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텐’ 론칭한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

패션 브랜드 ‘탑텐’을 아는가. 자라ㆍ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 브랜드에 도전장을 낸 ‘한국형’ SPA 브랜드다.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탑텐’은 흥미롭게도 ‘가방’을 수출하던 국내 중소기업의 작품이다. 탑텐 성장의 비밀을 쫓아가 봤다.

▲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은 30여년간 쌓은 제조 노하우와 내수시장을 꿰뚫는 통찰력을 무기로 글로벌 SPA 브랜드에 도전장을 냈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 있는 2층 규모의 한 의류매장. 주력 아이템인 티셔츠가 7900원이다. 폴로티는 9900원, 바지와 스커트는 각각 1만4900원, 1만2900원에 불과하다. 한국형 SPA 브랜드 ‘탑텐(TOPTEN)’의 옷값이다. SPA 브랜드 가운데 가장 저렴한 편이다. 글로벌 SPA 브랜드 유니클로보단 20~30% 싸다.

이 때문인지 탑텐의 매장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1호점을 오픈한 지 1년 만에 매장이 52개로 늘었다. 실적도 괜찮다. 올 5월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300억원이다.

한국형 SPA 브랜드의 역습

탑텐의 성장속도는 국내 다른 SPA 브랜드보다 훨씬 빠르다. 이랜드가 2009년 출시한 SPA 브랜드 ‘스파오’는 올 초에야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2010년 론칭한 SPA 브랜드 ‘미쏘’는 올 4분기쯤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제일모직이 지난해 출시한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의 매장은 탑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2개에 불과하다.

탑텐은 이제 국내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SPA 브랜드와 한판승부를 벼르고 있다. 최근 탑텐은 글로벌 SPA 브랜드의 격전지인 명동상권에서 2개의 매장을 오픈하는 성과를 올렸다. SPA 브랜드의 스트리트라고 불리는 명동 하단 라인에 약 100평 규모의 대형매장이 오픈한 것이다. 인근에는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와 H&M이 들어섰다. 탑텐 관계자는 “국내 주요 상권을 장악한 글로벌 SPA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은 괄목할 성과다”고 말했다.

토종 브랜드의 자존심을 살려준 탑텐을 기획한 곳은 어디일까. 일반인에겐 낯선 중견 패션전문기업 ‘신성통상’이다. 흥미롭게도 신성통상의 뿌리는 의류가 아니다. 가방텐트제조업체 가나안상사가 모기업이다.

1세대 섬유수출업 산증인 염태순 가나안상사(당시) 회장이 1983년 설립했다. 그는 나이키•아디다스•노스페이스 등 스포츠 브랜드 수출사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가방 브랜드도 론칭했는데, 1998년 선보인 ‘아이찜’이다. 그런데 이 브랜드가 당시 시장을 주도하던 해외 브랜드 이스트팩과 존스포츠를 밀어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를 계기로 염 회장은 브랜드 론칭에 흥미를 갖게 됐다.

 
염 회장은 기회를 엿봤다. 2002년 법정관리 중이던 신성통상이 눈에 들어왔다. 가나안상사는 신성통상을 인수합병(M&A)해 지오지아유니온베이올젠 등 브랜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가방 수출업체와 패션업체로 승승장구하던 염 회장이 ‘노선’을 바꾼 것은 2009년부터다. 질 좋은 상품을 값싼 가격에 제공하는 세계적인 SPA 브랜드가 그 무렵 국내 패션시장을 서서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신성통상의 전통 브랜드 ‘지오지아유니온베이올젠’을 찾는 이도 갈수록 줄었다. 염 회장으로선 돌파구가 필요했고, 결단을 내렸다.

새로운 SPA 브랜드로 맞대결을 꾀한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도전할 순 없었다. SPA 브랜드를 론칭하려면 대규모 생산능력을 갖춰야 했다. 새로운 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들 소재도 필요했다.

염 회장은 3년 동안 두가지를 주로 준비했다. 먼저 미얀마에 SPA 브랜드를 생산하는 공장을 세웠고, 2011년부터 가동했다. 니트 신소재 개발에도 나섰다. 2010년 한국섬유소재연구소와 니트 신소재 공동개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염 회장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브랜드 ‘G-Knit’를 공동개발했다. G-Knit는 경기북부 지역 니트를 의미하는 한국섬유소재연구소의 브랜드명이다.

신성통상의 디자인과 한국섬유소재연구소의 제품력이 만나 탄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6월 공개한 한국형 SPA 브랜드가 ‘탑텐’이다. 그러나 염 회장을 기다리는 벽은 또 있었다. ‘탑텐’으로 글로벌 SPA 브랜드와 정면승부를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세계시장을 휘젓는 자라H&M유니클로 등과 맞붙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기 때문이다.

염 회장은 두가지 대안을 마련했다. 첫째는 상품력으로 글로벌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강화하는 거였다. 염 회장은 새롭게 개발한 G-Knit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울러 성인 남녀 티셔츠후드티셔츠집업 트레이닝웨어 등 니트 의류를 메인으로 내세웠다.

여기에 캐주얼 가방을 SPA 브랜드 탑텐의 옵션으로 톡톡히 활용했다. 40년 넘게 니트 섬유를 수출해온 신성통상과 가방 제조업체인 가나안상사의 장점을 살린 것이다. 이는 신神의 한수였다. 무엇보다 니트는 유니클로자라H&M이 약한 아이템이었다. 유럽과 일본 소비자는 니트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내 소비자는 니트를 즐겨 입는다.

 
대형 매장 운영 노하우 쌓아야

둘째 대안은 매장구성이다. 복층 구조의 탑텐 매장엔 계산대를 1층에 두지 않았다. 1층에 들렀다 가는 고객을 23층으로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런 치밀하고 신선한 시도는 탑텐의 고속성장을 이끌고 있다. 론칭 3개월 만에 대학로명동홍대강남 등 주요 서울상권을 꿰차더니 백화점의 러브콜도 받았다. 올해 목표는 매장을 80개까지 늘리는 거다.

해외시장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201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쇼핑몰 ‘더 소스몰(The Source Mall)’에 입점할 예정이다.

물론 탑텐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 많다. 취약한 VMD(Visual Merchandiser)가 첫째 과제다. 탑텐의 매장은 소형이 중심이기 때문에 대형 매장을 연출하는 노하우가 부족하다. 탑텐이 글로벌 SPA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VMD 구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런 한계에도 탑텐의 발전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SPA 브랜드답게 상품공급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자체 원단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자체 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해서다. 가격경쟁력 역시 강점 중 하나다.

업계에선 염 회장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탑텐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성통상 관계자는 “탑텐의 탄생은 염 회장의 30여년간 쌓은 제조 노하우와 내수시장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국형 SPA 브랜드 탑텐은 이제 날갯짓을 시작했다. 목표는 야심차다. 자라H&M유니클로와 한판 붙는 거다. 염 회장의 진짜 꿈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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