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2] 복수노조의 아이러니

▲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업장의 노조파괴 공작에는 어김없이 ‘어용 복수노조’가 등장했다.
복수노조가 노동계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애초 복수노조를 주장했던 민주노총이 복수노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아이러니가 아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창구단일화 조항이다.

수노조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문제였다. 1963년 박정희 군사정권은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했다. 이는 지난 50여 년간 노동기본권을 억압한 통제장치였다. 그 결과 한국노총이라는 어용 노동조합만 존재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복수노조 금지조항 철폐가 민주노조의 화두가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를 설립하고자 했던 열망을 그 조항이 막고 있었던 거다. 이 조항을 바꾸려던 많은 노동자와 노조가 불법노조•불법투쟁이라는 미명으로 탄압받았다. 그러다 날치기 노동법 개악에 저항한 1997년 겨울 총파업으로 ‘상급단체(초기업단위) 복수노조금지’ 조항이 철폐됐고 민주노총은 합법조직이 됐다.

하지만 ‘작업장단위(기업단위)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여전히 존속했다. 그러다 2010년 1월 1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날치기로 노동법을 개정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콘셉트로 삼은 정부가 복수노조를 허용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다만 이명박 정부는 복수노조를 ‘새로운 노동통제수단으로 제도화’했다. 현재의 복수노조 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였다.

현행 작업장단위 복수노조제도의 문제점은 뭘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창구단일화 조항’이다. 사업장에 두개 이상의 노조가 있을 때는 노조원이 많은 노조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다. 소수 노조의 경우 헌법적 권리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인정되지 않아 위헌의 소지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법안의 재개정을 권고한 것도 이 조항 때문이다.

한국에서 창구단일화와 작업장단위 복수노조가 강력한 노동통제수단이 되는 것은 ‘기업별 노조체제’ 때문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는 다른 기업별 노조라는 독특한 환경을 갖고 있다. 기업별 노조에서는 사용자가 노조활동에 개입하기 쉽고, 어용노조가 발생할 개연성도 크다.

 
지난 15년간 민주노조들은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기 위해 산별노조 건설운동과 비정규노조 조직화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늘 벽에 부딪혔다. 초超기업 단위 노조인 산별노조 조직과 기업 내 제2노조인 비정규 노조도 작업장단위의 교섭창구단일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업장의 불법적 용역폭력이나 노조 파괴공작에는 어김없이 ‘어용 복수노조’가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컨택터스나 CJ시큐리티와 같은 노조파괴 전문용역기업도 동원됐다. 어용 복수노조는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과 같은 정리해고 사업장에서는 노동자 저항을 노노勞勞갈등으로 왜곡하는 수단이 됐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노사관계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창구단일화를 폐지해야 한다. 10% 미만의 취약한 조직률과 상시적 고용불안 속에서 노조들은 스스로 창구단일화에서 주도권을 쥐기 힘들다. 노동자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한 지위를 강제하는 법률을 개정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가장 약자인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헌법적 기본권을 보호하지 않는 정부의 경제민주화는 정치적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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