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4] 자동차 ‘엔고’의 추억

현대차는 엔고현상을 틈타 글로벌 시장에서 고속성장했다. 환율 덕에 가격경쟁력이라는 무기가 생겼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현대차가 ‘엔저 역풍’을 맞고 있다. 올 1분기 자동차 판매량은 늘어났지만 수익성은 악화됐다. 현대차의 대응책은 뭘까.

 
지난해 9월 1400원대였던 원•엔 환율이 5개월 만에 1100원대 중반까지 떨어지자 국내 주력 산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엔저 도전’에 대해 발끈하던 주요 통상국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엔저에 민감한 한국으로선 산업•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한 중장기 전략을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한•일간 수출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 산업에 경고등이 켜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차와 격돌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엔저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격경쟁력 약화’다. 과거 국내 자동차업체가 엔고,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출에서 경쟁력을 얻었다면 이제는 반대라는 얘기다.

엔저 등에 업은 일본차의 공습

▲ ‘엔저 현상’으로 현대차·기아차가 흔들리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비 10.7%, 35.1% 감소했다.
“일본차의 공습은 이미 현실화됐다. 올 3월 미국시장에서 도요타•닛산•혼다 등 일본업체들의 판매량이 무려 16% 증가했다. 국내 자동차업체의 판매량도 늘었지만 일본차와는 크게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엔저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대한 현대차그룹 관계자의 답변이다.

현대차는 해외 생산기지 대응력을 높이면 엔저 충격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현재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리며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중국 베이징北京 제3공장과 15만대 생산규모의 브라질 공장을 준공하고, 기아차 역시 중국에 제3공장 건설에 착공하는 등 생산기지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현대차의 신흥국 판매 증가도 엔저 우려에 대한 완화 요소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3월 17일 “현대차의 1~2월 판매는 중국(17만대)과 브라질(3만대)의 초강세로 전년 대비 13.9% 증가한 77만대를 달성했다”며 “엔•달러 환율이 96엔대에서 정체된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지난 주말(3월 16일) 1109원까지 급등해 엔저 우려가 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4월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아베 정부가 더 많은 돈을 풀기 시작했다. 2차 ‘돈 폭탄’이 투하된 것이다. 일본중앙은행(BOJ)은 4월 4일 국채 등 채권매입 규모를 기존의 두배 수준인 매월 7조엔(약 83조원)으로 늘리고, 매입대상 국채도 만기 1∼3년에서 40년 만기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시장이 흔들렸다. 4월 9일 10시 기준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99.44엔에 거래됐다. 일주일 새 무려 6.6엔(7.2%) 이상 올랐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원고•엔저의 파장과 대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을 1000원, 엔•달러 환율을 100으로 상정하면 한국의 자동차 업종의 수출량은 6.4% 감소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123만5071대를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에 수출했다. 지난해 총 판매대수(440만1947대)의 28%다. 기아차는 지난해 총 판매(272만753대)의 24%인 110만7927대를 국내에서 생산, 해외에서 판매했다.

급작스러운 엔저의 2차 공습에 현대차의 호흡이 더욱 가빠지고 있다. 엔저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차의 공격적인 가격인하도 예상된다. 일본차는 엔저를 등에 업고 수출시장에서 더욱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현대차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대차는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노조의 주말 특근 거부 여파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엔저 현상 등 환율시장의 불안정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현대차는 4월 25일 1분기 매출액이 21조36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1조8685억원, 2조878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각각 10.7%, 14.9% 감소했다. 영업이익률도 1.7%포인트 줄어든 8.7%로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연속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기아차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기아차는 올 1분기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증가했다. 하지만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은 모두 감소했다. 기아차는 1분기 매출액 11조848억원, 영업이익 7042억원, 당기순이익 783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 35.1%, 34.7% 감소한 수치다.

현대차, 판매량 늘었지만 수익은 줄어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현대차•기아차의 수익성 악화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판매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잘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 일본차들이 ‘엔저’를 등에 없고 해외 시장에서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1분기 주말 특근 미실시로 인한 가동률 하락과 엔저 현상에 따른 가격경제력 열세 현상이 지속되며 실적이 부진했다”며 “하지만 이미 예측하고 관리범위 안에 있는 사안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2분기 역시 비슷한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며 “3분기 이후부터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이 본부장은 엔저 현상이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 본부장은 “금융기관의 예측 평균을 보니 엔•달러 환율이 2분기 100엔대, 3분기 102엔대로 연간 100엔대로 예측하고 있어 우리도 연초 전망보다 좀 더 보수적으로 예측해 대응하고 있다”며 “엔화 약세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최근 원화강세 속도가 예상보다 완만하게 진행되는 등 상쇄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엔저 현상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일본에서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업체들인데 일본차들은 해외생산 비중이 상당히 높다”며 “도요타의 해외생산 비중은 60%, 혼다 73%, 닛산 80% 정도로 엔화 약세에 따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이 예상하는 것처럼) 일본차들이 엔저 효과를 등에 업고 브랜드 가치, 잔존가치를 훼손하는 방식의 인센티브나 가격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일본 업체들은 공격적인 마케팅 보다는 이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 쪽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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