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가

▲ 한때 노사갈등으로 얼룩졌던 한진중공업.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그곳에선 벅찬 희망가歌가 울려 퍼진다. 노사勞社가 함께 돈을 벌고, 나눔활동을 펼쳐서다. 한때 노사갈등으로 얼룩졌던 한진중공업의 얘기다. 그러나 그 뒤편의 세상은 다르다. 깊은 절망이 흐른다. 2011년 파업을 이끌었던 또 다른 노조는 낄 틈이 없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진짜 행복해 졌을까.

[Blind Case1] 이 회사.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수주에 성공했다. 노사勞社가 한몸처럼 움직인 결과다. 노조는 수주를 위해 발주처에 탄원서를 보냈다. 노조위원장은 발주처를 직접 찾아가 품질•적시납기를 약속했다. 사社를 위해 신발끈을 동여맨 노勞.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노사는 나눔활동도 함께 했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회사가 있는 지역의 소외주민에게 ‘선물보따리’를 돌렸다. 이 회사의 노사관계, 세계에 뽐낼 만 하다. 겉만 보면 말이다.

[Blind Case2] 이 노동자. 정리해고자다. 2011년 회사에서 잘렸다.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격렬하게 저항했다. 크레인에 올라가 투쟁을 벌였다. 목숨을 내건 저항의 성과는 알찼다. 회사가 복직의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회사가 공언한 ‘재취업 교육일’이 찾아왔다. 벅찬 마음으로 회사로 갔지만 분위기가 싸늘했다. 사측 담당자는 ‘무기한 휴업’이라는 말만 남긴채 자리를 떴다. 이 노동자, 정리해고는 면했지만 일자리가 없다. 회사에서 맘놓고 일하는 게 소원이다. 그는 슬프다.

언뜻 다른 기업의 사례 같다. 아니다. 한 기업 얘기다. 이 아니러니컬한 기업은 한진중공업(한진중)이다. 한진중은 2011년 극심한 노사갈등에 시달렸다. 사측은 ‘수주가 없어 실적이 줄었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밀어붙였다. 노측은 ‘왜 수주가 없느냐’며 반기를 들었다. 감정싸움은 멱살잡이로 이어졌고, 노사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일부 노조원은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펼쳤다. 조남호 한진중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 끌려가는 굴욕을 맛봤다. 

▲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2011년 8월 국회 청문회에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규모가 작은 영도조선소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며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이 결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진중의 조선사업 부문은 2010년 176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감정싸움, 멱살잡이로 이어져

이랬던 한진중이 요즘 변했다. 노사가 손잡고 수주를 꾀한다. 노사갈등으로 홍역을 앓은 지역민도 함께 달랜다. 노사화합 덕분인지 한진중은 최근 15만t급 벌크선과 해양지원선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2008년 이후 첫 수주다. 이 선박들의 건조작업이 시작되면 한진중 영도조선소에는 활력이 깃들 것이다. 김상욱 한진중 노조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일감이 없어 쉬어야 했던 동료가 모두 일터로 돌아올 날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폐허에서 희망이 싹트고 있다는 얘기다. 벅찬 희망가歌다. 하지만 그 뒤편에선 슬픈 절망가歌가 흐른다.

시계추를 2011년 11월 10일로 돌려보자.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단행했던 한진중 노조의 총파업이 끝난 날이다.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 동안 농성을 펼친 김진숙 부산본부 민주노총 지도위원도 이날 내려왔다. ‘정리해고자 94명 1년 내 재취업’ ‘노사 양측에서 제기한 형사상 고소•고발 취하’ 등 노사합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노사화합 이면엔 갈등의 파편이…

오랜 투쟁에 지쳤던 한진중 노조관계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훔쳤다. 11개월 동안 이어진 노사갈등은 ‘헤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파업이 끝난지 두달여 만인 2012년 1월 9일 엉뚱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진중에 새 노조(2노조)가 들어선 것이었다. 더구나 2노조는 ‘정치적 노동운동’ ‘투쟁주의’와 결별을 선언하면서 구舊노조(1노조)와 거리를 뒀다. 사측을 위해 상선수주를 도운 노조가 바로 이들이다.

 
2노조는 금세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2노조의 조합원수는 600여명으로 1노조(192명)보다 훨씬 많다. 당연히 단체교섭권은 2노조에 있다. 복수노조를 인정한 신新노동법(2010년 개정)은 노조원이 많은 노조에 단체교섭권을 부여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상생노조가 뜨고, 파업을 주도한 옛 노조는 무너지는 모양새다. 

