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수리비의 ‘블랙홀 현상’

수입차의 평균 수리비는 국산차에 비해 3~4배 비싸다. 반면 수입차 소비자가 지불하는 보험료는 국산차에 비해 1.3~1.7배에 불과하다. 때문에 국산차 운전자의 보험료가 수입차 수리비로 흘러들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수입차의 비싼 수리비를 낮춰야 한다.

 
국내 수입차의 문제점 중 하나를 꼽자면 비싼 수리비다. 차량 충돌 사고 시 수입차의 수리비는 국산차에 비해 3~4배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개발원은 올 1월 벤츠혼다폭스바겐 수입차 3종과 현대차기아차한국GM 국산차 4종에 대해 전후면 저속충돌을 실시하고 수리비를 분석한 결과, 벤츠 C200의 수리비가 1677만원으로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혼다 어코드는 1394만원, 폭스바겐 골프는 826만원으로 조사됐다. 차량가격 대비 수리비 비율 역시 벤츠 C200(신차가격4620만원)이 36.3%로 가장 높았다. 혼다 어코드(4120만원) 33.8%, 폭스바겐 골프(3310만원) 25% 순을 보였다.

수입차 수리비는↑ 보험료는 ↓

국산차의 수리비는 기아차 K9 386만원, 현대차 그랜저HG 330만원, i40 256만원, 말리부 210만원으로 조사됐다. 차량가격 대비 수리비 비율은 10% 미만으로 나타났다. 벤츠 C200과 기아차 K9의 수리비를 비교하면 벤츠 C200이 무려 4배 비쌌다. 반면 신차가격은 K9(5197만원)이 C200(4620만원)보다 577만원 비쌌다.

수입차의 수리비가 높은 것은 부품인건비 등 원가가 국산차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수입차의 부품비는 국산차에 비해 2.5~8.8배 높고, 인건비는 2.5배에 이른다. 수입차의 몇개 부품만 교체해도 200만~3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AS센터가 너무 적어 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현재 주요 수입차의 AS센터 보유 현황을 보면, BMW코리아가 37개를, 벤츠코리아가 27개, 도요타코리아 26개, 폭스바겐코리아가 18개를 운영하고 있다.

▲ 수입차의 평균 수리비는 국산차보다 3~4대 비싸다. 하지만 수입차를 운전하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보험료는 국산차 보험료에 비해 1.3~1.7배에 불과하다.
올 8월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총 10만3417대다. 이 때문에 AS센터 한 곳이 정비하기엔 차량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벤츠 정비센터 한곳이 수리하는 차량수는 3672대고, BMW는 3306대, 폭스바겐은 2677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리기간이 긴 만큼 자동차를 대여하는 기간도 길어지는데 이는 높은 대여비로 연결된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AS센터에서 5일이면 충분히 수리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대여비를 더 받기 위해 수리기간을 길게 잡는 경우가 있다”며 “심지어 대여업체와 AS센터 간에 리베이트가 오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입차가 부품공임대여 등을 통해 수리비를 높여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과도한 수리비는 보험료 증가로 연결된다. 자동차보험 수리비 중 부품비용은 연간 2조원을 넘어선다. 이 중 수입차보험 부품비용은 22%에 달한다. 그런데 수입차의 평균 수리비는 국산차보다 3~4배 비싼 반면 수입차를 운전하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보험료는 국산차 보험료에 비해 1.3~1.7배 높은 수준이다.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손해보험사 2010년 사고 1건당 수리비 지급 통계에 따르면 수입차는 291만6000원으로 국산차(83만5000원)에 비해 3.5배 많다. 특히 2006년 이후 수입차 1건당 평균수리비는 국산차와 비교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6년 수입차의 평균수리비는 국산차 대비 3.1배였으나 2010년 3.5배에 이르렀다.

 
하지만 수입차 보험료는 비슷한 가격대의 국산차에 비해 2배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한 대형 보험사가 수입차 판매 상위 10개 모델과 국산차의 최초 납입 보험료를 비교한 결과 수입차의 보험료는 국산차에 비해 1.3~1.7배에 불과했다.

현대차 에쿠스 VS380 모델(6880만원)의 보험료는 99만5000원인 반면 BMW 520d(6260만원)의 보험료는 156만2000원으로 1.6배밖에 높지 않다. 4000만원대 국산차인 제네시스의 보험료(86만8860원)와 폭스바겐cc(146만520원), BMW 320d(128만6777원)를 비교해본 결과 각각 1.7배, 1.5배에 불과했다. 3000만원대에서는 1.3~1.5배에 불과해 국산차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수입차의 수리비가 국산차보다 많지만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적게 낸다는 얘기다. 때문에 손해보험사가 지급하는 수입차 수리비용의 상당 부분이 국산차 운전자의 보험료로 충당된다는 지적이다.

일명 ‘부르는 게 값’이라는 수입차의 높은 사고 수리비용도 수입차와 충돌한 국산차 고객의 보험료 부담을 키운다. 손보사 업계에 따르면 수입차가 최근 가파르게 늘면서 절반 이상의 소비자가 대물한도를 1억원 미만에서 2억원 이상으로 올렸다.

보통 대물배상금액 2억원과 1억원의 보험료 차이는 6000원 정도다. 만약 고가의 수입차와 충돌사고가 나면 두 차량 수리비 합계금액을 과실비율에 따라 부담하기 때문에 국산차 소비자가 고액의 수리비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수입차의 수리비 중 60%를 차지하는 부품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수입차 부품은 직영 딜러사를 통해서만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수입사와 딜러사가 운영하는 AS센터에서 소비자로 연결되는 루트가 하나인 독점 체제라는 것이다. 여기에 부품이 수입되는 가격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수입사와 딜러사가 부품 가격을 마음대로 비싸게 책정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다양한 업체들이 부품을 유통할 수 있도록 허용해 수입차 부품시장의 자율경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자동차 부품에 대한 제작사의 독점방지와 소비자의 부품선택권 확보, 부품 비용의 안정화를 위해 국내 비非OEM 부품 생산, 병행 수입, 재활용부품 등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품 독점 구조 막아야

▲ 수입차의 부품비용을 낮추기 위해선 비非OEM 부품생산, 병행수입, 재활용부품 등이 활성화돼야 한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부품은 완성차업체나 그 계열 부품업체가 다른 업체에 위탁 생산하는 부품을 말한다. 비OEM 부품도 OEM 부품과 성능 차이가 거의 없는 규격품이다. 국내에서 비OEM 부품이 제작된다면 부품 가격을 약 3~5배 정도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비OEM 부품의 품질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때문에 비OEM 등 대체부품에 대한 품질인증제도가 동시에 도입돼야 한다.

실제로 미국에선 비OEM 부품의 사용률이 33.9%에 이른다. 또 미국과 캐나다의 자동차보험 약관에는 비OEM 부품의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선 약 55%가 OEM 부품으로 유통되고 있고, 45%는 독립적인 판매채널을 통해 비OEM 부품이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다. 반면 국내 수입차 부품시장에선 비OEM 부품의 사용률이 1~2%에 불과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잭 질(Jack Gilles) 미국 자동차부품협회(CAPA)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CAPA)의 목적은 정비업체보험업체소비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완성차업체가 부품 제공을 독점하는 것을 막아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완성차 업체의 OEM 부품과 비OEM 부품 등 대체부품의 품질수준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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