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익철 서초구청장 ‘과잉홍보’ 논란

▲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몬트리올의 지하도시와 비슷한 지하도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부터 신논현역과 강남역 사이에 언더그라운드시티(지하도시)가 들어설 거란 보도가 흘러나왔다. 서초구청장의 입을 통해서다. 하지만 지하도시는 지하상가에 불과했다. 건설업자 배를 불려주는 동시에 2014년 지방선거에서의 재선을 노린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올 1월 17일. ‘주민 소통•화합 나눔의 장’ 행사에 들른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흥미로운 얘기를 입에 담았다.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축구장 5배 크기의 언더그라운드시티(지하도시)를 조성할 예정이다. 아래에는 지하철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그 위에는 강남역의 침수를 막아주는 2만t급 저류조를 만들 거다. 저류조 위쪽엔 상가•문화시설•보행통로 등을 만들어 주민복지를 꾀할 거다. 계획은 아주 구체적으로 수립했다. 국토교통부(국토부)와 서울시도 찬성한다. 시설들은 기부체납할 예정인데, 국토부와 서울시의 이해관계가 달라서 조율 중이다.” 강남역 상습 침수•복잡한 보행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동시에 명소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민으로선 반가운 일이다. 

지하도시 간데없고 지하상가만 남아

진익철 구청장은 한술 더 떠 “캐나다 몬트리올의 지하도시처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청사진이다. 몬트리올 지하도시의 규모는 12㎢, 총 연장거리는 32㎞에 달한다. 쇼핑몰은 물론 아파트•호텔•콘도•은행•사무실까지 연결돼 있다. 심지어 박물관도 있다. 지하철역과 버스터미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동선動線’도 편하다. 이런 모습을 상상한 주민 대다수는 진 구청장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강남 지하도시 조성사업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하려던 거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진 구청장의 핵심공약이기도 하다. 강남역과 신논현역을 잇는 지하에 너비 42m, 길이 670m, 총면적 2만8517㎡ 규모의 지하도시를 만드는 계획이었다. 진 구청장은 3000여만원을 들여 지하도시개발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캐나다 몬트리올과 일본 오사카大阪를 직접 방문해 지하도시를 구상했다.
지하도시 얘기가 나온 지 약 2년 반이 흘렀다.

 
과연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하도시 계획은 백지상태다. 아직 타당성 조사조차 거치지 않았다. 진행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진 구청장의 말처럼 서울시나 국토교통부(국토부)에서 활발하게 논의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지하도시 계획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관계자는 “공익성을 전제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주변상권과의 충돌문제를 잘 조율한다면 유동인구를 분산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세세한 내용은 논의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남구청 역시 서울시와 다르지 않다. 서초구청과 지하도시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한두번 회의를 진행했다는 강남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사업권한이 국토부로 넘어갔기 때문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서울시와 강남구청의 관계자들이 ‘지하도시’가 아니라 ‘지하상가’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상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강남구청 관계자도 “지하상가를 만든다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사업의 당사자인 국토부와 공사를 진행할 예정인 두산건설 관계자의 말도 같았다. 둘 모두 “지하상가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 구청장의 ‘지하도시 프로젝트’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예산 문제 때문이다. 진 구청장이 제시한 지하도시 예상 공사비는 1500억원에 달한다. 공사에 들어가면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게 건설 관계자의 말이다. 그런데 정부도, 지자체도 지하도시 개발에 투입할 예산이 마땅치 않다. 일례로 서초구는 수년째 세수가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진 구청장이 ‘기부체납’ 아이디어를 꺼냈을 것이다. 개발•운용을 시공사인 두산건설에 맡기고 60년 후 서울시나 국토부에 기부체납하는 방식이다. 진 구청장의 ‘기부체납안案’은 거짓이 아니다. 두산건설은 올 1월 서울시에 이런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지하도시 사업, 타당성 조사도 안해

 
하지만 이 사업계획서의 골자가 ‘지하도시’가 아닌 ‘지하상가’라는 점이 문제다. 두산건설 관계자는 “타당성 조사도 실시하지 않은 사업이기 때문에 할 말이 많지 않다”며 “서초구청장이 치적을 만들기 위해 과잉홍보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민 서초구의원(새누리당) 의원은 “추세대로라면 공익 차원에서 진행해야 할 지하도시 사업이 민간업체가 주도하는 지하상가개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개발업자만 득 보는 사업을 (서초구청장이) 무슨 의도로 홍보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진 구청장이 2014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과잉홍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꼬집는다. 그럴싸한 ‘지하도시 청사진’을 활용해 주민의 표심票心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초구는 지하도시 건설사업의 주체가 아니다. 국토부 소관이다.

김병민 구의원은 “진짜 지하도시를 만들 거였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계획을 짜야 할 것”이라며 “그게 아니라면 지역민을 호도하는 행위를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유동인구 과밀, 상습 정체, 상습 침수지역인 강남대로 일대의 정비가 지하도시 계획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지하상가 개발로 바뀔 지경에 처했다.

<Issue in Issue>
지하도시 vs 지하상가

도시공학에서 지하도시와 지하상가를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하도시와 지하상가는 엄연히 다르다. 지하상가는 지하에 있는 상업지구다. 반면 지하도시는 말 그대로 도시 기능이 있어야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지하도시가 자주 거론되는 건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다. 반영운 충북대(도시공학) 교수는 “주거•산업•상업지구를 포함해 폐기물 처리 시설까지 갖춰서 지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도시시스템을 지하에 구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하도시라고 할 수 있다”며 “한국에선 진정한 의미의 지하도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삼성동 코엑스몰을 지하도시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도시’라는 기준에 따르면 지하상가다. 코엑스몰에 ‘도시(City)가 아니라 몰(Mall•주차장 시설을 갖춘 보행자 전용 상점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들어설 지하시설은 그 규모나 용도의 다양성 측면에서 지하도시로 불릴 만할까. 반영운 교수는 “지하상가를 굳이 지하도시로 부르는 데에는 다른 이유(정치적 고려)가 있는 것 같다”며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들어갈 규모라면 ‘도시’보다는 ‘지하상가’가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