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스마트폰 시대 ‘보라’

생각지도 않았던 휴대전화가 ‘IT 컨버전스의 종결자’로 등장했다. 정보산업의 모든 게 스마트폰으로 통하고 있다. 시작은 애플이었고, 삼성전자가 빠르게 추격했다. 스마트폰 이후의 시장은 어떨까. 현재 구글의 ‘글라스’, 애플 ‘아이와치’ 등 착용하는 통신기기의 경쟁이 붙었다. 빅 데이터, 클라우드 시장의 열기도 뜨겁다.
 

고졸 학력의 괴팍한 천재 스티브 잡스는 소리와 문자를 전달하던 기계를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촉감觸感의 기계’로 바꾸면서 혁명을 만들었다. 이브의 사과가 인류에게 이성異性을 알려주고, 뉴턴의 사과가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면 ‘잡스의 먹다 만 사과’는 스마트혁명 시대를 열었다.

휴대전화가 TV•오디오•영화•데이터를 모조리 잡아먹는 괴물이 됐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총아로 부상한 것이다. 눈과 귀에 의존하는 기성세대에게 휴대전화는 단순히 전화기에 불과했지만 손가락의 촉觸이 좋은 젊은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애인이자, 친구이자, ‘젊은이의 영혼’의 단계로 승화됐다. 잠자리에서 화장실•식당지하철•엘리베이터 어디서든 손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시간 날 때마다 확인하고 액정화면을 쓰다듬는 촉의 중독에 걸려들었다.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이 바로 촉감으로 얻는 정보의 중독이다.

애플 같은 미래의 블랙 스완은…

이 때문에 ‘폴더 시대’ 휴대전화의 강자였던 핀란드의 노키아가 한방에 무너졌다. ‘촉의 시대’를 개막한 애플은 세계 최대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회사로 올라섰다. 촉의 시대가 만들어낸 의도하지 않은 대박이고, 기존의 전통 강자에게는 무서운 ‘블랙 스완’(불가능하다고 인식되는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현상)인 것이다.
 

▲ 스티브 잡스는 소리와 데이터를 전달하던 단순한 기계를 ‘촉觸의 기계’로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기술은 통신과 자동차를 일체화한다. 자동차가 정보를 찾으러 가는 수단이라면 휴대전화는 찾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정보라는 개념에서 보면 어느 하나가 발전하면 다른 하나가 죽을 수 있다. 요컨대 위성통신이 발달하면 정보를 찾으러 가는 수단인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역설적으로 초고속으로 달리는 전기자동차는 인공위성과 통화하는 무전기가 되고, 자동차는 세계 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는 모바일 오피스가 된다. 그러면 자동차가 바로 휴대전화라고 할 수 있다.

석유를 먹는 자동차와 달리 내연기관이 필요 없는 전기차는 굳이 쇠로 만들 필요가 없다. 가정해 보면 철보다 강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탄소섬유로 차체를 만들고, 엔진 부분은 반도체•전자회로로 채워 연비는 10배 키우고, 무게는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자동차는 어떤 기업이든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차체를 만드는 철강회사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회사가 배터리•전자부품을 사서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 전자회사 역시 차체와 배터리를 사서 전기차를 제조할 수 있다. 통신회사가 전기차를 세계와 소통하는 통신기계나 모바일 오피스로 구현하겠다고 생각하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 자동차와 석유회사는 자신의 먹을거리 보존을 위해 당연히 전기차 사업에 뛰어든다.

화학•철강•자동차•통신•전자•석유회사들이 미래정보시장을 사이에 두고 치고받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산업의 경계와 영역이 없어지고 모든 산업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블랙 스완이 될 수 있다. 20년 전 제너럴모터스(GM)는 세계 최고의 회사였고, 애플은 웃음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앞으로 10년 뒤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애플을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어떤 기업이 탄생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가전•PC•휴대전화•게임기 산업의 경쟁에서 생각지도 않던 휴대전화가 IT의 ‘디지털 컨버전스의 종결자’로 등장한 것처럼 미래의 정보산업은 화학•철강•자동차•통신•전자회사들 중 누가 승자의 자리에 등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스마트폰 시대 이후의 미래시장에선 실시간 정보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당장 스마트폰 이후의 시장에서 구글의 글라스, 애플의 아이워치 등 ‘입는 통신기기’가 경쟁에 돌입했다. 음성에서 데이터•동영상 시대로, 이젠 실시간 정보전송•처리가 이뤄지는 상상초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보는 대로 찍고 느끼는 대로 접속하며, 어느 누구와도 어디서든 커뮤니케이션하고 정보검색이 가능한 시대가 눈앞에 왔다.

