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1] 새 정부 출범 100일의 기록 | 대기업 사정바람

역대 정권 초기에는 사정기관에 의한 ‘재계 길들이기’가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근 검찰의 칼날이 대기업을 향하고 있다. 첫 타깃은 CJ그룹이었다. 최근에는 MB정부의 핵심 국정사업으로 통한 ‘4대강 사업’ 담합 의혹에도 수사를 나섰다. 하지만 이 사정바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박근혜 정부 100일. 역대 정권 초기에는 ‘사정司正’을 무기로 ‘재계 군기잡기’ ‘길들이기’가 이뤄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에게 비리와 부패를 척결한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재계를 길들여 향후 재계와의 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정권 초기에 대기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대기업이 정부정책을 비교적 쉽게 따른다는 효과도 있었다.

2008년 출범한 이병박 정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검찰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참여정부 관련 인사들과 가까웠던 기업들은 영락없이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박근혜 정부 재벌수사 첫 타깃 CJ

▲ 검찰의 CJ 비자금 수사는 2008년에 시작됐다. 그런데 왜 5년이 흐른 2013년에서야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지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민주화가 더해져 재계 길들이기는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 대상은 CJ그룹이었다. 현재 검찰은 이재현 CJ 회장의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이다. 사실 검찰의 CJ 비자금 수사는 2008년에 시작됐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물려준 재산이라며 1700억원의 세금을 내고 조용히 사건을 넘겼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수사가 다시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CJ가 재계 군기잡기의 표본으로 걸렸다’는 말이 떠돈다.

검찰의 수사 대상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정사업으로 통했던 ‘4대강 사업’과 관련 현대건설•삼성물산•GS건설•SK건설 등 16개 건설업체의 담합 관련 검찰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4대강 사업 1차 턴키공사 당시 입찰담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을 5월 31일 소환조사했다. 추후 조사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만이 아니다.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사정기구도 대기업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통해 재산도피와 해외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명단이 속속 발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세청은 ‘역외탈세’를 추적하고 있다.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를 대상으로 ‘일감몰아주기’ ‘부당하도급’ 등 불공정 거래에 대해 조사 중이다. 제일기획(삼성 계열)과 대홍기획(롯데)에 대한 조사는 이미 시작됐고, 다른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 중 광고 취급액이 많은 업체를 중심으로 조사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남양유업 등 우유업체의 대리점 물품 ‘밀어내기’ 등 불공정 거래도 조사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사정작업은 대통령이 키를 쥐고 있다. 사실 검찰은 그동안 대통령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박근혜 정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검찰이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 구축, 법치질서 회복이라는 국정철학이 반영된 수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권 초기 검찰의 기업 수사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해 다른 기업들이 긴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기업에게 ‘앞으로 내 말을 잘 들어라’라는 메시지를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는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실 기업의 비리는 2, 3년 전에 이미 의혹으로 퍼지고, 검찰이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후 검찰이 정권 초기 등 특정한 시기를 보고 공개수사에 들어가 세상에 알려진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수사로 인해 대기업의 편법과 불법이 사라진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렇지 못하다. 검찰수사를 정권 초기 당연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쯤으로 받아들이는 기업도 많다. 잠깐의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식이다.

기업이 이런 생각을 가질 만도 하다. 군기잡기, 길들이기는 말 그대로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초반에 확 휘어잡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풀어진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이 모두 그랬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모두 정권 초기 ‘기업 비리 근절’을 내세우며 검찰 수사에 나섰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년, 2년이 지나면 사정의 움직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사라졌다.

진정성있는 검찰 수사 필요해

▲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검찰의 칼날이 재계를 향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5년 후를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정권 초기에만 보이는 강력한 기조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사실 정부로선 대기업의 병폐를 끝없이 파헤치고 몰아붙일 수도 없다. 대기업이 돌아가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죽을 쑤는 이상한 ‘구조’ 때문이다.

삼성•현대차 등 5대 기업 매출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의 60%가량을 차지한다.(2011년 기준) 대기업이 한국 경제의 큰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대기업이 협력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성장하기 힘들다.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기업비리 수사를 집권 기간 내내 밀어붙이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대기업 검찰 조사가 이뤄지거나 그룹 회장이 수감되면 그룹은 ‘경영 올 스톱’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다’며 경영에 타격을 입는다고 호소한다. 현재 회사돈을 빼돌린 혐의로 수감 중인 최태원 SK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이 이런 상황이다. 정권 말에는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오고, 오히려 대통령 측근 비리가 터지며 상황이 역전되기도 한다.

이제는 이런 구조를 끝내야 한다. 기업 수사가 집권 초기 상징적 타깃 수사가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이뤄져야 한다. 잘못했다면 그때 제대로 수사가 이뤄져야 하고, 사법기관의 정치적 독립성도 확보해야 한다. 또 한국경제의 고질병인 높은 대기업 의존도도 낮춰서 검찰이 기업 수사에 착수해도 ‘경영이 차질이 생긴다’는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새 정부, 아니 박 대통령의 과제다.
박용선 기자 brave@thescoop.co.kr | @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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