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규제완화 논란

‘A(지주회사)→B→C.’ 한눈에 봐도 구조가 단순하다. 대기업 지주회사 체제는 얽히고설킨 순환출자구조에 비해 재무구조가 안정적이다. 그러나 단순한 만큼 총수의 지배력은 강력해진다. 이 때문에 정부는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막기 위해 몇가지 요건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규제가 완화되거나 사라졌다. 어찌 된 일일까.

▲ 국회 정무위원회가 6월 27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순환출자구조금지 등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심사하고 있다.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한진그룹은 지주회사 ‘한진칼’을 설립했다. 한솔그룹은 올 9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준비 중이다. 국내 지주회사는 115개(2012년 9월 기준)에 달한다. 2011년 9월보다 10개가 늘었다. 대기업 중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그룹은 SK•LG•두산•GS•CJ•LS 등 15개에 달한다.

대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이유는 순환출자구조의 단점을 해소할 수 있어서다. 순환출자구조는 그룹의 재무구조가 불안전하다. 복잡한 출자구조 탓에 한 계열사가 부실에 빠지면 그룹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반면 지주회사는 ‘지주회사→자회사’로 지분소유 구조가 단순하고, 비교적 투명하다. 분사 등을 통한 사업분리나 매각도 상대적으로 쉽다.

정부가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과 관계자는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며 “신규 순환출자는 규제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해소하도록 만드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주회사 체제가 그룹 총수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1999년까지 지주회사 설립을 금지했다. 적은 자본으로 다수기업을 쉽게 지배할 수 있어 총수의 지배력 확장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허용했다. 단 규제가 있었다. 총수에게 지배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 설립 요건으로 자회사의 지분 30%(비상장사 50%)을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했다. 부채비율은 100% 이하로 규정했다. 자회사가 인수할 수 있는 손자회사도 동일업종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가 완화됐다. 현재 지주회사의 설립요건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주식소유여건 20%(비상장사 40%), 부채비율 200%다. 자회사가 기업을 인수할 때는 사업관련성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 지주회사의 지배주주인 총수가 적은 돈으로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한 상당수 대기업은 ‘인적분할→공개매수→현물출자’ 과정을 거치며 총수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높였다. 우선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총수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만큼 지주회사의 지분을 확보한다. 이후 분할된 자회사의 지분은 공개매수하고, 이를 다시 지주회사 지분으로 교환하는 방식을 쓴 것이다. LG(2001), SK(2007), CJ(2007)가 이런 방법으로 총수의 지분율을 높였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대기업 현실에 맞춰 규제를 완화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총수의 지배력 확장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며 지적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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