되면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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