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의 빛과 그림자

일본을 보면 국내 종합상사가 가는 길이 보인다. 다양한 상품을 트레이딩하던 일본 종합상사는 최근 해외자원개발 사업에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국내 종합상사 역시 일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일본과 다를 수 있다. 정보력과 기술력이 일본보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종합상사에 다녔던 A씨.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각 나라의 상황을 살펴야 어떤 물건을 어떻게 팔지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해외 고급정보를 얻기 위해선 종합상사를 찾아가라는 말도 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해외에 나가기 힘든 시절이었다. 전 세계를 오가며 일하는 A씨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과거 종합상사의 위상은 대단했다. 직장인에게 인기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성장을 이끄는 업종으로 손꼽혔다. 종합상사란 다양한 상품을 세계시장에서 거래하는 전문업체를 말한다. 이를테면 ‘해외 만물상’이다. 종합상사는 1970~1980년대 수출 창구역할을 하며 외형을 키워나갔다. 특히 그룹 핵심 제조업체의 물량을 바탕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트레이딩에서 해외자원개발로 변신

삼성물산은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휴대전화 등 정보통신 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며 규모를 키웠다. 현대종합상사는 철강•자동차•선박을 중심으로 규모를 키워 나갔다. 삼성물산•대우인터내셔널•LG상사•SK네트웍스(옛 선경)•GS글로벌(옛 쌍용)도 그룹 핵심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이런 국내 종합상사의 위상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약해지기 시작했다. 헌대종합상사의 매출은 2000년 40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25조3000억원으로 무려 14조원가량 줄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8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4분의 1 토막 났다. 삼성물산 등 다른 종합상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 국내 종합상사들이 트레이딩 사업에서 해외자원개발 사업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물산이 2008년 확보한 미국 멕시코만 해상유전 플랫폼.
전문가들은 종합상사의 부진 이유를 크게 두가지로 꼽는다. 경기침체와 성장동력 미확보다. 국내 종합상사는 수출입 거래(트레이딩)를 핵심사업으로 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상황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최근 빚어지는 원자재 가격폭등과 수출부진은 국내 종합상사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종합상사의 콘셉트는 ‘돈 되는 사업이면 무엇이든 한다’다. 그런데 국내 종합상사는 이런 콘셉트를 유지하는 데 게을렀다. 되레 종합상사가 하던 일을 다른 업종의 기업에 넘겨줘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과거 종합상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상품을 세계시장에 팔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경영환경이 변하면서 종합상사의 역할도 바뀌었어야 하는데, 국내 업체들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국내 종합상사는 현재 과도기를 걷고 있다. 트레이딩 사업에서 해외자원개발 사업으로 변신을 하는 과정에 있다. 이는 일본 종합상사가 가는 길과 비슷하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 등 일본 종합상사는 실적을 개선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다. 이우광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자문위원은 “일본 종합상사들은 주요 사업 부문을 떼어내 자회사로 만들었다”며 “과거 덩치에 얽매였다면 이제는 철저히 이익 중심의 경영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이런 방법으로 진행했는데, 사업평가능력•리스크 해지 능력•실제 작업과 기술력•정보력 등이 탁월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공목 연구위원은 “종합상사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사업으로 일본이 먼저 시작했다”며 “단순 중개수수료를 챙기는 사업으론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 일본업체들은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눈을 돌렸고, 뒤늦게 한국도 따라갔다”고 설명했다. 일본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그래도 국내 종합상사가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2000년 초중반부터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시작한 삼성물산•대우인터내셔널•SK네트웍스 등 종합상사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이 결과물은 5년여가 흐른 올 하반기나 내년에 나타날 전망이다.

남정미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종합상사들이 신규 광구탐사, 개발•생산 광구 지분취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원개발 부문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각 기업은 신규 광구의 상업생산 시작과 생산량 확대 단계에 진입했다”며 “내년부터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본격 생산을 앞두고 있는 미얀마 가스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회사는 정상적으로 생산이 이뤄진다면 한해 5억 달러 매출액과 3억 달러 순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8년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미국 멕시코만 앵커 광구를 미국 테일러사로부터 인수했다. 2011년에는 미국 텍사스주•뉴멕시코주 등지에 유전 8개와 가스전 2개를 보유한 패럴렐 피트롤리엄을 인수했다.

LG상사는 30% 지분을 갖고 있는 중국 완투고 유연탄광의 생산량을 올해 600만t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 생산량은 연간 550만t 규모다. LG상사가 개발에 참여한 카자흐스탄 ADA유전과 NW코니스 유전에선 올해 안에 기름을 상업생산할 계획이다. LG상사는 중국 유연탄광사업, 카자흐스탄 유전사업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日 벤치마킹했지만 불확실성은 남아

그렇다고 국내 종합상사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국내 종합상사들은 자원개발 산업에 대한 시장정보와 이해도, 경험이 일본기업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인지 업계에서 추정하는 자원개발에 대한 이익편차도 들쑥날쑥이다. 실제 생산단계에 들어갔을 때 예상한 이익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사업에선 정확한 이익규모가 산출되지 않고 있다. SK네트웍스가 중국•호주•멕시코에서 진행하는 철광석•구리 광구사업에선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SK네트웍스를 둘러싸고 사업철수설이 나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K네트웍스는 “철수 계획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사실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며 “각 증권사마다 전망하는 이익이 천차만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실제로 진행돼도 나중에 부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고 꼬집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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