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으로 본 1997 vs 2013

1995년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가 열렸다. 당시 30~40대였던 베이비붐 세대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글로벌 경제위기 등을 겪으며 혼란이 왔다. The Scoop는 베이비붐 세대 강영훈(가명)씨의 삶을 통해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를 재조명해 봤다.

 

▲ 시대가 바뀌고 경제규모는 커졌어도 서민의 살림살이는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기울이기 힘들어진 요즘이다.

 

강영환(가명)씨. 그는 1961년생 소띠다. 베이비붐 세대로 슬슬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다. ‘쉰 세대’는 아니다. 네이버카페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활발하게 할 만큼 인터넷을 잘 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눈이 침침해지는 걸 보니, 나이는 무시할 수 없다.

“아빠, 그러지 말고 돋보기 하나 맞춰.” 딸 보람이가 가볍게 눈을 흘긴다. 결혼한 지 4년 만에 겨우 얻은 귀한 딸이다. 딸은 올해 수도권에 있는 모대학 인문계열에 입학했다. 강씨는 딸이 치과의사가 될 줄 알았다.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돌잔치 때 보람이가 집어든 물건이 칫솔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그 시절로 시간을 돌려본다.

1995년 여름, 강씨는 행복했다. 어렵게 얻은 딸은 무사히 돌잔치를 마쳤고, 그로부터 사흘 뒤 그는 과장으로 승진했다. 화학과 출신인 강씨의 직장은 중견 식품회사다. 그는 승진기념으로 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강씨의 주머니에는 회사동기 김동희(가명)씨가 찔러 준 비상금 5만원이 들어 있다. 김씨는 ‘돌잔치에 못 가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내와 집을 나섰다. 어린 딸은 어머니댁에 잠시 맡겼다. “경양식집에서 칼질 한번 하는 게…” 강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얼굴을 찌푸린다. 짠순이 아내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동네 설렁탕집. 그곳에서 4000원짜리 설렁탕 두 그릇과 반주로 2000원짜리 소주 한병을 곁들였다. 가격은 딱 1만원.

이후 영화를 보기로 했다. 1인당 350원씩 내고 지하철을 탔다. 매표소에서 구입한 영화티켓의 제목은 멕라이언 주연의 ‘프렌치키스’. 티켓가격은 장당 5000원씩이다. 상영관으로 들어가기 전 팝콘과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아내는 콜라 한병이면 족하다고 고개를 젓는다. 모처럼의 데이트인데 너무 아끼려 드는 아내 때문에 강씨는 민망하다. 한편으로는 부족한 월급으로 살림살이하게 한 자신의 능력이 아쉽다.
 

부부는 인근 가게에서 콜라 두 병을 구입한 뒤 극장으로 향했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1995년 당시 355mL짜리 콜라 한 병의 소매가는 300원이다. 현재 콜라는 대형마트에서 개당 700~800원, 편의점에선 900~1100원선에 거래된다. 18년 사이 가격은 2배 이상 올랐지만 용량은 되레 250mL(캔)로 줄어들었다.

물가를 조금 더 비교해보면, 1만3000원이던 일반미 8㎏은 2013년 현재 2만3300원에 거래된다. 대형마트 기준으로 260원이던 신라면 1개의 가격은 올해 634원으로 올랐고 580원이던 소주 한병은 현재 1080원이 됐다. 특히 기름값이 올랐다. L당 560원이던 휘발류는 현재 2029원에, L당 237원이던 경유는 1821원에 거래되고 있다.

프렌치키스는 재미있었다. 상습적 바람둥이인 남자친구를 버리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다소 상투적인 내용이었지만, 멕라이언의 꽃미모가 이를 상쇄했다. 집으로 오기 전 부부는 동네 호프집에 마주앉았다. 1200원짜리 생맥주 500㏄ 두 개를 시킨 뒤 5000원짜리 마른오징어 안주를 곁들이며 데이트의 끝자락을 만끽했다. 집에 돌아와 정산해보니 쓴 돈은 3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로는 차량 주유를 했다. 2만원어치만 넣었음에도 눈금은 중간치를 훌쩍 넘었다.

