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 오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4월 16일 회사 매각 결정을 발표하자 그의 ‘의도’가 도마에 올랐다.(사진=뉴시스)
공수표냐 승부수냐.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심판대에 섰다. “공매도 때문에 경영을 할 수 없다”며 주식 전부를 해외에 팔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거세다. 공매도가 아니라 실적을 부풀린 게 셀트리온의 진짜 문제라는 얘기다. 서정진 회장의 ‘공매도 발언’에 숨은 뜻은 무엇일까.

“주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회사는 목표주가가 없다. 손익보다 주가가 두 발자국 뒤에 따라왔으면 한다. 주가는 손익이 이끌어야 한다. 이벤트가 이끄는 주가는 실속이 없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주식철학이다. 그랬던 서 회장이 입장을 바꿨다. 공교롭게도 공매도 때문이다. 서정진 회장은 4월 16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시장의 탐욕스런 투기세력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며 “셀트리온을 투기세력의 계속되는 의혹과 공격에 맞설 수 있는 굳건한 회사로 만들기 위해 다국적 제약사를 대상으로 회사매각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공매도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기법이다. 하락장이 예상될 때 해당 종목의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투자자가 주식을 빌려 매도주문을 낸다. 주가가 예상대로 떨어지면 주식을 매입해 매도주문 당시 가격으로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긴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은 2011년 4월 1일~2013년 4월 15일 2년 동안 공매도 금지기간을 제외한 432거래일 중 412일(95.4%) 동안 공매도에 시달렸다”며 “공매도 세력에 대한 관계기관과 당국에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지만 당국에선 너그러운 태도만 보였다”고 주장했다. 서 회장은 거대자본 세력의 공매도 행위와 이런 행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관계당국 때문에 ‘경영 못 하겠다’며 백기를 든 셈이다. 셀트리온 소액주주동호회 측은 ‘작전세력의 농간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런 결정을 내렸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주가가 떨어지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이들이 공매도 세력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매도는 실적부실 의혹 등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일 없다’는 얘기다. 셀트리온의 지난해 매출은 3489억원, 영업이익은 197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률은 56%다. 올해는 전년보다 48% 늘어난 5104억원을 매출 목표로 잡고 있다.

서 회장의 지론처럼 ‘손익이 주가를 이끈다’면 셀트리온의 주가는 상승곡선을 그렸어야 맞다. 그런데 공매도가 판을 친 탓에 셀트리온으로선 주가방어에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서 회장은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서 회장의 공매도 비판을 순진하게 봐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램시마 판매실적을 부풀렸기 때문에 공매도가 발생한 것이고, 서 회장의 공매도 비판은 이를 희석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셀트리온은 2006년부터 다국적 제약회사에 바이오시밀러(복제약)를 CMO(의약품 대행생산 방식)로 생산•공급해 2007년부터 매출이 발생했다. 매출은 2008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2008년 836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3502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주가는 더 큰 폭으로 올랐다. 2008년 6월 1만원이 채 되지 않던 주가는 2012년 6월 6만원을 넘겼다. ‘거품 때문에 공매도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더구나 셀트리온은 지난해 7월 국내 허가를 받은 바이오시밀러 ‘램시마(Remsima)’를 12월 해외 판매업체인 계열사 셀트리온헬스케어에 팔았다. 그 결과 셀트리온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늘어났지만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사정은 달랐다. 선진국 시장에서 판매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재고자산(2981억원)만 증가했다. 셀트리온의 장부상 실적은 늘어났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적이 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나마 있는 실적도 온전하지 않다. 거품이 있으니 공매도로 주가가 제자리를 찾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가 승인을 받으려면 6개월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미리 9~10개월치 재고를 쌓아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그는 “램시마는 2개월 뒤인 올해 상반기 중에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램시마 판매실적은 부풀린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해명은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서 회장의 말대로라면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은 유럽 승인이 나는 상반기 안에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굳이 수천억원의 자금을 쏟아 부어가며 주가를 방어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증권업계에서 ‘도대체 왜’라는 의문 부호를 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올해 누적 공매도 비중(4월 15일까지 거래대금 기준)을 볼 때 셀트리온의 공매도가 가장 심했던 것도 아니다. 유가증권시장을 합쳐 봤을 때 1위는 롯데하이마트(17.99%)다. 다음으로 영원무역(16.45%), 현대산업(15.66%), 대우건설(15.06%), 현대상선(13.58%), 아모레퍼시픽(12.78%) 순이다. 공매도 비중이 모두 10% 이상이다. 셀트리온의 공매도 비중은 6.29%로 전체 상장사 중 28번째다. 통상적으로 공매도는 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공매도 비중이 높아도 주가가 오르는 기업이 있다. 롯데하이마트는 주가가 8.26%나 올랐다. 영원무역도 올랐다. 그래서 주가 하락의 원인이 공매도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유야 어찌 됐든 서 회장은 또다시 공격을 받는 처지로 밀렸다. 한편에선 ‘사기를 치고 있다’는 극단적 비난까지 서슴지 않는다. 서 회장으로선 격세지감을 느낄지 모른다. 코스닥 대장주 ‘셀트리온’을 성장시킨 주역이라는 찬사는 온데간데없다. 더구나 셀트리온 창업 초기 그의 별명은 ‘사기꾼’이었다. 그가 2000년대 초에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을 만들겠다며 투자금을 구하러 다닐 때 붙은 별명이다.

서 회장의 계획을 들은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는 성공일로를 거듭했다. 공언했던 대로 생산공장을 건립했고, 이 공장을 활용해 다국적 제약업체인 BMS(브시스톨마이어스퀴브)와 생산계약(2005)을 맺으면서 수익을 남겼다. 남들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던 바이오시밀러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임상시험을 통과한 램시마와 CT-P6은 셀트리온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램시마는 미국 존슨앤드존슨사의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레미케이드’를 본떠 만든 복제약으로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을 통과한 바이오시밀러다. CT-P6은 유방암 체료제로 개발된 허셉틴과 동일한 성분의 바이오시밀러다.

두달 후 평가 갈릴 듯

셀트리온을 처음 만든 그때처럼 서 회장에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가 모든 의혹을 털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올 6월 램시마가 유럽에서 정상적으로 승인을 받으면 재고물량이 풀려 나가기 때문에 공매도 세력이 설 자리를 잃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서 회장이 의혹을 해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며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쌓여 있는 재고를 털어내면 그만이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기자회견 다음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내 이익을 위해서 매각선언을 번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2개월 뒤 그동안 주장했던 게 사실로 확인되고, 주주와 국민이 ‘네 말이 사실인 것 같으니 번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 번복할 수도 있다.”

서 회장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놔도 된다. 2개월 후면 어차피 결과가 나온다. 유럽 승인이 떨어지면 ‘역시 서정진’이라는 찬사가 나올 거다. 그렇지 않다면 ‘양치기 CEO’라는 주홍글씨가 붙을 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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