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매각설 휩싸인 STX다롄

STX그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자금난 탓이다. 중국 내 자회사인 STX다롄을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대안이 떠올랐다. 지분 일부를 매각하든지 경영권을 파는 것이다. STX그룹은 “경영권을 매각하는 일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 상황이 만만치 않다. 자칫하다간 STX다롄이 중국 조선소가 될 수도 있다.

▲ 조선업 호황기 시절의 STX다롄 종합생산기지의 모습. 최근 모회사인 STX그룹이 자금난에 빠지면서 STX다롄도 휘청이고 있다.

다롄大連시는 중국 동북지방의 경제중심지다. 랴오둥遼東 반도 끝 해안에 자리 잡은 부동항이자, 하얼빈哈爾濱으로 연결되는 남만주 철도의 시작점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걸리는 가까운 도시다. 다롄시에서 배로 30분 정도 들어가면 창싱도長興島가 나온다. 귤농사와 관광이 주업이던 창싱도에 2000년대 중반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세계적인 규모의 조선소가 들어선 것이다. ‘STX다롄’이다.

2000년대 초 STX그룹은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STX조선해양이 보유한 진해조선소로만으로는 주문물량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강덕수 STX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한국과 가까우면서도 넓은 해안을 끼고 있는 다롄시 창싱도에 조선소를 세우기로 했다. 2007년 3월 준공한 STX다롄조선소는 규모부터 남달랐다. 부지는 여의도보다 2배 큰 550만㎡(약 170만평), 배후단지 규모는 330만㎡(약 100만평)에 달했다.

모그룹 위기 STX다롄으로 번져

STX다롄은 STX그룹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지만 중국정부의 의지도 한몫했다. 대형 조선소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조선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지분을 제한하고 있는 중국정부가 STX다롄만은 STX그룹의 100% 지분소유를 인정할 정도였다.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중국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STX다롄은 성장을 거듭했다. 해양플랜트 제작시설은 세계 최대 규모다. 안벽은 세계에서 가장 긴 5㎞다. 강재가공공장의 연간 생산량(100만t) 역시 세계 최대다.

이런 STX다롄이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경영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모회사인 STX그룹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STX그룹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돈을 끌어다 썼다가 부메랑을 맞고 있다. 이 그룹이 지난해말까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약 11조5000억원으로 파악된다. 그중 KDB산업은행이 3조96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수출입은행이 1조9700억원, 농협이 2조3000억원, 우리은행이 1조6000억원, 정책금융공사가 1조2000억원을 지원했다. 일부 저축은행도 상당한 자금을 제공했다.

기업이 자금난에 빠지면 해결할 방법이 많지 않다. 중요자산을 처분하거나 계열사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다. STX그룹 역시 이런 전략을 택했다. 유럽 특수선 업체인 STX OSV와 STX에너지 지분을 매각해 7680억원, 3600억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자금난을 극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주력계열사인 STX팬오션을 공개매각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좀처럼 매각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STX다롄 매각 통한 자금 확보다.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STX그룹이 보유한 STX다롄의 지분을 일부 처분하거나, 경영권을 매각하는 것이다. 지분을 일부 처분하는 것은 지난해부터 공론화돼 왔다. 30~40%의 지분을 중국•홍콩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것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STX다롄의 지분 100%를 보유한 STX그룹이 30~40% 지분을 중국에 처분해도 경영권은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정 부분의 지분을 처분하는 내용이 심도 있게 논의됐던 것으로 안다.”

문제는 STX그룹의 자금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STX그룹의 대표 회사격인 STX조선해양까지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했을 정도다. 그러자 STX다롄의 매각을 통한 자금확보설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번엔 ‘경영권 매각’으로 내용이 커졌다.

노르웨이의 선박전문지 ‘트레이드윈즈’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공공기관과 금융기관들은 STX다롄에 대한 실사작업에 착수했다. STX측의 자금지원요청에 따른 형식적인 실사일 수도 있지만 경영권 인수를 위한 게 아니냐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중국도 위태로운 STX다롄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STX다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2만8000명이다. 한국인 관리직원 몇백명을 빼면 모두 중국인이다. 지역경제도 생각해야 한다. STX다롄이 파산하면 지역경제가 무너질 수 있어서다. 올초 다롄은행은 STX다롄에 5000만 달러(약 560억원)를 긴급수혈하기도 했다.

STX다롄이 매력적인 인수대상이라는 점도 중국정부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STX다롄 조선기지는 크게 조선•해양플랜트•엔진 생산기지 등 3곳으로 나뉜다. 조선기지에서는 벌크선•자동차운반선•석유운반선 등 선박을 건조한다. 해양플랜트 생산기지에서는 고정식•부유식 해양 플랜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엔진 생산기지에서는 주조•단조는 물론 주요 엔진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STX다롄의 이런 체계적인 생산시스템은 한국•일본과 선박수주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도 군침을 흘릴 만한 요소다.

관건은 중국이 자금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STX다롄의 경영권을 인수하느냐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STX다롄의 정확한 기업가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건립당시 투자금을 근거로 추산이 가능하다. 2000년대 중반 STX다롄 건립을 위해 투입된 투자금은 약 2조원이다. 이후 기업가치가 향상됐겠지만 글로벌 조선업경기의 하락으로 대부분 상쇄됐다. 업계에선 STX다롄의 현재 기업가치가 건립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STX다롄 경영권 매각하나

그렇다면 1조원만 있으면 STX그룹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조선업에 힘을 쏟고 있는

 

 중국정부로선 충분히 융통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STX그룹 측은 경영권 매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TX그룹은 4월 16일 공시를 통해 “STX다롄조선유한공사는 자본유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경영권을 양도한다고 해도 중국은 STX다롄을 관리할 만한 기술력과 운영능력이 없다”며 “향후 1개월 이내에 STX다롄과 관련된 내용을 재공시할 예정이지만, 경영권 매각은 일부 언론에서 너무 앞서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STX그룹이 STX다롄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STX그룹의 국내 채권단은 STX다롄의 경영권을 매각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TX다롄에 돈을 빌려준 중국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경영권 매각을 통해 회사가 빨리 정상화되는 게 유리하다. 그래야 대출금을 돌려받을 수 있어서다.

STX다롄은 올해 말까지 중국 금융기관들로부터 차입한 자금 40억 위안(약 7200억원)을 순차적으로 상환해야 한다. 자금을 지원한 중국 금융기관들은 STX다롄의 지분 75%를 담보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TX그룹의 주채권자인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STX다롄 매각과 관련)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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