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의 눈물

[CBSi The Scoop 박용선 기자] 직장인들이 오래 일하면 그만큼 성과가 나올까. 딱딱하고 경직된 조직 문화에서 개인의 창의력이 발휘될까. 답은 ‘No’다.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하고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조와 혁신이 나온다. 현재 국내 기업 조직과 문화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 장시간 근무와 상명하복 문화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다.
#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A 사원. 그는 경기도로 출근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버스를 타고 1시간을 넘게 가야 회사에 도착한다.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보통 9시 30분이다. CEO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벅차기만 하다. 일주일 중 하루는 패밀리 데이로 일찍 퇴근할 수 있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너무 일에만 매여 살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생각하곤 한다.

A는 아부를 잘 못한다. 하지만 선배들을 보면 상사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인다. A는 3년차 사원. 현재는 대리•과장•팀장과 함께 일하고 있어 이른바 ‘줄 서기’를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진급하고 성장하기 위해선 줄 서기 문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는 고민에 빠졌다.

최근엔 회계법인에 다니는 회계사 친구가 라인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친구의 말이다. “우리는 SKY 출신이 아니면 상대를 하지 않더라. 내가 D대를 나왔잖아. 그런데 신입사원 환영회를 갔는데, 선배들 중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더라고. 회식을 혼자 하다시피 했어. 일할 때도 상황은 비슷해. 지금 한참 배워야 할 시기인데 선배들이 챙겨주질 않아.”

# 또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B 대리. 그가 다니는 회사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룹 회장이 구속되자 기업 경영시스템과 조직문화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최근 올해 경영계획을 세웠지만 핵심사업 대부분이 방향을 잃었다. 의사 결정 시스템이 ‘오너 단일 구조’이기 때문이다. 활발했던 회사 분위기도 ‘침울’ 모드다. 상사 눈치 보기가 바쁘고, 상명하복의 문화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보통 때는 괜찮지만 지금처럼 위기가 오면 항상 딱딱하고 경직된 조직문화로 되돌아가곤 한다. B는 ‘언제쯤 상사와 소통하며 즐겁고 밝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장시간 근무는 국내 고용 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다. 한국은 1960~1970년 단순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발달하며 생산직 근로자가 대거 늘었다. 당시 많은 노동량은 기업 실적으로 이어졌다.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전기•전자•에너지 등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사무직 근로자가 늘어났다. 이제는 단순히 일을 많이 한다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들은 오래 일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사 보여주기 위한 장시간 근무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주일간 법정근로시간은 8시간씩 5일(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한 52시간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휴일근로(16시간)가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돼 있지 않아 1주일에 최대 68시간을 일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90시간이다.(201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776시간)보다 423시간이나 길다.

 
근로시간이 길다고 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근로시간이 일정 수준에 달하면 일하는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 한국 특유의 ‘직장 상사 눈치보기’도 작용한다. 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상사의 눈치를 보며 퇴근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집중하지 못하는데 효율성이 높을 리는 없다. 직장인들 사이엔 상사가 퇴근해야 부하직원도 퇴근할 수 있다는 게 퇴근의 기본원칙으로 통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용자와 근로자 두 집단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위원은 “근로자는 초과근무가 줄면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쉽사리 근로시간을 줄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기업 입장에선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인력 채용 또는 추가설비 등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근로자와 경영진 등 기업 내부에서 장시간 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 창의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구글은 직원들이 업무시간의 20%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구글의 ‘20% 프로젝트’다. 직원 개인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물론 편하게 쉴 수도 있다. 그래야 나머지 근무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장시간 근무와는 비교된다.

국내 기업들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실 이런 조직문화는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에서 비롯됐다. 오너는 그룹 내에서 절대적인 존재다. 그가 한번 사업 방향을 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무도 ‘No’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내지 못한다. 이런 식의 의사결정 체계는 하부 조직으로도 연결된다. 임원-팀장-과장 등의 의사결정 방법도 같은 형태다. 조직 문화 전체가 상명하복의 의사결정 체계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상명하복’ 문화에서 벗어나야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직장인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창조경제시대 기업문화 실태와 개선과제 조사’에 따르면 ‘상명하복의 경직된 의사소통체계’와 ‘개인보다 조직전체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국내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혔다. 과거 워크 하드(Work hard•열심히 일하기)가 아닌 워크 스마트(Work smart•똑똑하게 일하기) 분위기가 기업 전반에 확산되기 위해선 상명하복의 직장풍토를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원장은 “장시간 근무에서 벗어나 근로자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주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오너 일방적인 의사 결정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국내 기업에서 창조와 혁신을 찾기 힘들 것”이라며 “특히 잘못된 것은 비판하고 서로 견제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기업문화는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쌓인 것이기 때문에 기업이 무너질 정도의 충격이 가해지지 않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brave11@thescoop.co.kr|@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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