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 왜 깨졌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강덕수 STX그룹 회장 두 명의 ‘샐러리맨 신화’가 위기에 봉착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를 맞은 것이다. 현재 웅진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STX는 채권단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신화라고 불리던 두 인물이 어떻게 그룹을 일궜고, 왜 위기를 맞았을까.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강덕수 STX그룹 회장. 그들의 성장 스토리는 다른 듯하면서도 닮았다. 잘나가다가 브레이크가 걸린 것도, 현재 법정관리(웅진)•자율협약(STX)에 돌입한 것도 비슷하다. 두 사람은 재계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한다. 평사원에서 시작해 그룹 회장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특히 선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그룹을 일궜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그룹 대부분은 19 50년을 전후로 창업하고 성장했다”며 “이후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며 재벌가家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윤석금•강덕수 회장은 스스로 그룹을 키워냈다”며 “특히 1950년대 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1980년(웅진 창립)과 2001년(STX)에 창업해 성장을 일궜다는 건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강덕수의 ‘M&A’, 윤석금의 ‘창의력’
그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강덕수 회장은 인수•합병(M&A)이 무기였다. STX의 역사는 M&A를 발판으로 시작됐다.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한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 사장 시절인 2001년 사재를 탈탈 털어 회사를 인수한 뒤 사명을 STX로 변경했다. 동시에 STX조선해양을 사들이며 그룹 성장방향으로 생각했던 조선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후 강 회장은 2004년 STX팬오션을 인수해 해운업에 진출했다.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2007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 STX유럽을 인수했고, 2008년 중국에 STX다롄 조선소를 준공했다.
윤석금 회장 역시 평사원으로 출발했다. 1971년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윤 회장은 단 1년 만에 세계 54개국 판매원 가운데 ‘실적 1등’에 올랐다. 이를 밑거름 삼아 1980년 직원 7명과 함께 자본금 7000만원으로 웅진씽크빅을 설립했다. 이후 1988년 웅진식품을 인수하고, 웅진코웨이(1989년)를 설립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해나갔다.
윤 회장이 진출하는 사업마다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창의적인 사고’였다. 그는 진출하는 사업 분야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상품•서비스를 개발해 ‘대박’을 터트렸다. 웅진씽크빅의 고교 학습테이프, 웅진식품의 건강음료, 웅진코웨이의 정수기•비데 대여 등이 그랬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경영철학도 그의 성공을 한몫 거들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때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더 노력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창의력도 발휘된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자신의 저서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불만스럽고 짜증스러운 마음 대신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보겠다는 신바람이 우리를 채우게 되고 그 열정으로 원하는 미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두 회장은 현재 위기를 겪고 있다. 그룹 창립 이후 최대 위기다. 윤 회장은 2012년 9월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강 회장은 올 4월 채권단 자율협약을 맺었다. 형태만 조금 다를 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를 부른 것이다.
웅진은 출판•교육•식품•생활환경 부문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윤 회장이 야심차게 진출한 건설과 태양광사업이 발목을 잡았다. 윤 회장은 2007년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1년 후에는 웅진케미칼을 품에 안으며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태양광 사업(웅진에너지•웅진폴리실리콘)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욕심’으로 끝났다. 2008년 이후 세계적인 불황이 계속됐고, 건설과 태양광사업은 웅진을 ‘M&A 승자의 저주’에 빠뜨렸다.
극동건설은 웅진에 인수된 이후 적자로 돌아섰다. 2011년과 2012년 각각 896억원, 266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태양광사업 역시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윤 회장은 2012년 말 법정관리 신청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무리한 사업 확장 결과 법정관리까지 왔다”며 “건설과 태양광사업은 포기했어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웅진은 지주회사를 유지하며 웅진씽크빅과 북센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매각했거나 매각할 방침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룹이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판단한 윤석금 회장이 기존 출판•식품사업보다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건설업에 눈을 돌렸다”며 말을 이었다. “2008년 이전 경기가 좋을 때 대기업 대부분은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며 이익을 냈다. 윤 회장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대기업과 똑같이 가려고 건설사를 인수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윤석금과 웅진의 스타일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M&A가 유동성 위기 초래해
강덕수 회장 역시 경기 침체를 이겨내지 못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강점으로 꼽히는 M&A에서 쓴잔을 마셨다. 강 회장이 그동안 인수했던 그룹 핵심 계열사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STX조선해양은 2012년 698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1년에는 전년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97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STX팬오션은 2011년 1233억원, 2012년 214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핵심 계열사가 흔들리자 그룹 전체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다. STX가 현재 금융권에서 빌린 자금은 약 12조원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은 1조원 안팎이다.
이에 따라 최근 STX 채권단은 STX조선해양•STX중공업•STX엔진 등 그룹 조선부문은 살리고, 비非조선과 해외사업(STX다롄•유럽)은 매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영진 김영진M&A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강덕수 회장이 기업을 인수한 시점에선 조선•해운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STX가 고속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조선과 해운의 경기는 사상 최악이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 하지만 경영인은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성장에만 열을 올리다가 리스크를 냉정하게 확인하지 않은 게 강 회장의 패착인 것 같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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