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식품 편견에 우는 문방구

▲ 초등학교 앞 문방구는 식품판매를 통해 매출의 70~80를 올린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먹을거리는 불량식품인가. 아니다. 편견이자 오해다. 대부분 대기업에 납품하는 식품 OEM 업체가 만든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부적합 식품’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방구는 왜 ‘불량식품의 본거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걸까.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가면 없는 게 없었다. 학습준비물은 물론 슈퍼마켓에선 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먹을거리와 장난감ㆍ구슬ㆍ딱지 같은 놀이용품까지 죄다 팔았다. 문방구는 그야말로 만물상이었다. 조금 큰 문방구는 서점도 겸했다. 문제집ㆍ전과ㆍ만화책이 한데 어울려 있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물건을 사지 않아도 문방구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지방에서 문방구는 최신 정보를 습득하는 ‘창구’였다.

그랬던 문방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1999년 2만6986개였던 문방구 수는 2011년 1만5750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서울 지역에선 절반가량의 문방구가 사라졌다. 문방구가 사라지는 덴 몇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학생수가 줄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2007~2011년 전국 초등학생 수는 연평균 4.5%씩 감소했다. 같은 기간 문방구 감소율은 연평균 5.2%였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이 골목상권을 파고든 것도 원인이다.

대형마트ㆍ편의점의 물량공세를 문방구가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특히 대형마트에선 도화지ㆍ색종이ㆍ물감ㆍ크레파스ㆍ학생용 악기까지 판매한다. 전자상거래가 늘어난 것도 문방구가 사라진 이유다. 하지만 문방구가 사라지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문방구를 궁지로 몰아넣는 건 새로 도입된 교육제도와 공정하지 못한 정부규제다.

 
정부는 2011년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를 실시했다. 이는 지역 교육청이 학생 1인당 2만~3만원을 지원하면 학교는 준비물을 일괄구매하는 제도다. 학생으로선 아침마다 문방구 앞에서 줄을 서서 준비물을 살 필요가 없어진 거다.

물론 예산확충, 불법전용문제 등을 개선해야 하지만 학부모의 만족도는 꽤 놓은 편이다. 학교에서 일괄구매해주는 덕분에 준비물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반면 문방구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주요고객인 학생들이 발길을 끊고 있어서다. 올 4월초 서울시 교육청이 문방구 업계 관계자들과 협의체를 구성하고 문방구 살리기에 나선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양쪽의 입장차가 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성원 학습준비물 생산ㆍ유통인 협회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문방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대책을 서로 내놔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의견을 내면 ‘안 된다’며 자르기만 하니 진전이 없다. 심지어 학습준비물 관련 예산을 늘려달라는 주장을 문방구 업계에서 하고 있다. 문방구 업계 사람들이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무슨 해결책이 나오겠나.”

더 큰 문제는 이상한 정부규제다. 문방구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식품판매다. 문방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체 매출의 70~80%다. 한 문방구 주인은 “한달 꼬박 일해 봐야 차포(월세ㆍ경비 등) 다 떼고 나면 70만원가량을 손에 쥔다”며 “그나마 식품을 파니까 나오는 수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젠 어렵게 됐다. 박근혜 정부가 ‘불량식품’을 4대악으로 규정하자 문방구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행정기관들이 앞다퉈 문방구에서 파는 식품규제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올 3월 21일 청와대 보고에서 문방구의 식품판매 금지조치를 제시했다. 5월엔 불량식품 근절을 위한 시민감시단을 출범시켰다. 검찰엔 불량식품 합동단속반이 설치됐다. 각 지자체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물론 문방구를 타깃으로 삼은 건 아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위생관리가 부실한 식품, 허위ㆍ과장 광고식품이 규제대상이다. 그러나 국내 주요 식품업체에서 생산하지 않은 먹을거리를 주로 파는 문방구는 주요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식약처 “문방구에 불량식품 거의 없다”

그럼 문방구에서 파는 먹을거리는 불량식품일까. 식약처 불량식품근절추진단 사무관은 이렇게 말했다. “식품위생법상 불량식품의 정의는 없다. 문방구에서 파는 식품을 불량식품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단지 학생들의 건강문제, 학교 주변 식품판매 환경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 거다. 식품관리가 부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방구가 ‘우수판매업체’로 지정되면 지금 수준의 먹을거리를 모두 팔 수 있다.”

