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태환자동화산업 대표

깨와 원두의 공통점은 뭘까. 볶아야 한다는 거다. 깨는 볶아야 참기름이든 깨소금이든 될 수 있다. 원두는 볶아야 에스프레소로 내릴 수 있다. 여기 ‘볶는 기술’ 하나로 최고가 된 남자가 있다. 로스터기 1위 업체 태환자동화산업의 김용환 대표다.

국내 커피숍은 몇 개나 있을까. 1만8000여개다. 이 중 1만여개가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다. 개인 커피숍과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대결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 다를 바 없다. 최근 들어 로스팅(원도를 볶는 것)을 직접 하는 개인커피숍(로스터리 카페)이 늘어나는 이유다. 그러지 않고선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 김용환 태환자동화산업 대표는 로스터리 커피시장에서 알아주는 미다스다.

그 중심에 ‘태환자동화산업(태환)’이 있다. 전국 4000여개의 로스터리 카페 중 3500개가량이 태환의 로스터기를 사용한다. 김용환(55) 태환 대표는 “국내 로스터리 카페 80% 이상이 우리 로스터기를 사용한다”며 “로스터리 카페 시장이 해마다 성장하는 만큼 로스터기 판매량도 매년 10% 이상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부터 커피시장에 뛰어든 건 아니다. 30여년 전인 1980년대 그는 보리차·옥수수차·물엿·엿기름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파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김 대표는 시장 모퉁이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가마솥에서 깨를 볶는 상인을 만났다. 의문이 들었다. “보리는 기계로 볶는데 깨는 왜 그렇지 못할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그는 상인에게 물었다. “굳이 깨를 힘들게 볶아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상인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러면 당신이 그 기계를 만들면 되지 않소.” 상인의 말을 들은 김 대표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깨 볶는 기계를 만들기만 하면 대박을 칠 수 있겠어.” 자신감도 넘쳤다. 그의 전공은 설계(동양미래대 설계과 졸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 그에겐 있었다.

상인을 만난 날부터 그는 매일밤 깨 볶는 기계와 씨름했다. 처음엔 보리차 볶음기계를 축소하면 될 것 같았지만 오산이었다. 보리와 깨는 태생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개발에 착수한 지 1년 만에 자동깨볶음기 ‘도리깨’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국내 최초였다. 동생에게 자신이 운영하던 식품회사를 물려준 그는 본격적으로 도리깨 판매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친구와 1500만원씩 모아 자본금 3000만원짜리 회사 ‘태환’을 차렸다. 고척공구상가에 보증금 200만원, 월세 20만원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예상대로 도리깨는 상인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가마솥에 깨를 넣고 빗자루로 힘들게 깨를 볶던 상인들이 도리깨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도리깨에 깨끗이 씻은 깨를 넣으면 자동으로 볶아졌기 때문이다.

깨 볶는 상인 보고 아이디어 얻어

 
방앗간 주인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태환의 도리깨는 입소문을 타고 첫달 30개, 다음달에는 50개가 팔렸다. 대용량의 도리깨를 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상인에게 공급되던 도리깨는 ‘산업용 곡물볶음기’로 발전했다. 옥수수차·보리차·참깨·현미 등의 곡물을 대량으로 볶아야 하는 식품공장에서 태환의 곡물볶음기를 그야말로 ‘제격’이었다.

1995년에는 곡물세 척기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물질과 분리된 곡물만 건지는 작업을 해주는 기계였는데 곡물가공업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2년 후엔 곡물을 이동시켜주는 ‘진공이동’ 설비도 개발했다. 오뚜기·대상·풀무원 등 국내를 대표하는 식품기업에 납품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곡물세척기·분쇄기·증자건조기·애프터버너 등 식품가공설비를 줄줄이 개발했다. 그 결과, 태환은 식품공장에 들어가는 웬만한 기계설비의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식품가공설비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1999년. 김 대표에게 당시로선 생뚱맞은 제안이 들어왔다. 커피 볶는 기계(로스터기)를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제안이었다. 그때만 해도 원두커피는 ‘고급식품’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국산 로스터기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섣불리 도전했다간 고배를 마실 공산이 컸다.

하지만 그는 도전을 택했다. 곡물 볶는 기술을 커피에 접목하기로 했다. 어차피 원두 볶는 기술은 대동소이할 것으로 예상한 그는 ‘가격경쟁력’으로 승부를 걸기로 했다. 1999년 25㎏짜리 커피로스터기를 1800만원에 출시했다. 외국제품과 비교하면 4분의 1 가격이었다. 이후 6㎏, 3㎏, 1㎏의 소형 로스터기와 120㎏, 60kg짜리의 대용량 로스터기를 선보이며 세를 키웠다.

김 대표의 도전은 2000년 중반 알찬 열매로 이어졌다.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가 빅히트를 치면서 원두커피 ‘붐’이 일었다. 태환의 커피 로스터기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원두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로스터리 카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번뜩이는 전략도 한몫했다. 그는 바리스타를 배출하는 아카데미에 태환의 커피 로스터기를 할인공급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바리스타들은 당연히 태환의 로스터기로 장사를 시작했다. 로스터리 카페의 80% 이상이 태환제품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스터리 카페의 인기와 함께 태환도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65억원의 매출 중 약 70%가 커피머신 사업부에서 나왔다. 커피머신 사업부를 따로 분리하고 로스터기 시장에 집중한 게 실적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열심이다. 전체 매출의 5%를 해외시장을 뚫는 비용으로 쓴다. 호주는 2009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엔 지난해 진출했다. 미국·호주 등에서 열리는 스페셜티커피협회 콘퍼런스에는 태환을 알리기 위해 매년 참가한다. 최근엔 흥미로운 성과도 나왔다.

“호주의 유명 바리스타 심사위원이자 커피 전문방송 진행자인 저스틴 매트캐프가 4억원이 넘는 태환의 120㎏ 용량의 로스터기를 구매했어요. 저스틴이 태환제품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로스터기가 주목을 받았죠. 호주에서 승부를 겨뤄볼 만해요.”

호주는 원두커피시장이 믹스커피보다 훨씬 크다. 비중을 따져보면 8대2 정도다. 로스터기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커피 이어 초콜릿에도 도전장

 
김 대표가 기대를 걸고 있는 또 다른 시장은 중국이다. 올해 들어 로스터기를 50대 가량 팔았다. 5개월여 만에 지난해 실적만큼을 팔아치운 셈이다. 김 대표는 “올해에만 중국에서만 100대 이상의 로스터기를 팔 수 있을 것 같다”며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 있는 카페가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커피에 이어 초콜릿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카카오 콘칭기·초콜릿 템퍼링기·카카오잎 분리기·분쇄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카카오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화학물질을 전혀 넣지 않아 미네랄·폴리테롤·단백질 등 몸에 좋은 카카오 성분을 최대한 살린 초콜릿을 생산할 수 있다.
초콜릿의 직접 생산도 모색하고 있다. 천연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을 생산해 세계적인 초콜릿 ‘길리안(벨기에)’와 자웅을 겨루고 싶은 게 꿈이다. 그의 ‘팔색조 변신’은 오늘도 계속된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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