 문제는 2노조가 어떻게 세력을 키웠는지다. 2노조 설립 당시부터 사측은 1노조를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순환근무(순환휴직)’ 제도를 통해서였다. 순환근무는  ‘휴업 중인’ 근로자에게 돌아가면서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사측이 택한 근무방식이다. 근무를 하면 임금을, 쉬면 보조금을 받는 식이다. 당연히 근무를 해야 기존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보조금은 월 150여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측은 1노조 조합원들을 순환근무 우선순위에서 배제했다. 임금을 받기 위해선 1노조를 탈퇴하거나 2노조에 가입해야 했다. 한 1노조 조합원은 “순환근무를 하기 위해 2노조에 가입한 이들이 적지 않다”며 “그만큼 살림살이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일을 하고 싶지만 6개월 동안 단 한번도 순환근무를 못했다”며 “사측에서 순환근무 기준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1노조원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회사 관계자는 “1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2노조를 특별히 밀어줬다는 건 터무니 없는 말”이라며 “일부 주장만 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주장치고는 차별사례가 너무 많다.

26년 동안 영도조선소에서 크레인을 운전한 이상호(가명)씨. 2011년 정리해고됐다가 (노사합의안에 따라) 1년 만에 재취업했다. 그런데 몇달째 회사에 갈 일이 없다. 아니, 갈 수도 없다. 순환근무를 배정받지 못해서다. ‘1노조 강성 조합원’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이다. 20년간 한진중에 몸담은 김철민(가명)씨는 ‘2노조로 갈아타라’는 사측의 은밀한 제안을 거절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순환근무를 배정해주지 않아서다. 지원금 150만원으로 한달을 버틴 것도 수개월째다. 그는 “괴롭다”면서 속내를 드러냈다. “대학 다니는 두딸과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짜증부터 난다. 못난 아비가 된 거다. 내년이면 대학생이 3명이다. 갑갑하다.”

▲ 한진중공업은 복수노조제다. 2012년 1월 출범한 신新노조는 회사와 함께 수주를 펼치는 등 상생을 꾀하고 있다. 그렇다고 2011년 파업을 단행한 구舊노조가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노노반목, 사측과 무관한가

그는 요즘 닥치는대로 일을 한다. 주유소 아르바이트, 대리운전, 포장공사 막일, 목욕탕 때밀이 등 안해본 일이 없다. 최근엔 비닐하우스에서 과일을 따는 일까지 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회사로 돌아가 원래 하던 일을 하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의치 않다. 얼마 전 옛 동료가 그리워 회사를 찾아갔지만 ‘순환근무자가 아닌 사람은 (회사에) 들어올 수 없다’는 핀잔만 들었다. 그는 “내 집에서 쫓겨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말을 이었다. “2노조에 가입하면 형편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고작 돈 때문에 1노조가 무너져선 안 된다. 2노조를 만들어 동료를 떼어 놓는 회사가 정말 싫다.”

그렇다. 한진중의 내부사정은 알려진 것과 다르다.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즘은 노노勞勞까지 찢어져 감정싸움을 하고 있다. 2노조로 적을 옮긴 일부 노조원은 회사 밖에서 전전긍긍하는 옛 동료를 보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2노조 내부도 다를 게 없다. 파업이 끝난 뒤 재빨리 2노조로 넘어간 이들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함께 울고웃던 조합원들이 ‘분열의 늪’에 빠진 거다.

 
사측의 설명은 다르다. 영도조선소 관계자는 “(1노조 조합원들은) 순환근무를 하지 않아도 지원금을 받지 않는가”라며 “다들 작업장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장에서 2노조와 1노조가 협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든 한진중의 현주소는 이렇다. ‘강성노조(1노조)의 몰락, 상생노조(2노조)의 탄생.’ 한편에선 “당연한 흐름”이라고 주장한다. 회사가 고꾸라지든 말든 파업을 단행한 1노조의 추락은 마땅한 결과라는 것이다. ‘노사가 화합하면 회사가 살고, 갈등하면 죽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옳은 지적일 수도 있지만 따져볼 것도 있다. 파업을 단행한 1노조가 의도적으로 회사를 어렵게 만들었느냐다. 경영진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느냐다.

한진중은 2007~2009년 괜찮은 실적을 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매출 3조2276억원, 영업이익 4609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은 500억원을 훌쩍 넘었다. 한진중은 2010년 주주들에게 174억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풀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문제는 2010년부터 실적이 곤두박질쳤다는 점이다. 한진중은 그해 51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당기순이익이 단 1년 만에 1000억원 넘게 줄어든 셈이다. 사측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주환경 악화를 이유로 들었다. 정리해고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도 이 무렵이다. 