이 엄청난 정보를 처리할 빅 데이터와 이들을 구름 위 서버에 얹어 놓고 언제 어디서든 찾아서 쓰는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이를 지킬 정보보안솔루션은 지금껏 보지 못한 신산업, 신서비스, 신제품이다. ‘스마트폰의 아들과 딸’의 미래는 이런 그림이다.

이미 미국은 빅 데이터와 클라우딩 시장을 주도해 만들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간 인터넷, GPS위성산업을 국가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다. 상하이上海에 클라우드 컴퓨팅을 전문으로 하는 산업단지가 널려 있을 정도다.

중국은 지금 ‘신의 배’라고 불리는 ‘선저우神舟’ 유인인공위성을 시도 때도 없이 쏘아 올리고, ‘하늘의 궁전’이라고 명명한 우주정거장 ‘천궁天宮’을 만들었다. 이동통신에 가장 중요한 GPS위성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GPS전문위성 ‘북두北斗’도 쏘아 올린 지 오래다. 지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위성산업이 궤도에 오른 셈이다.

세계 정보산업의 스케일과 방향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때문에 IT산업의 메가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면 기존의 최강자도 한번에 무너질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창시자’ 인텔, ‘이동통신의 원조’ 모토롤라, ‘가전의 전설’ 소니, ‘휴대전화의 신화’ 노키아가 한방에 날아간 것도 기업이익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블랙 스완을 잡을 신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익의 규모 아닌 신제품 로드맵이 관건
 

최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에 등극한 삼성전자의 주가가 외국인의 대량매도로 폭락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모든 주가의 등락에는 이유가 있다. 수십조, 수백조원을 굴리는 세상의 흐름을 읽는 대가들은 보고 있지만, 한국이 삼성에 대해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은 ‘추격자의 야성’이 강한 나라다. 1위를 끝내 따라잡는 추격자의 야성은 세계에서 단연 으뜸이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의 역량’은 떨어진다. 한국은 카세트•TV•반도체•노트북•휴대전화에서 일본과 미국을 따라잡는 데는 최고의 능력을 보였다.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선 추격본능을 발휘해 원가와 품질로 승리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전자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익의 규모가 아니다. 미래정보산업을 움켜쥘 새로운 기술, 세상에 없는 신제품 개발능력이 중요하다. 추격자는 ‘이익의 규모’가 주가에 영향을 끼치지만 창조자에겐 ‘신제품의 로드맵’이 관건이다.

소니•모토롤라•노키아•애플 같은 선두주자가 있을 때의 삼성은 분기당 이익규모가 중요했지만 정상에 올라선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다. 정상에 이미 올라선 1등 삼성으로선 모두가 삼성을 잡아먹을 수 있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추격자의 야성으로 똘똘 뭉친 삼성전자의 주식을 팔아 치우는 것은 이익 실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외국인 투자자가 1등에 오른 삼성전자를 보면서 ‘창조의 DNA, 다시 말해 정보산업의 큰 트렌드를 주도할 신제품 창출능력이 2%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도 든다.

결국 ‘스피드 경영’이 아니라 ‘창조 경영’에서 본때를 보여 주는 것이 해법이다. 중간재와 단말기를 팔아서 수십조원의 이익을 내는 모델에서 세계 정보산업의 큰 흐름을 주도해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수백조원을 버는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한다. 과연 삼성이 앞으로 펼쳐지는 스마트폰 이후의 세계를 장악할 수 있을까. 해법은 창조경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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