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4] 새 정부 출범 100일의 기록 | 乙의 반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 동안 가장 많이 울려퍼진 건 ‘을乙’의 목소리다. 갑甲의 횡포를 막아달라는 울부짖음이었다. 을의 반란은 박근혜 정부의 콘셉트인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면서 힘을 받았다. 중요한 건 이런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갑질을 막기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필요하다.

▲ 갑의 횡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공정위의 발빠른 시정이 필요한 때다.
갑甲질 파문은 남양유업에서 촉발됐다. 남양유업의 한 대리점주가 인터넷에 공개한 녹취파일에는 입에 담기 힘든 영업사원의 욕설이 난무하고 대리점주가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을 강매한 정황히 담겨 있었다. 이는 불합리한 갑을관계를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남양유업을 시작으로 침묵을 지키던 을乙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올 5월 7일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열린 ‘재벌·대기업의 불공정·횡포 피해사례 발표회’에서는 다양한 산업군에서의 피해사례가 빗발쳤다.

이날 발표회에는 농심·크라운베이커리를 비롯한 식품기업, CJ대한통운·롯데백화점·네이처리퍼블릭 등 물류·유통기업의 대리점주·가맹점주가 참여해 불공정행위를 고발했다. 을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갑의 횡포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농심은 일방적으로 매출목표를 정하고 대리점이 소화할 수 없는 물량을 밀어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일방적으로 변경한 주문제도와 반품·미수금제도를 활용해 크라운베이커리 가맹점주를 코너로 몰았다. 롯데백화점은 입점·파견업체들이 본인과 가족의 카드까지 사용해 백화점이 원하는 목표매출을 맞추도록 강요했다.

문제는 갑의 위치에 있는 기업들이 고질적인 병폐를 시정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기업들은 문제가 밝혀지면 이를 감추는 데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갑질에 대해 국민 앞에서 고개를 숙인 남양유업은 정작 검찰에선 혐의를 부인했다. 최근엔 대리점협의회와 대치하는 어용단체(회사의 이익을 위해 만든 노조 단체)까지 만든 정황이 포착됐다. 대리점주들의 와해를 시도했다는 얘기다.

 
CU 운영사 BGF리테일은 한 대리점주의 사망진단서를 조작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 이들의 대국민 사과에도 진정성이 없었다. 남양유업ㆍBGF리테일이 국민 앞에서 사과하는 자리엔 정작 ‘회장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쪽짜리 사과였다는 것이다.

‘을’들은 지금을 ‘갑질’을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의 콘셉트 중 하나인 경제민주화가 약발이 통할 때 ‘갑의 횡포’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갑질의 횡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을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 4월에는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입점업체 직원이 본사의 매출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자살했다. 남양유업 사건이 한창 오르내리던 5월 14일에는 배상면주가의 한 대리점주가 자살했다. 본사의 강압적인 밀어내기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5월 16일에는 용인 기흥구의 CU 편의점주가 자살했다. 본사와 가맹점주 간의 불합리한 계약이 결정적인 자살 이유였다.

공은 이제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여야 국회는 을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공정위가 갑의 횡포를 감시하는 ‘보안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지금의 병폐는 바로잡기 어렵다. 갑甲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공정위의 칼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도 중요하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한풀 꺾이면 을은 또다시 갑의 눈치를 보는 처지에 내몰릴 게 뻔하다. 지금이 기회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 | @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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