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장본인들, 지금은…

윤창중 성추문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하지만 이런 추문이 어제오늘의 일이던가. 문제는 성추문을 일으킨 장본인 대부분이 사회지도층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지도층의 모럴해저드가 문제인가, 사회지도층에게 지나치게 자비를 베푸는 우리 사회가 문제인가. 짚어볼 만한 이슈다.

▲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방미일정 당시 한국대사관에서 파견한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남양유업 녹취사건을 계기로 불공정한 ‘갑을甲乙 관계’가 부각됐다. 기업 간 불균형한 힘의 논리는 ‘물량 떠넘기기’나 ‘기술탈취’와 같은 불공정거래행위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를 인간관계에 대입하면 양상이 달라진다. 권력을 가진 유명인사 갑이 약자인 을의 성을 유린하는 ‘섹스 스캔들’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 간에 있었던 물질적 피해를 훨씬 능가하는 아픔이다. 영혼을 파괴하는 유린행위이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권력형 섹스 스캔들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한국의 고질병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현재 김포 자택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한 채 칩거 중이다. 자택 주변의 모든 창문은 신문지로 도배된 상태다. 보수단체들의 시위와 취재진의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에 따른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귀국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변인은 아전인수식 변명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여자 가이드의 허리를 툭 한 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해서 성공하라고 격려한 게 전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한 오해”라는 식의 해명은 “한국의 문화는 여성의 허리를 쳐도 괜찮다는 거냐”는 역공을 맞았다.

사태의 불똥은 박 대통령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각계에서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서다. 통합진보당 여성위는 성명을 통해 “고위공직자의 성폭력•성추행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정부의 인사정책의 실패를 증명하는 공적 사안”이라며 “초기부터 논란이 된 박근혜 정부의 인사정책 부재와 인사원칙 없음에서 나온 예견된 결과”라고 꼬집었다.

최근엔 윤 전 대변인이 과거에 쓴 글도 문제가 되고 있다. 1년 전 모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윤 전 대변인은 김형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현재 무소속 의원)의 ‘제수 성폭행 의혹’을 강하게 비판했다. “성추행하는 미친놈들을 초강수로 처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당장이라도 검찰에 고발해 진상 규명을 법의 손에 맡기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글이 부메랑으로 자신을 공격할지 윤 전 대변인은 몰랐을 게다.

 
윤 전 대변인이 언급한 김형태 의원의 성추행 사건도 다시금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김 의원의 제수 최모씨는 19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4월, 김 의원의 이중성을 폭로했다. 최모씨는 1995년 남편이 암으로 사망한 뒤 두 아들과 부산에 살던 중이었다. 최씨에 따르면 지난 2002년 김 의원이 논의할 게 있다며 자신을 서울의 한 오피스텔로 불러들여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최씨의 저항으로 성관계로까지 발전하진 않았지만 사건 이후 최씨는 정신적 고통과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김 의원은 “최씨의 주장은 허위사실”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 의원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10년 전에 발생했다는 성추행은, 돈 문제로 갈등을 빚은 최씨가 악의적으로 지어낸 말”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김 의원은 무소속 박명재 후보(당시)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최씨는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의원과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녹음파일에는 김 의원이 조카에게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일부 인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최씨는 김 의원이 지적한 돈 문제에 대해서도 “김 의원이 애들 몫으로 돌아가야 하는 남편의 보상금을 따로 챙겼기 때문에 그걸 돌려달라고 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사회 고질병 ‘성 스캔들’

김 의원은 최씨를 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올 1월 검찰은 최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의원보다는 제수인 최씨의 진술이 더 신빙성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사실 전현직 금배지의 성추문 의혹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사무총장을 지낸 최연희 전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도 유명하다. 최연희 전 의원은 2006년 2월 모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한 모임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해 빈축을 샀다. 만찬 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최 전 의원은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고 두 손으로 거칠게 가슴을 만졌다.

여기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 소리로 성추행에 항의했다. 다음날 해당 일간지 기자들은 최 전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최 전 의원은 “술에 취해 (여기자를) 식당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명해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비판이 거세지자 최 전 의원은 한나라당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의원직도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지만 최 전 의원은 “법에 따르겠다”며 응하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진 최 전 의원은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선고유예를 처분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이후 최 전 의원은 18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다시 당선됐다.

야당 또한 섹스 스캔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2002년 1월 당시 민주당 소속이던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자신의 집무실을 방문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직능단체 여성 간부와 함께 있었던 우 지사는 면담 과정 중 여성의 가슴을 만졌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후 피해여성은 이 같은 사실을 여성부에 신고했다. 제주여민회의 도움을 받아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우 지사는 “나는 성범죄 전력을 갖고 있지 않고, 성추행범은 더더욱 아니다”고 반박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한 피해자와 제주여민회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와 제주여민회의 명예훼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우 전 지사는 이에 불복하고 여성부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냈으나, 2006년 12월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우 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추행 논란으로 인해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우 지사는 민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다시 당선됐다.

정치권 이외에도 성스캔들은 다방면에서 일어난다. 최근 사회지도층 성접대 의혹을 불러온 윤중천 전 중천산업개발 회장이나 미성년자를 추행해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받은 고영욱씨의 사례가 그렇다. 몇달 전에는 유명 헤어디자이너 박준씨가 자신이 고용한 여직원을 성폭행한 사건이 논란이 됐다.

성추문에 둔감한 한국

지난 3월 박씨의 비서 A씨는 “지난해부터 박씨에게 서너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며 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박씨의 미용실에서 일하는 미용사 3명도 고소에 동참했다. 미용사들은 지난해 말 있었던 직원 단체 모임에서 박씨가 강제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박 씨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박 씨는 모두 합의하에 이뤄진 일이며 강제성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박씨는 현재 별다른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박씨를 고소한 피해자 4명이 최근 박씨와 합의하고 검찰에 고소취하서를 접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검찰도 수사를 종결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여직원들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된 박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성추문처럼 추악한 게 없다는 말이 있다. 해외에선 성추문을 일으킨 이를 재등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성추문을 일으키고도 정치판을 맴도는 이들이 여럿이다. 어쩌면 윤 전 대변인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정치판 어디론가 복귀할지 모른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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