외환위기보다 어려운 2013년

과장으로 승진한 후 강씨의 삶은 순탄했다. 주변 경제여건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1472달러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가 열린 때였다. 사회전반에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만만치 않았다. 1997년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온 나라가 휘청거렸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다. 수많은 회사가 부도났고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은 길거리에 내몰렸다. 강씨의 회사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인력감원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씨는 용케 살아남았다.

하지만 급여 삭감은 감수해야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상용근로자 임금상승률 추이를 보면 1998년 당시 비농전산업(농업•임업•어업 제외한 산업군) 취업자의 경우 전년대비 -9.3%의 임금하락률을 기록했다. 제조업 근로자의 임금하락률은 -9.9%였다.

그러나 이는 단순 통계일뿐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일반노동자의 임금하락률은 보다 깊었다. 강씨는 30% 급여삭감을 받아들여야 했다. 강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였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당시 발표자료를 보면 IMF 한파가 시작된 1997년 12월부터 본격화된 1998년 2월까지 석달 동안 소비자 물가는 6.6%, 생산자물가는 15.9% 상승했다. 1980년 제2차 오일쇼크에 이어 18년만에 최대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공산품 물가는 상승폭이 더욱 가팔랐다. 1998년 2월 당시 세탁비누는 전년 동기 대비 33% 올랐고 배달우유는 16%, 막걸리는 13% 상승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물가였다. 이후 환율이 떨어지면서 물가는 안정됐지만 후유증을 치유하는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강씨는 일단 ‘살아남은 것’ 자체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을 기다렸다.

김대중 정부의 강력한 회생정책으로 경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됐다. 강씨의 회사도 안정을 찾았다. 임금도 과거 수준을 회복했다. 생활이 안정되자 강씨는 큰 결심을 했다.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했다. 당시 주택값은 경제위기로 바닥세를 보이고 있었다. 강씨는 그간 모았던 돈과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 상도동에 140㎡(약 42평) 규모의 아파트를 장만했다. 가격은 2억원대 후반이었다. ‘그래도 부동산이다’는 신화를 강씨도 맹신했다.

5만원의 달라진 가치

다시 시간은 흘렀다. 그렇게 40대를 맞이하고 2002년 월드컵도 지나갔다.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강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제자리에서 맴돌던 상도동 아파트 가격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용산에서 시작된 재개발 바람과 글로벌 경제의 활황이 도화선이었다.

노량진 뉴타운 개발이라는 또 다른 호재도 있었다. 3억원대 초반을 맴돌던 그의 아파트는 1년 사이 6억원대로 치솟았다. 그는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딸은 무럭무럭 자라 중학생이 됐고, 회사에선 임원으로 승진했다. 뛰어오른 아파트 덕에 아내가 차려주는 반찬도 달라졌다.

물론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허탈함을 느끼곤 해서다.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친구가 너무 많았다. 2007년에 들어서자 주식시장은 2000포인트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호황을 구가했다. 몇 달 사이 10배 가까이 오른 종목도 속출했다. 2007년 늦가을, 강씨는 아내 몰래 모험을 감행했다. 아파트를 담보로 주식투자금 5000만원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악수惡手였다. 강씨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을 무렵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본격화됐다. 그의 주식은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2008년으로 해가 바뀌자 강씨는 대출액을 늘렸다.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주식물타기를 하며 본전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렸다. 약간 반등하는 듯 보이던 주식은 다시 고꾸라졌다. 2008년 10월 터진 리먼 사태 때문이었다. 세계경제는 끝을 알 수 없는 침체기에 돌입했다.

그는 1년 만에 주식으로 2억원 이상을 날리고 말았다. 이혼하겠다며 길길이 뛰는 아내를 진정시키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 그는 마음을 다잡고 회사일에만 매진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은 강씨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경제공황의 여파는 그의 회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리해고가 시작됐다.

IMF때도 살아남은 그였다. 누구보다 회사에 충성하며 열심히 일했다. 강씨는 이번에도 살아남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강씨의 착각이었다. 나이 많은 관리자급 인사는 정리 1순위였다. 그렇게 그는 22년간 근무한 회사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1년간 실업자로 방황했다.

다행히 강씨는 일복이 있었다. 경력을 인정받아 중소 식품회사 자재관리부 책임자로 취업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취업을 위해 강씨는 끌어들일 수 있는 인맥•학맥은 다 동원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재취업 뒤 그의 어깨는 다시 펴졌다.

