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을 꿰뚫다

사석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좋겠다. 삼성이나 LG 같은 글로벌 기업이 많아서. 우린 고만고만한 로컬기업밖에 없다.” 진심인가 농담인가. 중국엔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기업이 없는가. 아니다. 우리보다 더 많다.

▲ 경제개방 정책 이후 중국은 세계시장의 거대한 산으로 우뚝섰다. 사진은 최첨단화된 중국도시의 모습.

1978년 중국은 경제노선을 개혁개방으로 전환했다. 이후 민영기업 등장과 직접투자의 허용을 통해 세계경제와 발걸음을 맞췄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경제의 세계화에 가속도를 붙였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동분서주했다. 고성장에 힘입어 이제는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현재 중국경제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2012년말 경제규모는 7조9917억 달러에 이른다. 무역규모는 미국과 1•2위를 다툰다. WTO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무역액은 3조8670억 달러로, 3조8820억 달러로 집계된 미국에 이어 2위다. 그런데 미국 상무부의 발표를 보면 중국의 지난해 무역 총액은 3조8667억 달러로 3조8628억 달러에 그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비약적인 발전이다. 1978년 이후 현재까지 중국의 평균소득은 약 56배 상승했다.

용솟음 친 중국경제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에 이른다. 최근에도 8%대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고속성장을 통해 중국은 세계의 달러를 끌어 모으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3조4426억 달러로 세계 1위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 화폐인 위안화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7월 1일 발표한 ‘위안화 국제화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위안화로 결제된 금액은 세계 전체 무역액의 1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위안화 무역결제는 약 4700억 달러 규모로 5억 달러에 그쳤던 2009년 보다 무려 900배 증가했다”며 “최근 무역결제 및 직접투자 등에 위안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위안화 유동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엄청난 외환보유고와 위안화의 급성장은 중국기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올 4월 글로벌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2000대 기업 순위에서 중국 금융사 공상은행(ICBC)과 건설은행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것이다. 특히 공상은행은 7월 1일 영국 금융 전문지 ‘더 뱅커(The Banker)’가 공개한 ‘세계 1000대 은행’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1000대 은행에 이름을 올린 중국 은행은 모두 96개로 집계됐다. 브라이언 캐플런 더 뱅커 편집장은 중국은행들의 성장배경에 대해 “수년간 미국과 유럽 은행이 침체된 가운데 중국 은행이 해외 사업을 적극 확대했고 중국기업의 해외 진출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넘버원 금융기관 공상은행은 1984년 유한회사로 설립됐다. 현재 중국 내 도시 가구 5곳 가운데 3곳이 공상은행과 거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의 연평균 이익 증가율은 38%에 이른다. 총자산 연평균 증가율도 17.5%다. 공상은행은 우리나라와도 연관이 깊다. 중국기업의 해외공략 초기 시점인 1997년, 서울태평로에 한국 1호 지점을 개설했다. 2002년엔 부산지점을 열었고 2010년엔 서울 대림동에 지점을 선보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유학생이 많은 건국대에 추가지점을 오픈했다.

다시 포브스의 발표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10위권 내 기업 중 모두 4개의 중국기업이 올라 있다. 공상은행•건설은행 외에 중국 농업은행이 8위에 올랐고 정유회사 페트로차이나가 9위에 올랐다. 국가별 기업수를 살펴보면 중국의 위상이 더욱 드러난다. 포브스 2000대 기업 중 한개라도 보유한 국가는 세계에서 모두 63개국이다. 국가별로는 미국기업이 543개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251개로 뒤를 이었다. 중국은 136개 기업을 명단에 올리며 세 번째로 많은 기업을 배출한 국가로 올라섰다.

▲ 중국의 대표 IT기업 화웨이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을 개발했다.

또 다른 유력 경제지 포춘을 보면 성장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포춘에서 지난해 7월 발표한 500대 글로벌 기업 명단을 보면 중국 기업은 모두 73개가 등재됐다. 이는 132개의 기업이 등재된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다. 포춘의 기업순위는 매출액을 근거로 산출하기 때문에 기업간 자존심 경쟁이 보다 치열하다. 미국은 가장 많은 기업을 올리긴 했으나 10년 연속 감소 추세다. 일본은 68개 기업이 등재되는 데 그쳤으며 프랑스(32개), 영국(27개), 한국(13개)은 이미 중국과 비교대상이 아니다.

포천500대 기업에서는 10위권 내에 모두 3개의 중국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전부 에너지 관련 기업이다. 중국의 대표 정유회사 시노펙이 3752억 달러의 매출액으로 가장 높은 순위인 5위에 랭크됐다. 대형 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는 6위, 발전회사인 중국국가전력공사는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언급했듯 매출액이 기준이다 보니 포브스에서 1위를 차지한 공상은행은 포춘 500대 기업에서 54위에 그쳤다. 그러나 전년순위 77위에서 23계단 뛰어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포춘 글로벌500대 기업에서 중국기업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시노펙은 중국 증권시장에서도 시가총액 1위를 달리고 있다. 1998년에 설립됐으며 연간 800만t의 원유를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 최근엔 SK그룹과 3조3000억원 규모의 에너지 합작프로젝트를 성사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 속속 등장

풍부한 노동력과 넘치는 외화 유동성은 중국을 거의 모든 산업분야의 총아로 만들었다. 특히 눈에 띄는 분야가 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이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조강생산량은 7억1650만t으로 전세계 생산량의 46%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생산량 6930만t의 10배가 넘는다. 철강생산을 기준으로한 기업순위를 보면 10위권 내 기업 중 허베이(4280만t 생산), 바오스틸(4270만t 생산), 우한그룹(3640만t 생산), 사강그룹(3230만t 생산), 서우강제철(3140만t 생산), 안산강철(3020만t 생산) 등 6개가 중국업체다.

