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6개월 남은 박근혜 정부 해결과제 | 갈수록 벌어지는 강남ㆍ非강남

▲ 강남 유일의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본 타워팰리스.
도시 복판에 섰다. 한 블록만 가면 부촌富村이다.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빈촌貧村이 나온다. 작은 도시에 ‘부’와 ‘빈’이 공존한다. 당연히 긴장과 갈등이 많다. 전형적인 이중二重도시의 폐해다.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 모습이다. 도시 양극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남아 있는 집권 기간 4년6개월 안에 해결해야 할 과제다.

# 60년이 공존하는 도시. 중국 베이징北京이다. ‘황제의 길’로 불리는 장안대로長安大路 양 옆에는 마천루가 즐비하다. 남북으로 펼쳐진 CBD (Central Business Districtㆍ비즈니스 중심지)는 경제대국의 위용을 한껏 뽐내고 있다.

그런데 그 뒤편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값싼 음식을 파는 남루한 상점들이 줄줄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낡은 옷을 입고, 낡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기업의 베이징 법인장들은 이런 모습이 낯설다. “대로변을 보면 잘사는 것 같은데, 골목에 들어가면 찢어지게 가난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베이징은 이상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A그룹 베이징 법인장).”

중국의 양극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 상위계층 10%와 하위 10%의 소득차는 23배까지 벌어졌다. 베이징ㆍ상하이上海 등 주요 도시엔 잘사는 사람만큼 빈민貧民도 많다. 올 3월 돛을 올린 시진핑 정부가 ‘질적 성장’을 콘셉트로 내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만의 문제는 아닐 게다. 한국, 특히 서울이 그렇다.

# 요즘 한국에선 새로운 도시여행 트렌드가 유행이다. 달동네ㆍ판자촌ㆍ철거예정지 등 빈촌貧村을 관광하는 것이다. 볼품없고, 남루한 공간을 찾는 빈티지(vintage) 여행이 새 트렌드다. 베이징 CBD에 근무하는 직원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후미진 뒷골목을 누비는 식이다. 일부 빈티지 여행자는 “빈貧의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찾는다”고 말한다. 빈촌의 ‘진선미眞善美’를 탐닉한다는 거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진선미’를 만끽할 겨를이 없다. 하찮은 곳에 찾아와 ‘진선미’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다.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 빈티지는 ‘빈貧티지’다.

사회 양극화의 농도가 갈수록 짙어진다. 가진 자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없는 자는 더 가난해진다. 이데올로기적 발상? 편견? 아니다. 통계가 입증한다. 2003년 한국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580만원이었다. 하위 10%보다 9배 많았다. 이 격차는 지난해 10배 이상(상위 10% 921만원ㆍ하위 10% 90만원)으로 벌어졌다.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절반 이하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김영삼(YS) 정부 시절만 해도 8.44%에 불과하던 빈곤율은 이명박(MB) 정부 들어 15%로 껑충 뛰었다. 지니계수도 같은 기간 0.266에서 0.317로 0.051포인트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균등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신자유주의’가 재앙의 씨앗을 뿌렸다고 꼬집는다. 김낙년 동국대(경제학)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경제의 체질이 변했다”며 “외환위기 시절 전해진 신자유주의와 보수적인 기업성과보상 방식이 소득집중 현상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양극화는 이제 먼 얘기가 아니다. 체감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데 있다.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부촌富村과 빈촌이 공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강남 개포동의 유일한 판자촌 ‘구룡마을’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마을 어귀에선 부의 상징 ‘타워팰리스’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그래서 구룡마을에 사는 어린 학생들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마을 인근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지 않는다.

이처럼 양극화는 도시를 쪼갠다. 행정구역 분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심리적으로 도시를 나눈다는 얘기다. 강남江南은 ‘심리적 도시분할’의 좋은 예다. 강남의 사전적 의미는 ‘한강 이남’이지만 실제론 반포ㆍ서초ㆍ압구정ㆍ신사ㆍ청담ㆍ대치동을 블록화한 용어로 사용된다. 노량진ㆍ봉천동ㆍ신림동은 강남축에 끼지 못한다.