그러나 또다시 시련이 왔다. 그동안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던 상도동 아파트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때 6억원 이상을 호가하던 시세가 4억원대로 주저앉았다. 주식으로 날린 대출금을 빼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얼마 안 됐다. 딸의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아내는 김밥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래도 강씨의 아내는 착한 여자다.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을 때마다 체력을 보충하라며 강씨에게 삼겹살을 구워주곤 했다. 언급했듯 현 직장에서 강씨는 자재관리 책임자로 일한다. 하지만 말이 좋아 책임자지 실제론 창고지기와 다름없다. 일손이 모자라면 직접 제품들을 트럭에 싣기도 한다. 노장의 나이에 체력소모가 만만치 않다.

최근 치솟은 삼겹살값을 생각하면 강씨는 아내 보기가 미안하다. 농수산물유통정보망(KAMIS)에 따르면 2013년 6월 현재 삼겹살 가격은 100g당 1935원이다. 1근(600g) 기준으로 1만1600원이다. 1995년 삼겹살 가격은 100g당 470~480원, 1근에 2800~3000원 정도였다. 가격편차는 더욱 커졌다. 1990년대 중반 삼겹살 가격은 100g당 최저가 400원부터 최고가 580원 정도로 격차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100g당 최저가 1100원에서 최고가 2850원까지 차이가 난다. 시장이 불안정하다는 방증이다.
 

▲ 물가상승으로 1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아빠, 준비 다 됐어. 이제 나가요.” 딸 보람이가 아빠와 데이트를 신청했다. 아내에게 데이트 비용 5만원을 받았다. 생각보다 후하게 줬다. 평소 그는 하루 용돈 1만원으로 활동한다. 사실 1만원 받아봐야 이슬처럼 말라버린다. 담뱃값 2500원과 점심값 6000원을 빼면 여윳돈은 1500원 정도여서다. 식사 후 제대로 된 커피 한잔 마실 여유도 사라졌다. 담배를 끊으면 다소 여유가 생기겠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강씨 부녀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극장에 들르기 전 저녁부터 먹는다. 7000원짜리 설렁탕 두 그릇에 반주로 3000원짜리 소주 한병을 곁들였다. 이후 지하철을 타고 영화관으로 이동했다. 교통요금은 1인당 1150원. 딸이 이끄는 대로 김수현 주연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보기로 했다. 티켓가격은 장당 9000원. 18년 전인 1995년, 승진기념으로 아내와 극장을 찾았던 그때의 기억이 스쳐간다.

서울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1995년 대비 2013년 영화요금은 62.5% 올랐다. 2010년 요금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2013년 영화요금지수 101.1과 1995년 영화요금지수 62.2를 비율로 계산한 수치다. 그나마 영화요금은 덜 오른 편이다. 미용실요금은 95년에 비해 92%가 올랐고, 대중목욕탕 요금은 178% 올랐다. 공공요금 상승률은 더욱 크다. 지하철 요금은 220%, 도시가스요금은 262%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8년새 영화요금 60% 이상 올라

강씨는 영화를 보기 전 극장 라운지에서 잠시 인터넷 검색을 한다. ‘중국 유동성 위기로 증시폭락’ ‘연예사병 안마방 출입’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뿐이다. 영화 관람 뒤 동네로 돌아온 강씨 부녀는 인근 호프집에 마주 앉았다. 이렇게 아빠와 맥주 한잔을 기울일 정도로 성장한 딸이 강씨는 대견하다.

 

강씨 부녀는 생맥주 500㏄ 두 잔과 안주로 마른 오징어를 시켰다. 18년전 아내와 먹은 메뉴 그대로다. 오늘 본 영화와 딸의 학교생활로 이야기가 채워진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강씨는 일어선다. 그런데 ‘아차’싶다. 이미 4만원 정도를 쓴 상태에서 호프집에 들어왔다.

호프집에서 지불해야 할 비용은 맥주값 6000원(500㏄ 한잔 당 3000원)에 오징어 안주값 1만2000원 등 총 1만8000원이다. ‘1995년엔 5만원으로 데이트하고 남은 돈으로 기름까지 넣었는데….’ 강씨는 흘러간 시간이 못내 아쉽다. 그때였다. 난감해하는 강씨의 손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딸 보람이가 카운터 직원 몰래 강씨의 손에 1만원권 한 장을 쥐어준 것이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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