문방구 측에선 ‘왜 우리만 그런 걸 지정받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더구나 식약처는 수시로 지자체를 통해 문방구에서 수거한 일부 식품의 판매적합 여부를 조사하고 있지만 별다른 문제가 나타난 적은 없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문방구를 34년째 운영하고 있는 가게 주인은 “우리 애들도 똑같이 먹고 자랐다”며 “대통령이 나서서 ‘4대악’이라고 하니 졸지에 범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문방구 식품이 불량식품이니 사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고자질을 하라고 시킨다”며 “선생님을 불러 불량식품이라는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니까 ‘그냥 알고 있는 브랜드가 아니어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서 문방구를 14년째 운영해온 최창근(가명)씨는 “구청에서 공무원이 나왔는데 신분을 밝히지도 않은 채 식품을 조사 해갔다”며 말을 이었다. “조사를 해갔으면 결과를 알려줘야 문제가 있으면 시정을 하지 않겠나. 그래서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모두 적합판정이 났더라. 왜 이런 사실을 문방구 주인과 일반인에게 알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문방구에서 파는 먹을거리가 불량식품이 아니라는 걸 공무원도, 식약처도 다 안다.” 원미구청 관계자는 “사소한 일은 통보하지 않는다”며 “결과를 알려달라고 해서 ‘적합판정이 나왔다’고 말해줬을 뿐”이라고 짧게 말했다.

사실 문방구에서 파는 먹을거리는 정체불명의 식품으로 취급받는다.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이자 편견이다. 문방구에 납품되는 식품을 제조하는 곳 대부분은 대기업 OEM 업체들이다. 오리온이나 해태를 비롯한 굵직한 제과업체는 물론 수입브랜드에 납품하는 곳도 있다.

익명을 원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문방구에 납품되는 먹을거리를 불량식품으로 단정 지으면 대기업 식품도 ‘불량식품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며 말을 계속했다.

“브랜드를 달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가 생산하는 식품은 마트ㆍ슈퍼에도 납품된다. 기업체가 원하는 제조기준을 충족해서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문방구에 들어가는 식품 역시 동일하게 만든다. 허투루 만들지도 않는다. 문방구가 주요 고객이라서다. 문방구는 현금장사다. 어음을 주는 대기업보다 훨씬 중요한 거래처고 고객이다. 문방구 식품 판매 매출액이 회사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한다. 골목상권 살리고, 중소기업 살리겠다는 정부가 왜 이런 걸 모르는지 모르겠다. 문방구를 겨냥해 불량식품을 근절하겠다는 정부는 대기업 이익만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

문방구 식품, 대기업 OEM 업체가 제공

이성원 사무국장은 “식약처는 문방구에서 파는 식품을 고열량ㆍ저영양 식품이라며 건강상의 문제도 지적한다”며 “하지만 사탕이나 쫀드기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먹는 햄버거나 피자가 훨씬 더 고열량ㆍ저영양 식품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명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제과업체ㆍ문방구 식품을 용량 기준으로 비교해보니 문방구 식품의 열량이 더 낮은 경우도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실직한 뒤 초등학교 앞에 문방구를 차렸다는 한 주인은 이렇게 털어놨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이제는 식품까지 못 팔게 하니 그냥 사라지라는 것 아닌가. 경쟁에서 지는 건 억울하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경쟁 여건을 만들어주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서 문방구를 없애려는 행위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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