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전문기업 한섬의 묘한 경제학

강력한 색깔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패션전문기업 한섬. 이 기업 때문에 한 기업은 웃고, 한 기업은 운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코오롱)는 한섬 출신 디자이너의 저력 덕분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한섬을 인수한 현대홈쇼핑은 고전하고 있다. 한섬을 사이에 두고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두 기업, 무슨 이유일까.

▲ 한섬 출신 디자이너의 행보에 코오롱인더스트리FnC와 한섬의 명암이 엇갈린다.
침체기를 맞은 패션시장에서 ‘디자이너 브랜드’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석정혜 디자이너의 ‘쿠론’(가방)과 김재현 디자이너의 ‘쟈뎅드슈에뜨’(여성복)다.

2009년 석정혜 디자이너가 론칭한 쿠론은 2010년 코오롱에 인수됐다. 올해 예상 매출은 전년 대비 200%가량 늘어난 380억원이다. 쿠론의 인기요인은 심플한 디자인과 세련된 컬러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무기다. 로고 없는 가방을 히트시킨 주역이 바로 쿠론이다. 여성복 브랜드 쟈뎅드슈에뜨의 돌풍도 뜨겁다. 김재현 디자이너가 2005년 론칭한 이 브랜드 역시 코오롱이 지난해 초 인수했다. 특유의 ‘올빼미 캐릭터’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쿠론ㆍ쟈뎅드슈에뜨는 ‘인기몰이’ ‘코오롱 인수’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두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패션전문기업 ‘한섬’ 출신이라는 것이다. 석정혜 디자이너는 한섬의 액세서리 디자인실을 거쳤고, 김재현 디자이너는 한섬 여성복 브랜드 ‘시스템’에서 근무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던 두 사람을 영입한 코오롱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한섬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점이다. 코오롱은 최근 4년 동안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코오롱은 패션기업이 아니라 섬유기업이다’ ‘대기업은 여성복에 약하다’는 혹평을 말끔히 씻어냈다.

실제로 코오롱의 수익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0년 3조2411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5조3129억원으로 늘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7%(2010년 2513억원→2012년 2939억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한섬은 과거의 명성을 잇지 못하고 있다. 4년 동안 끊임없이 매각설에 시달리다 지난해 1월 현대홈쇼핑에 인수ㆍ합병(M&A)됐지만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섬은 색깔이 분명한 패션전문기업이다. 디자인을 중시하고 독창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높은 매출을 올리는 저력 있는 기업이다. 이런 한섬을 국내 최고 패션전문기업으로 만든 것은 정재봉 사장(당시)과 문미숙 감사다. 정재봉 사장은 한섬의 경영을 책임졌고, 문미숙 감사는 한섬의 디자인실을 이끌었다.

그런데 최근 한섬에 변화가 생겼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한섬을 인수한 지 1년2개월만에 경영진을 교체했는데, 김형종 한섬 전 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경영권의 배턴을 이어받은 김형종 대표는 28년 동안 현대백화점에서 근무한 현대맨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섬 특유의 조직과 정체성을 살리기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색깔을 넣는데 치중하는 듯하다”며 “한섬의 DNA가 희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이런 행보는 코오롱과 대비된다. 코오롱은 디자인 색깔이 분명한 한섬 출신의 디자이너를 영입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섬 출신 디자이너가 자리를 옮긴 코오롱은 승승장구하고, 이들을 키운 한섬은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시댁은 웃고 있지만 친정은 울고 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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