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재계 대응법 ‘耳懸鈴鼻懸鈴’

▲ 재계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입법 저지 활동을 펼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재계의 반발이 워낙 심해서다.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논리다. 하지만 낙수효과가 사라진 지금, 약발이 먹힐 리 없다. 경제민주화 바람의 취지가 정의를 바로잡는 데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명분도 없다.

경제민주화는 국민의 바람이다. 국민 10명 중 7명이 경제민주화를 찬성할 정도다. 닐슨코리아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추진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71.4%에 달했다. 하지만 반대세력이 있다. 재계다. 일부 정치권까지 합세해 ‘경제민주화 법안은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가령 대체휴일제를 도입하면 수십조원의 손해가 발생하고,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안은 대기업 옥죄기라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무역협회는 4월 26일 “경제주체 모두가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더라도 긍정적인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반기업 정서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경제•노동 관련 규제 입법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켜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5단체 부회장단은 4월 29일 국회를 직접 방문해 입법저지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을 만나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부담을 준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재계의 요구에 정치권이 즉각 화답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경제5단체 부회장단이 방문한 직후 몇몇 법안들에 대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 결과 정년연장법, 하도급법 개정안, 대기업 임원 연봉공개법,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4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개정안, 대체휴일제는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에 상정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합의가 끝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계의 입김이 또 먹혔다고 볼 수 있다.

재계가 정치권을 압박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재계의 이익에 상충된다고 생각하는 법안이 나올 때마다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저지에 힘썼다. 문제는 재계의 주장이 사회 전체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해 왔느냐는 거다. 두 사례를 보자. 하나는 재계가 반대했던 법안이고, 다른 하나는 재계가 밀어붙인 것이다.

주5일 근무제가 2000년 발의됐을 때 재계는 강력 반발했다. 전경련은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제도”라며 “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주5일 근무제를 하려면 무노동•무임금 원칙고수, 생리휴가 폐지, 생리휴가와 연월차휴가에 대한 임금보전 금지, 미사용 휴가에 대한 금전보상 금지 등이 전제돼야 한다”며 “금전보상이 따르는 주5일 근무제로 임금만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업 옥죄기’ 주장은 타당성 없어

반면 한국노동연구원은 전경련과 정반대 입장을 밝혔다. “주당 법정근로시간이 46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된 1989~1992년의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12.6% 성장했다. 그 이전 3년간은 9%, 그 이후 3년간은 10.7%에 그쳤던 것과 비교해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주5일 근무제의 긍정적 효과를 주장한 것이다. 누구 말이 옳았을까.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2005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주5일 근무 이후 업무능률은 62.4%, 월요일 근무 효율성은 37.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유선 한국사회노동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실근로시간, 고용, 실질임금에 미친 영향(2008)’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법정근로시간이 10% 줄어들 때 취업자수는 8.5%, 노동자수는 13.3%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법정근로시간이 10% 줄어들 때 시간당 임금이 12.1~13.3% 올라갔다”면서도 “하지만 월 임금총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5일 근무제가 여가시간을 늘려 관광•유통 분야 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많다. 최근엔 실근무시간이 여전히 길어 주5일 근무제의 효과가 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직장인이 근무 때문에 여가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우리나라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주 49.1시간으로 매우 길다”며 “여가생활 불만족의 주요 원인은 경제적 부담(39.8%)보다 시간부족(48.2%)이 더 많다”고 밝혔다. 재계의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임금만 오르고, 생산성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철저히 빗나갔기 때문이다.

근로자파견제와 정리해고제 역시 재계의 판단이 옳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기업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근로자파견제와 정리해고제를 도입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양산으로 인한 고용불안, 가계경제 파탄’을 이유로 반대했다. 재계는 ‘기업활동이 원활해져 침체된 경제를 살릴 것’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근로자파견제와 정리해고제는 고용인구 감소와 사회 양극화를 초래했다. 이는 다시 내수경제를 침체시켜 저성장구조를 고착시키는 주범이 됐다. 더구나 근로자파견제와 함께 나타난 비정규직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재 843만여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47.5%에 달한다.

물론 재계가 찬성한 법안이 부정적 결과만 양산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관련 법안을 비판•저지하는 재계의 태도가 사회•경제적 이익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따져보자는 거다.

백운광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재계가 반대하는 법안 대부분은 기업이익에는 부합하지 않더라도 사회 전체에는 도움을 준다”며 “재계의 우려는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백운광 팀장은 “경제민주화의 범위가 모호하긴 하지만 지금 법안들은 경제민주화 법안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라며 말을 이었다. 
 
 
경제적 정의 차원에서 양보해야

“고작 2~3일 더 쉬는 대체휴일제가 32조원의 손해로 이어진다면 주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경제가 완전히 붕괴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기업이 관리를 잘못해서 국민이 피해를 본 유해물질관리를 법으로 규정하는 게 경제민주화와 무슨 상관이 있나. 이런 것까지 막는다는 건 ‘경제 정의’는 생각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고려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나 다름없다. 그동안 누려온 이득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모든 법안에 경제민주화 딱지를 붙여서 ‘경제 정의’까지 막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김도형 민변 사무총장(원법무법인)은 “경제민주화는 헌법 119조에 명시된 내용”이라며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재계가 반대하는 것은 발목 잡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지금껏  정부 차원에서 기업을 지원한 것은 낙수효과를 바랐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재계가 말하는 경제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반기업 정서는 국민이 아니라 재계 스스로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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