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2] 강남 구룡마을의 비애

▲ 서울 강남의 유일한 판자촌 구룡마을에서는 타워펠리스가 한눈에 보인다.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 강남 유일의 판자촌이다. 동네 어귀에선 부촌富村의 상징 ‘타워팰리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촌과 빈촌貧村이 갈려 있는 것이다. 이런 구룡마을이 요즘 시끄럽다. 서울시가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이 마을을 개발하기로 했지만 강남구가 딴죽을 놓고 있어서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30여년 전 국가가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곳으로 쫓겨났다. 일부는 벼랑 끝까지 몰렸다가 다시 살아보기 위해 터를 잡았다. 그동안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더니 개발을 한다고 하니까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서울 개포동에 있는 ‘판자촌’ 구룡마을에 산 지 15년 된 한 주민의 분노 섞인 푸념이다. 마을 개발방식을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가 대립해 개발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다른 주민은 “길 건너 타워팰리스 주민은 강남구민일지 몰라도 우리는 강남구에서 철저히 배제돼 살았다”며 “우리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업만 하던 강남구가 이제는 마을개발을 막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구룡마을은 강남의 랜드마크인 타워팰리스가 보이는 산자락에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한때 쉴 새 없이 개발되는 강남을 보며 ‘나중엔 나도 여길 벗어날 수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그 꿈마저 접었다. 맞벌이를 해봐야 한달에 150만원밖에 벌지 못하는 주민이 부지기수다. 천정부지로 솟는 월세를 감당하기도 어렵다. 구룡마을을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얘기다.

구룡마을은 어느새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 혹은 사진작가들의 ‘명소’가 됐다. 1970 ~1980년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지만 마을 주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다른 사람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적응이 됐지만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길 하나만 건너도 전혀 딴 세상이다. 치부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반가울 리 없다.”

▲ ① 구룡마을은 1970~19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혹자는 향수에 이끌려 이곳을 찾지만 마을 주민은 불편할 뿐이다.② 구룡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회관 외부 벽에는 개발을 막고 있는 강남구청을 규탄하는 글이 빼곡하다.
개발방식 논란에 휩싸인 구룡마을

구룡마을은 원래 녹지(1977년 도시자연공원 지정)였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도시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오갈 데 없어진 철거민들이 하나 둘 모여 마을을 이뤘다. 한때 2000가구가 넘게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무허가 건물 400여채에 1200여가구만 남았다. 주민수는 2500여명이다. 구룡마을은 재개발 논의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올해 4월 20일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서울시의 마을개발 정책에 반대의견을 내면서다. 서울시가 구룡마을 재개발 계획을 확정한 건 2011년 4월. 산하기업 SH공사의 주도로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게 계획의 골자였다. 당연히 토지를 모두 수용한 후 소유주에게 돈을 보상하는 ‘수용방식’이 원칙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6월 전체 부지의 18%를 ‘환지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계획을 변경했다. 환지방식은 소유주가 개발비용의 일부를 내는 대신 일정 규모의 땅은 본인 의사에 따라 개발하는 것이다. 개발비용을 분담할 순 있지만 투기를 막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강남구가 서울시의 개발정책에 반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기세력이 개발로 인한 불로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영개발(수용방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방식은 둘째치고 투기세력의 배를 불려선 안 된다는 건 틀린 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수용•환지 혼용방식이 토지수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토지주와의 갈등을 완화해 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SH공사의 초기 투자비용이 4000여억원 감소해 거주민을 위한 보증금•임대료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투기행위를 완전히 막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 거주민을 위한 재개발 정책을 폈다는 얘기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조명래 단국대(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수용방식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며 “수용방식을 고집했다가 용산참사가 벌어지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주민을 위한 재개발 정책을 택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조명래 교수는 특히 “서울시는 주민이나 시행사 등과 협의체를 만들어서 충분히 논의한 다음 결정한 사안인데, 강남구가 느닷없이 반대를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며 “구룡마을 주민이 그동안 받았던 불이익도 적지 않기 때문에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혼용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성상현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원은 “갈등의 핵심은 ‘환지방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데, 환지방식이 모두 민영개발은 아니다”며 “더구나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주장처럼 환지방식이 개발이익 환수를 어렵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수용방식이 일부 투기세력의 불로소득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토지개발에 대한 불로소득은 ‘개발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개발사업 이후의 ‘소유방식’과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토지를 공공재산으로 귀속해 사용권만 주고 임대료를 받는 공공토지임대제를 도입하는 게 해법이다”고 주장했다.

 
어떤 방식이 효율적인지는 재개발이 끝나봐야 알 수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다. 다만 재개발을 추진하는 서울시와 강남구의 서로 다른 태도는 짚어볼 만하다.

서울시는 구룡마을 재개발 계획을 확정할 때 주민이 참여한 협의체를 구성해 의견을 꾸준히 들어왔다. 반면 강남구는 서울시 개발정책에 대한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뒤 경찰을 동원해 구청의 대문을 걸어 잠갔다. 신 구청장의 발언 이후 개발이 늦어지는 데 대한 항의가 줄을 잇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다수 구룡마을 주민이 강남구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주민은 “왜 그러는지 이야기나 좀 들어보려 해도 도통 만나 주지를 않는다”면서 “그래놓고 강남구 곳곳에 호소문을 뿌리며 ‘위대한 강남구민 여러분’하면서 구룡마을 주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척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토지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주민의 불만도 크다. 투기세력 취급을 받고 있다. 이강일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부회장은 “토지를 일부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십수년이 넘도록 여기서 살아온 주민을 구청장이 투기꾼으로 몰아세우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토지주들이 가진 토지가 개발구역에 100% 포함되지 않았다”며 “나머지 토지를 포함해서라도 토지를 갖지 못한 주민에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토지주들도 충분히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구룡마을이 분쟁지역으로 전락한 건 일부 주민의 갈등이 아니라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립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을 주민 대부분은 개발이익을 노리기보다는 따뜻하고 포근한 새집을 바랐다.

주민의 바람은 빠른 재개발뿐

학원 강사를 하다가 사기를 당해 가산을 탕진하고 구룡마을에 정착했다는 한 주민은 “나라에서 빨리 재개발 된 곳에서 다시 살 수 있게끔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마을 주민의 바람”이라며 말을 이었다. “아이들은 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한다. 판자촌에 산다는 게 부끄러워서다. 길 하나만 건너면 잘 사는 동네가 나오니 오죽하겠는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마을의 대학진학률이나 취업률이 낮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건 아닐지 모르겠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는 호소문에 「목민심서」 글귀 하나를 적어 놨다. “일을 처리할 때는 언제나 선례만을 쫓지 말고 반드시 민民을 편안히 하고 이롭게 하기 위해 법도의 범위 안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강남구가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글/사진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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