 
2010년 정리해고 본격화 “왜”

하지만 한진중은 2010년 조선부문에서 176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500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노조측이 “회사의 당기순손실과 수주환경은 상관관계가 약하다” “정리해고 방침은 부당한 인사조치”라며 저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한 판단도, 틀린 말도 아니었다. 2010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한진중이 정리해고를 추진한 이유 중 하나는 ‘건설사업 실패’다. 2002년 사업에 착수한 호텔식 오피스텔 ‘한진 베르시움(베르시움)’에서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다. 한진중이 베르시움 시공을 맡은 건 2002년의 일이다. 시행사는 보스코산업이었다. 리스크가 컸다. 1995년 착공했지만 번번이 분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공을 맡았다가 쓰러진 업체도 두곳이나 있었다. 이 때문인지 명칭도 문화타워(1995), 킹덤타워(2001)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한진중은 베팅을 결정했다. [※참고: 리스크를 무릅쓰고 투자를 결정한 이는 조남호 회장일 가능성이 있다. 2002년 당시 조 회장은 한진중의 건설부문 대표(부회장)였다. 그는 이듬해 7월 한진중 대표(회장)에 올랐다.] 때마침 보스코산업이 삼성생명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아 실탄도 충분했다. 한진중은 베르시움을 통해 ‘큰돈’을 벌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보스코산업의 내부자료인 ‘베르시움 자금수지표’에도 그런 기대감이 묻어 있다. “… 모든 분양을 완료할 경우 분양수익금은 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분양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보스코산업 대표 A씨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한진중은 벼랑에 몰렸다. PF대출자 삼성생명이 한진중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2011년 1월 고등법원은 “삼성생명에 판결금액 348억원과 이자 375억원 등 총 723억원을 지급하라”고 배상을 명命했다. 받지 못한 공사비까지 포함하면 한진중의 손해는 1000억원을 넘어섰다. 한진중공업 자기자본(2조813억원•2011년 기준)의 5%에 해당하는 손실이었다. 

이상한 베르시움 베팅, 손실 초래

한진중은 대법원에 항고하면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이를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했다. 대법원에서도 패소하면 이자비용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었다.이는 한진중의 20 10년 실적이 적자(마이너스 517억원)로 전환되는 변수로 작용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2011년 한진중공업의 당기순손실이 500억원을 넘은 것은 건설부문(한진 베르시움) 소송패소에 따른 영업외비용, 다시 말해 대손상각비(560억3000만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도 당시 이렇게 지적했다. “한진중의 잘못된 건설사업 투자로 발생한 손실과 그에 따른 이자부담 때문에 경영상태가 악화됐다.(2011년 8월 한진중 청문회)”

한진중이 2011년 정리해고를 밀어붙인 이유는 또 있었다. 필리핀 수빅조선소다. 한진중은 2006년부터 이 조선소에 실탄을 쏟아부었다. 규모가 작은 영도조선소에선 ‘큰돈’을 벌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수빅조선소의 실적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2011년 2월 진보신당 부산시당은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2010년 3분기까지 한진중 조선부문의 영업이익률은 18.3%로 회사 전체 영업이익률의 2배에 달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임금은 다른 조선소의 80% 수준에 머물렀다. 수빅조선소에 쏟아 부은 투자금을 매출을 통해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수빅조선소는 2010년을 기점으로 수주잔고가 감소해 한진중의 재무부담만 키웠다. 실제로 한진중의 순차입금 규모는 2009년 2조8546억원에서 2012년 2조9517억원으로 늘어났다. 차입금 의존도는 같은 기간 50.6%에서 54.2%로 3.6%포인트 증가했다. 수빅조선소 투자를 계기로 차입금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2010년은 한진중에 ‘나쁜 전환기’다. 실적은 줄고 차입금은 늘어나서다. 건설사업 실패, 무리한 투자가 재앙을 불렀다는 얘기다. 조선 부문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한진중은 2010년 12월 15일 영도조선소 근로자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노조는 12월 20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어쩌면 노조가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지 모른다. ‘임금상승’ 따위를 노린 파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려운 회사를 더 어렵게 만들려는 수작도 아니었다. ‘실패한 건설사업과 과도한 투자의 책임을 왜 노동자에게 미루냐’는 불만이 폭발한 거였다. 파업을 단행한 1노조가 어떤 비난도, 차별도 받지 말아야 할 이유다. 

노사갈등이 노노갈등 불러…

그러나 2노조가 출범한 이후 1노조는 ‘회사를 벼랑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쯤으로 여겨진다. 2노조처럼 직접 수주를 하기는커녕 경영을 방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지역주민을 괴롭혀 놓고 2노조처럼 ‘선물보따리’를 꺼내놓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는다.

사실 1노조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지역주민에게 선물보따리를 전하는 건 1노조의 오랜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중 전직원은 1990년대부터 적게는 5000원, 많게는 3만원까지 매월 적립해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썼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는가. 1노조는 슬피 운다. 절망가歌다.
이윤찬•김정덕 기자 chan4877@thescoop.co.kr | @chan4877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