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철 Ordinary People 디자이너

유학파도, 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학점은행제로 공부해 디자이너 반열에 올라섰다. 장형철(28) 패션 디자이너. 속세에 물들어 있는 이들에게 그의 스펙은 볼품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패션업계를 뒤흔드는 ‘다크호스’다. 그의 패션 브랜드 ‘Ordinary People’는 범상치 않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 학점은행제로 공부하면서 실무를 겸비한 장형철 디자이너의 이력은 명문대학에 목매는 패션계에 경종을 울렸다.
패션은 두 계절을 앞서고 있었다. 쇼룸에 들어서니 패딩이 두툼하게 들어간 체크무늬 재킷이 눈에 띄었다. 깃을 둥글게 말아서 디자인한 게 인상적이었다. 슬림한 카키색 치노팬츠는 멋스러웠다. 옆에 있는 한 디자이너에게 “언뜻 군복처럼 보인다”고 물었더니 “치노팬츠는 세계 1차대전 때 군복에서 유래한 옷인데…”라며 빙그레 웃었다.

이 디자이너, 친절하다. 전문가랍시고 폼을 잡는 일이 없다. 패션 트렌드를 물으면 백이면 백 상세하게 답해준다. 이 디자이너가 ‘별난’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그는 유학파도, 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학점은행제로 공부해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다. 패션 브랜드 Ordinary People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장형철 디자이너가 바로 그다. Ordinary People는 그의 디자인 회사 이름이기도 하다.

장형철 디자이너는 “치노팬츠는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군복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소재는 100% 양털로 짠 울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Ordinary People이 밀리터리룩을 표방하지만 투박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이유다.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그는 특이하게도 군대에서 패션을 접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읽은 패션잡지가 그의 인생항로를 180도 틀어버렸다. 휴가 나가는 동료의 옷을 직접 코디해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생겼다. 제대 후 다니던 대학이 아닌 서울패션전문학교(학점은행제) 3학년에 편입했다. 하지만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던 패션 디자인은 쉽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줄도, 봉제할 줄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장 디자이너는 물러서지 않았다. 난생처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서울 신사동의 패턴 강습소를 찾았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달려가 밤늦게까지 패턴을 그렸다. 이런 그를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고태용 디자이너였다. 그의 끈기를 본 고 디자이너가 제안했다. “비욘드 클로젯이라는 브랜드 론칭쇼를 준비하는데 스태프가 돼 달라.”

2008년 장 디자이너는 고 디자이너의 초창기 멤버가 됐다. 훈련은 혹독했다. 청소와 심부름은 물론 원단을 구하려고 동대문시장을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까다로운 공장 섭외도 그의 몫이었다. 애써 만든 옷은 공장에서 받아주질 않았다. 주문 수량이 적은데다 디자인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공장을 찾아갔다. 보이콧하던 공장장이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4년 동안 장 디자이너는 스타일리스트였고, 기획자였고, 사업가였다.

학점은행제 출신 디자이너의 성공 스토리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불규칙한 생활로 허리디스크에 걸린 것이었다. 현장에서 뛰기는커녕 집에 눌러앉을 판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절망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독립 브랜드 론칭이었다. 브랜드 이름은 ‘평범한 사람도 이 옷을 입으면 멋있어진다’는 뜻을 담아 ‘Ordinary People’이라고 지었다.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였지만 많은 사람이 입을 수 있도록 셔츠 5만원대, 바지 7만원대로 가격을 대폭 낮췄다.

값싸고 질 좋은 ‘Ordinary People’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2011년 3월, 의류 편집숍 브랜드 ‘에이랜드’ 4곳에 입점했다. 그냥 둥지만 튼 것도 아니었다. 첫달에만 매출 1500만원을 올렸다. 론칭 2년 만에 입점 매장이 14곳으로 늘었다.

그는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보자’고 다짐했다. 올 초 신진디자이너를 뽑는 서울패션위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Ordinary People을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3차 심사 끝에 합격통지를 받았다.
심사가 지체될 정도로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었다.

 
서울패션위크에서 신진디자이너로 뽑히면 패션쇼(컬렉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심사가 늦어진 탓에 패션쇼를 3주 안에 준비해야 했다. 업계 사람들은 “최소 준비기간 2개월은 소요되는데 무리”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장 디자이너의 사전엔 ‘포기’가 없었다.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구상한 아이디어를 ‘옷’으로 만들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있었다. 그는 “ Ordinary People 브랜드를 세상에 알릴 기회였는데 포기할 수 없었다”며 “되레 Ordinary People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알릴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그는 한가지 묘안을 짜냈다. Ordinary People이라는 이름처럼 10~50대의 모델을 무대에 세우기로 한 것이다. 발칙한 아이디어였던 만큼 리스크가 컸다. 중장년 모델은 젊은 모델보다 옷의 맵시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Ordinary People 브랜드를 입은 중년 모델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 관객은 “참신한 발상과 오랜 경험이 묻어난 색다른 무대”라고 호평했다.

▲ ❶ 서울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를 선발하는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 넥스트’에 선정된 후 장형철 디자이너가 패션쇼를 준비하는 모습. ❷ 장형철 디자이너의 Ordinary Poeple은 울 소재의 패딩을 가득채운 재킷과 베스트로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❸ Ordinary People은 브랜드 이름처럼 아주 평범한 사람의 옷을 보여준다. 클래식과 캐주얼의 사이의 접점을 잘 찾아낸다. ❹ ‘평범한 사람이 입으면 멋있는 옷’이라는 의미가 담긴 Ordinary People은 론칭 2년만에 오프라인 매장 14곳, 유명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했다.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

그가 패션계의 주목을 받은 건 디자인과 모델 때문만은 아니었다. 학점은행제로 공부하면서 실무를 겸비한 그의 이력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명문대와 해외패션스쿨을 거쳐야 ‘디자이너’로 인정받는 패션계의 낡은 세태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패션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지만 장 디자이너는 흥분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되레 “지금부터 시작인데…”라며 빙긋이 웃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뚜렷했다. “Ordinary People은 학교에서든 현장에서든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론칭할 수 있었다. Ordinary People을 앞으로 세계무대를 휘젓는 브랜드로 키우겠다.” 평범한 브랜드의 범상치 않은 ‘반란.’ 그의 친절한 미소에 숨은 야심찬 목표다. 그는 패션업계의 ‘나폴레옹’을 꿈꾼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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