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P&G 전 회장 A.G.래플리

성장동력을 잃은 P&G가 ‘전설’을 다시 불러들였다. P&G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앨런 조지 래플리 전 P&G 회장이다. 업계 안팎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P&G의 상황이 전성시절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전설이 막을 내릴지, 아니면 계속 쓰일지는 래플리의 어깨에 달렸다.

 
생활전문기업 P&G가 ‘올드보이’를 전면에 내세운다. P&G 이사회는 올 5월 23일(현지 시간) “앨런 조지 래플리가 밥 맥도널드 대신 경영을 책임진다”고 발표했다. 래플리 전 P&G 회장 겸 CEO(최고경영자)가 맥도널드에게 CEO 배턴을 넘겨준 지 4년 만에 귀환하는 것이다.

P&G 이사회가 래플리를 경영일선으로 다시 불러들인 것은 맥도널드의 형편없는 경영실적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9년 래플리의 빈자리를 메운 맥도널드는 연구개발(R&D)과 마케팅 임원을 망라한 전사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신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경쟁사인 유니레버에 시장점유율을 내주며 1위 자리마저 위협받는 처지에 내몰렸다.

P&G의 최근 3년 동안의 성장률은 3%에 머물렀다. 유니레버가 지난해 3·4분기 6.6%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유니레버는 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의 신흥시장에서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 시장점유율 1위 자리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올 초 한 매체는 이렇게 보도했다. “과거 스타주였던 P&G 주식이 이제는 별 볼 일(do g) 없어졌다”며 “이제는 유니레버 주식이 스타주다.” 경제학자들도 “이제 승자는 누가 보더라도 유니레버”라며 “P&G의 현 경영진은 실패작”이라고 혹평했다.

 
문제는 래플리가 P&G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느냐다. 일단 주식시장은 그의 복귀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그의 복귀 소식이 전파를 탄 다음날인 5월 24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P&G 주가는 전일대비 4% 올랐다. 스타 CEO 래플리의 귀환을 투자자가 반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래플리는 잭 웰치(GE CEO·전 회장)와 비견되는 스타 CEO다. P&G는 래플리가 지휘봉을 잡은 2000~2009년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 기간 매출은 2배, 수익은 4배나 늘어났다. 내로라하는 경영구루(guru)들이 래플리를 인정하는 이유다.

1977년 P&G에 입사한 래플리는 23년 만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그가 CEO 자리에 앉았을 때 P&G는 사상 최대 적자를 내고 있었다. 그의 성과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장동력 잃은 P&G, 래플리 불러들여

 
래플리의 성공비결은 혁신,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00년 P&G CEO에 취임한 래플리는 전체 매출의 58%를 차지하던 세제·유아용품·여성용품·헤어제품 등 4개 사업만 남기고 나머지 부문엔 메스를 댔다. 래플리는 임직원들에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지 마라.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우리의 핵심 브랜드인 타이드(세제)·팸퍼스(일회용 기저귀)·크레스트(치약)를 집중적으로 팔아라.”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래플리는 인수·합병(M&A)에 돌입했다. 2001년 뷰티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프랑스 염색약 업체 ‘클레롤’을 인수했다. 2003년에는 독일의 샴푸·염색약 전문 업체 ‘웰라’를 품에 안았다. 2005년에는 글로벌 생활용품업체 질레트를 인수해 소비재 최대 기업으로 거듭났다. 핵심사업에 집중하면서 필요할 땐 적극적인 M&A로 세勢를 불린 것이다.

‘고객경영’ 역시 P&G를 정상으로 올려놓은 원동력이었다. 래플리는 직원들에게 ‘고객이 왕’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최고 청취 책임자(CL·Chief Listening Officer)’라고 부를 정도로 고객경영에 힘을 쏟았다. 말뿐이 아니었다. 그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고객집에 방문하고 이들과 함께 식료품점에 들러 대화를 나눴다. P&G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사진으로 본사 로비를 도배한 적도 있다.

 
그의 고객경영은 알찬 성과를 맺었다. 2000년 P&G의 고객은 세계 인구의 33%에 불과했지만 2009년엔 48%로 15%포인트나 늘어났다. 래플리는 소통능력도 뛰어나다. 그는 ‘부드러운 CEO’로 불린다. 실적이 떨어져도 직원을 다그치는 일이 없다. 달래고 얼러 사기를 진작하는 데 ‘선수’다. 냉혹한 구조조정, 엄격한 상벌주의로 직원을 벌벌 떨게 했던 잭 웰치와는 정반대 캐릭터다. 맥도널드 P&G CEO는 과거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래플리를 따르기를 원한다”며 “나는 그를 형처럼 생각하며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래플리는 임원들과도 늘 대화하려 애썼다. 다른 층에서 근무하던 다섯 부서장을 같은 층에 배치하고, 인사부 사장을 바로 옆자리에 뒀을 정도다. 그는 “내 역할은 다섯 부서장들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조율하는 것”이라며 “일종의 코치가 내 직책”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결단의 순간에 무력한 것도 아니다. 평소엔 부드럽지만 무언가 결단해야 할 상황이 오면 무섭게 돌변한다. 래플리는 P&G CEO에 오른 직후 30명의 임직원과 96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하며 구조조정을 했다.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래플리는 당시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고함을 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내 스타일을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다.”

돌아온 전설, 전설 이을까

경영일선에 복귀를 결정한 래플리는 열정이 넘쳐 보인다. 래플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할 일이 많지만 회사가 부른 이상 P&G에 110% 몰두할 것”이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도 컴백 이후 좋은 실적을 냈다’며 래플리가 성공적 컴백에 성공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P&G의 성장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진 지 오래다. 더구나 생활용품시장은 잡스나 슐츠가 그랬던 것처럼 ‘혁신제품’으로 승부를 걸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전설이 돌아왔지만 전설이 계속될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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