진보적 문화평론가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자신의 저서 「문화부족의 사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 실생활에서 쓰는 강남이라는 용어에는 노량진ㆍ봉천동 등 저소득층 지역을 배제하려는 ‘구별짓기’ 논리가 숨어 있다. 강남은 이데올로기가 만든 개념이다.” 양극화로 하나의 도시가 둘로 쪼개졌다는 얘기다.

이런 ‘이중도시’ 현상을 더 파고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강남과 비非강남의 모든 게 달라서다. 서울시 복지패널조사(2009)에 따르면 강남3구(강남ㆍ서초ㆍ송파) 가구의 자산규모는 6억2711만원이다. 비강남권 가구(3억7763만원)보다 2억5000만원가량 많다. 월평균 가구소득은 평균 399만원이다. 서울의 나머지 지역 평균(323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부富만이 아니다. 강남엔 고학력자도 즐비하다. 인구주택총조사(2010)를 보면 강남구에 사는 10명 중 7.5명의 학력은 대학 재학 이상이다. 높으신 양반들도 많이 산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관료 3명 중 2명은 강남3구에 살고 있다. 당연히 각종 서비스의 수혜가 잘 살고, 학력 좋고, 고위관료가 많은 강남에 쏠릴 수밖에 없다.

강남3구에는 의료기관이 4364개에 이른다(국민건강보험공단ㆍ2011). 대구시(3228개)보다 많고, 부산시(4478개)보다 조금 적다. 백화점도 많다. 강남ㆍ서초구에는 6개(2009년 기준)의 백화점이 있는데, 인구 16만명당 1개꼴이다. 동대문ㆍ중랑ㆍ성동ㆍ광진구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이 4개구에는 백화점이 2개밖에 없다. 72만명당 1개꼴이다.

중산층 육성해 ‘하류이동’ 현상 막아야

혹자는 ‘어떤 도시든 풍요와 빈곤이 공존한다’고 반박한다. 이중도시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부산물이라는 거다. 옳은 견해지만 빈틈도 많다. 이중도시의 부작용을 감안하지 않은 주장이라서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는 이중도시 현상을 이렇게 비판했다. “… 상하위 계층이 공존하는 이중도시에는 갈등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 지위나 생활양식이 판이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중도시의 갈등이 ‘상향적 성취동기’를 막는다는 거다. 계층상승을 꾀하기보다는 밑을 보면서 안도하는 습성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러면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생태계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국제문제 분석가 후지이 겐키는 이를 ‘하류사회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했다.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 최하계층으로 귀속된다는 것이다.

▲ 세계 각국이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중산층 복원만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이다.
그럼 ‘하류이동’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은 뭘까. 답은 간단하다. 몰락한 중산층을 복원하는 것이다. 최상층과 최하층의 중간지대를 만들면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득감소ㆍ부채증가 등으로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며 “중산층을 다시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주거비ㆍ사교육비ㆍ양육비 등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효율적인 분배시스템도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분배시스템은 신통치 않다. 한국의 소득 재분배 효과는 8.4%로, 독일(41.5%)ㆍ영국(32.4%)보다 턱없이 낮다. 국내 조세제도와 재정지출정책이 양극화 해소와 중산층 육성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방증이다.

다행히 한국에는 요즘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고있다. 양극화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물론 단번에 양극화를 해소할 순 없다. 어떤 바람에도 끄떡없는 초석을 제대로 세우는게 먼저다. 그것조차 못한다면? 양극화의 골은 더 깊어진다. 세상엔 ‘갈등의 고리’가 형성되고, 도시는 둘로 깨진다. 이런 이중도시엔 중간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부富와 빈貧 둘뿐이다. 무섭고 야속한 세상은 이미 열렸다. 
이윤찬ㆍ김정덕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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