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이중 위기

현대상선이 돈맥경화에 시달리고 있다. 2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선 ‘현대상선이 유상증자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현대상선은 실제로 현대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려 유상증자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독일 쉰들러그룹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5월 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전일 대비 9.85% 하락한 924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올해 1월 2일 2만4050원과 비교하면 무려 1만4810원이 떨어졌다. 이 회사엔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걸까.

무엇보다 현대상선의 실적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영업손실만 5096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3573억원)에 비해 약 60% 악화됐다. 당기순손실은 9885억원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다. 실적부진에 부채상환이라는 짐까지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상선은 4월 30일 자사가 보유한 KB금융지주 보통주식을 담보로 1304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서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회사 측은 이 자금을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의 순차입금은 회사채 잔액 2조5500억원을 포함해 총 6조3000원에 달한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7200억원이다. 1분기 상환한 2400억원을 제외하면 올해 48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만기연장하거나 상환해야 한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계열사다. 현대그룹 지배구조는 현대상선이 그룹 캐시카우로 현대증권•현대아산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대상선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그룹 전체가 돈맥경화에 시달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상선이 계열사 현대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려 유상증자를 실시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로, 현대상선 지분 24.2%(최대주주)를 갖고 있다.

▲ 현대상선이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 독일 쉰들러그룹과의 갈등으로 자금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계획 물거품

현대상선은 “유상증자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고 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유상증자 자체가 여의치 않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지분율 35%) 독일 쉰들러그룹이 유상증자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 실시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증자자금을 현대상선 지원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쉰들러와 유상증자를 놓고 재판을 벌이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올 7월까지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계획 역시 잠정 연기됐다.

현대상선은 현재 운임채권•설비 등 자산유동화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업계는 현대엘리베이터가 7월까지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그 이후에야 유상증자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현대상선이 쉰들러와의 법정공방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이 재무적 투자자로 들어온 쉰들러에게 제대로 발목이 잡힌 격이다. 이런 이유로 경영에 경고등이 켜진 게 더 심각한 문제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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