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민생공약 점검해 보니…

▲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기초연금제도는 공약과 전혀 달라 국민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사진=뉴시스)
대선 기간 민생을 줄기차게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엔 반길 만한 게 제법 많았다. 의지만 단단하다면 팍팍한 민생에 한줄기 희망을 줄 수도 있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반년, 민생공약이 휘청거린다. 의지문제일 수도 있지만 부족한 재원이 골치다. 박근혜 민생공약, 신기루에 불과했던 걸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에는 반길만한 민생공약들이 많다. 새누리당이 명실상부한 제1당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공약들을 이행할 수 있다.”
-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제개혁연구소 소장)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반년,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흐른 지금, 민생공약은 잘 이행되고 있을까. 물론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잘 한다’ ‘못 한다’를 판단한다는 건 무리다. 다만 경과를 보면 정부의 방향키가 목적지를 향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생공약 이행률은 기대치를 한참 밑돈다. 공약 대부분의 기준가 수치가 ‘박근혜 공약집’과는 크게 달라졌다. 당초 취지가 훼손된 공약들도 많다. 

기대치 밑도는 민생공약 이행률

박근혜 정부의 노동 관련 공약은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 고용안정, 일자리 확대 등이다. 일자리 정책은 추진되고 있는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정년 60세 연장’과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은 관련법과 시행령•시행규칙이 4월과 5월에 통과돼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민생법안 1호’로 규정하고 야심차게 추진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은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중 가장 뜨거운 의제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이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은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사내하도급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고용승계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취지는 좋다. 하지만 이 법을 반기는 쪽이 새누리당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노동계는 “이 법은 사내하도급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파견을 합법화할 수 있다”며 “원청기업의 정규직 직접고용을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재계도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원청업체가 아닌 하도급업체 소속인데 서로 다른 기업에 속한 노동자의 임금격차를 차별로 보는 건 오류”라고 맞서고 있다. 이 법은 여전히 논의 중이다.

올 2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아 통과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효과만큼이나 우려도 크다. 정부는 이 법안을 근거로 삼아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년 이상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하면 무기계약직으로 본다’는 규정 때문에 근로기간이 2년 미만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되는 사례가 많아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취지와 다르게 기준 바꿔 물의

다른 노동 관련 공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근로시간 단축과 정리해고 요건 강화, 통상임금 산정방식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여야간 의견 차이로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월 130만원 미만의 비정규직 사회보험료를 100% 지원하겠다는 공약은 50%로 줄어들었다. 3%대 장애인 의무고용 활성화 공약은 청와대조차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가계를 살리겠다며 내놓은 공약도 순탄치 않다.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320만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 지원, 맞춤형 빈곤정책 대상 확대, 기초연금 도입 등이 있다.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불이행자 320만명의 신용회복을 지원하겠다던 정책은 출발부터 삐걱댔다. 정부가 대상자수를 33만명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대상자를 차츰 늘리겠다고는 했지만 그런 말은 애초에 없었다. 게다가 신청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신청자 중 지원대상자로 선정되는 경우도 54.1%에 불과했다. 정부가 문턱을 너무 높여놔서다.

맞춤형 빈곤정책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정책도 삐걱대고 있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를 늘리는 대신 7가지 급여혜택을 쪼개고, 각각의 급여를 기준에 따라 차등지급하기로 해서다.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0% 이하,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이하,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0~50% 이하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지급한다는 식이다. 정부는 수급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성공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원 규모가 비슷하다는 게 문제다. 지원을 받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1인당 지원금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기초연금은 가장 비판이 많은 정책 중 하나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문제를 두고 오락가락 말을 바꾸더니 결국은 통합•관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국민연금의 재정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기초연금의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초 박 대통령은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장애인에게 지금보다 2배가량 많은 기초연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을 차등지급받는 안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충실히 낼수록 기초연금을 덜 받게 되고, 심지어 한푼도 못 받는 이들도 생긴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 근로자•농민 대표가 위원회를 탈퇴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자 또 다른 방안도 내놨다. 소득에 따라 각각의 구간을 나누고 구간별로 10만~20만원의 급여를 차등지급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역시 ‘65세의 모든 노인과 중증장애인에게 지급한다’는 공약과는 거리가 멀다.
 
부동산 공약은 대부분 축소

서민경제와 직결된 부동산 관련 공약은 어떨까. 7월 2일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를 뒷받침하는 조세특례제한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세가 인기를 끌면서 전세물량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출한도가 수도권 5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점도 문제다. 수도권에서 5000만원으로 전세를 구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주택 지분 일부를 공공기관에 팔고 그 매각지분에 대해 월세를 지불하는 보유주택 지분매각 제도는 취지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지분만큼 월세를 내면서 어떻게 부채를 줄일 수 있다는 건지도 모호하다. 더구나 투입예산이 100억원밖에 안 된다. 2억원짜리 주택을 기준으로 시행하면 고작 100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단 얘기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시범사업’이라고 명시했다. 부실채권만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많다.

이미 논의가 끝났지만 시행이 지지부진한 공약도 있다. 교육 관련 공약 중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반값등록금은 정부의 방안이 ‘사실상의 반값’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시행이 요원하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안과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6월 임시국회를 넘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공약 대부분이 제 갈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재원이 모자라서다.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론’이 정작 민생공약의 방향키를 반대로 돌려놓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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