글로벌 불경기로 철강소비가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의 수출량은 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철강소비 부진에 따른) 공급과잉 우려 속에서도 중국의 공세는 이어지고 있다”며 “올 1~4월 중국의 철강수출량은 전년 대비 1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철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선분야에서도 중국의 성장세가 무섭다. 조선업종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강세분야지만 중국이 등장하면서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1995년 기준 중국선박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1%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설비확장과 지원으로 2005년 13.5%를 차지하면서 한국과 일본에 이은 조선 3위국으로 뛰어올랐다. 이후 선박수주량을 폭발적으로 늘리면서 최근엔 한국과 수위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세계 선박시장 점유율은 우리나라가 38.8%, 중국은 38.4%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에선 선정기준에 따라 중국이 앞서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기술력은 우리나라가 앞선다. 중국이 비교적 단순한 선박인 벌크선에서 강세를 보이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탱커•LNG선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어서다.

최근 중국에서 국내 업체에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의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선박건조는 중국의 조선업체에 맡긴다’는 국수국조 원칙이 한국의 기술력에 의해 무너졌다는 호들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단발성일 뿐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선박을 주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향후 기술을 가다듬고 도전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유명 조선소로는 대형 컨테이너선사 차이나시핑 컨테이너라인(CSCL)과 최대 민영조선업체인 장쑤룽성江蘇熔盛중공업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들어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IT•전자 산업이다. 풍부한 인구와 현대화된 인프라를 앞세워 중국의 첨단업체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중국의 삼성’으로 불리는 화웨이는 올초 삼성전자와 애플의 뒤를 이어 세계 3위 규모의 스마트폰 제조사로 등극했다. 경쟁사인 LG전자와 노키아를 제친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던 회사가 이제는 ‘노키아 인수후보’로까지 떠올랐다.

이미 콜린 가일스 전 노키아 수석부사장은 화웨이의 임원으로 합류한 상태다. 올 6월 화웨이는 두께 6.18㎜, 무게 120g의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 개발에도 성공했다. 기술력 또한 세계 최고수준에 이른 것이다. 올해 화웨이는 5500만~6000만대 규모의 스마트폰 판매를 목표로 한다. 중국 컴퓨터 제조업체 레노버는 전세계 점유율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올 1분기 PC판매 점유율은 휴렛패커드(HP)가 15.7%로 세계 1위, 레노버가 15.3%로 세계 2위다.

이제 숨고르기 해야

그러나 HP는 지난해 1분기 17.7%에서 올해 2% 하락한데 반해, 레노버는 지난해 13.2%점유율에서 올해 2.1% 상승했다. 11%대 점유율인 델컴퓨터는 3위로 처졌다. 업계에선 레노버가 올해 내로 전 세계 PC판매량 1위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중국은 각종 경제지표와 여러 산업군에서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다. 최근 들어 경제성장률 감소와 투자위주 성장전략에 따른 효율성 저하, 과잉공급 등이 대두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철강의 경우 과잉투자에 따른 공급물량 초과로 세계 철강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글로벌 불황과 싸우고 있는 조선업 또한 중소 업체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다. 과잉투자로 우후죽순 업체가 생겼고 그런 만큼 불경기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 중국의 철강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46%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10배 규모다.

경기개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중등소득 함정’을 경고했다. 1인당 GDP가 중진국 수준인 5000달러에서 1만 달러에 이르면 산업고도화 정체, 빈부격차 확대, 부정부패 등으로 발전이 정체되는 현상이다. 현재 중국의 1인당 GDP는 5898달러다. 문제는 또 있다. 신종호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에서 중등소득 함정보다 더 심각한 것은 ‘체제이행의 함정’”이라며 “기득권세력이 체제이행을 거부하고 변혁을 저지함으로써 경제사회발전이 왜곡되고 소득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문제로 떠오른 그림자 금융도 중국의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그림자금융이란 은행과 달리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은 비은행권 금융시장을 말한다. 투기 목적 등 비정상적인 대출이 많아 금융부실화가 우려된다. 금융부실은 필연적으로 기업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도이치뱅크는 중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가 GDP의 4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세계 경제를 긴장시킨 중국 단기금리 폭등 또한 그림자금융에서 비롯됐다. 자금시장의 거품 제거를 위해 중국 금융당국이 돈줄을 움켜쥐자 금리가 폭등한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앞만 보고 달리던 투자정책에 비판적인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 주석의 경제철학이 향후 중국 산업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진핑 정부는 그간 성장위주였던 정책을 대중의 욕구를 파악해 구현하는 ‘대중노선’ 성향과 분배 위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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