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인문학적 고민 담아야”
“건축에 인문학적 고민 담아야”
  • 김미선 기자
  • 호수 54
  • 승인 2013.08.13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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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길 재현하는 건축가 양진석

재개발이 한창인 서울 종로구 청진동 재개발 지역에 피맛길 구현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피맛길 살리기 프로젝트에 나선 주인공은 건축가 양진석. 그는 “청진상점가라는 콘셉트로 피맛길을 재현하겠다”고 말했다. 방송인이 아닌 건축가 양진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방송 노출로 많이 알려진 만큼 오해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양진석은 인문학적 센스가 있는 건축가다.
✚청진동 일대의 재개발이 한창이다. 새로 짓고 있는 대형 건물 사이로 피맛길이 구현된다던데 무슨 말인가.
“광화문 교보타워 서쪽에서 한국 스탠다드차타드(옛 SC제일은행) 본점으로 이어지는 청진동 지역에 대림 D타워·르미에르·그란서울(Gran Seoul) 같은 대형 건물들이 들어선다. 그중 청진 12~16 구역의 그란서울 건축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건물 안에 ‘청진상점가’라는 콘셉트를 집어넣어 피맛길을 재현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피맛길을 어떻게 재현한다는 말인가.
“서울시 도시계획 가이드라인에 따라 교보타워 뒤편에서 종각역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에는 3층의 저층 건물이 올라간다. 이들 사이에 골목을 두고 대형 건물들이 들어선다. 내가 작업 중인 그란서울은 옛 피맛길 40~50m를 차지하고 있다. 건물 1~2층에 전국 유명 맛집들을 입점시켜 새로운 형태의 피맛길을 형성하겠다는 거다. 대로변 건물들과 르미에르·대림 D타워 건물에 음식점과 상점들이 입점하면서 현대식 맛집 골목이 형성되는 거다. 종로의 명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피맛길의 현대적 구현

✚그란서울 건축 설계를 맡은 건가.
“통합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을 맡고 있다. 건축 설계만 하는 것과 달리 조경부터 간판디자인 같은 요소까지 모두 통합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불경기인데도 양진석은 잘나가나 보다.
“아이러니컬한 게 뭔지 아나. 나는 불경기일수록 잘나간다. 부동산·건설·건축 분야는 학연·지연이 얽힌 수주형 사업이라서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좋으면 아무나 뛰어들고 서로 일을 나눠준다. 경기가 어려울 땐 반대다. 비즈니스 하나에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일을 맡기지 않는다.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거 같다.”

▲ 양진석은 그란서울의 프로젝트 매니저(PM)을 맡고 있다.
✚기업과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는가.
“요즘에는 GS건설과 주로 작업한다. 그란서울의 시공사가 GS건설이다. 요즘은 건설경기가 어렵다보니 특별한 솔루션이 필요하다. 나는 이들 건설회사들이 솔루션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청진동재개발을 두고 반대 목소리가 높다. 도시개발에 대한 ‘양진석만의’ 관점을 듣고 싶다.
“개발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환경보호가 수반돼야 한다. 또한 도시개발에 들어가기 전에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긍정적인 도시개발 사례로 들고 싶다. 1960년대 프랑스 고도시 파리에 첨단 미술센터인 퐁피두센터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반대가 엄청났다. 하지만 꼭 필요한 건축이었다. 결국 역사적 명소가 되지 않았나.”

✚왜 명소가 됐다고 생각하나.
“퐁피두센터가 있던 자리는 과거 유흥가 밀집 지역이었다. 유흥가 재개발 차원에서 공격적인 문화정책을 통해 탄생한 게 퐁피두센터다. 개발논리로만 접근했다면 한계에 부닥쳤을 거다.”

✚어떤 접근이 필요하다는 건가.
“인문학적 고민이다. 가령 인사동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해서 초고층 한류타워를 만들고 대형 주차장을 설치하면 되겠나. 물론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도시의 문맥이 깨지게 된다.”

✚난해한 말이다. 도시의 문맥이 깨진다는 말의 행간을 읽기 어렵다.
“인사동 거리 자체가 도시 문맥이다. 개발을 하더라도 기존 인사동만의 공예품·골동품 등 나름의 문맥이 유지돼야 한다. 인문학적 고민이 수반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건축물로 예를 들어줄 수 있나.
“인사동의 쌈지길을 들 수 있다. 쌈지길이 ‘도쿄(東京)의 샹젤리제’라 불리는 오모테산도힐즈처럼 외벽이 덮인 구조였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까. 아니라고 본다. 쌈지길은 인사동 골목길을 그대로 옮겨 놨다. 비가 오면 비를 많고 눈을 맞으면 눈을 맞는 인사동 골목길을 확장한 것이다. 인사동이라는 문맥을 잘 살렸기 때문에 명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 초 오픈한다는 그란서울에는 어떤 인문학적인 고민을 넣었나.
“보존과 개발은 양날의 칼이다. 피맛길의 장소성을 살려야 할 뿐만 아니라 도심재개발을 통한 지역경제도 부활시켜야 한다. 이 두가지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청진동이라는 장소성과 피맛길이라는 역사성, 그리고 구舊도심의 여러 의미를 건축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진석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양진석의 건축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몇가지 키워드가 있다. 일단 편안해야 한다. 철학적이지만 과하지 않아야 한다. 디자인에 눌리는 건축은 지양한다. 예를 들어 고급호텔에 들어갔을 때 과한 인테리어에 주눅 든 적이 없는가.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을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문학적·철학적 고민을 해야 한다.”

개발논리로만 접근해선 안 돼

✚양진석에게 명품 건축은 뭔가.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진정한 웰메이드(well-made), 다시 말해 잘 만들어진 건축물이 명품다. 내 작품에서 꼽자면 2008년 오픈한 용평 포레스트 레지던스를 명품건축으로 꼽고 싶다. 완성된 지 꽤 됐음에도 사용자들 사이에서 만족도가 높다. 지금은 성신여대의 랜드마크가 된 유타몰도 웰메이드 건축이라고 본다. 건축물의 규모를 떠나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하다.”

 
양진석은 상업용 건축물·리조트·주거형 복합단지 등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용평리조트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 알펜시아 트룬 에스테이트뿐만 아니라 잠실 포스코 더 샵 스타파크, 청담 파라곤 등이 그의 작품이다. 신사동사거리의 신사미타워와 성신여대 입구의 유타몰도 그의 손을 거쳤다. 헤이리의 더 스텝(The Step), 쌈지빌딩도 양진석의 주요 작품이다.

✚이스타항공 기내 디자인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행기 기내 디자인의 경우 심사가 까다로웠다. 그래서 ‘착시화’라는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이스타항공 비행기 내부를 소등하면 별자리가 보이도록 했다.”

✚카이스트 뇌연구소, 올림푸스 사옥 등 구현되지 못한 건축 설계 계획안들이 많더라. 안타까웠을 거 같다.
“당연히 아쉽다. 정말 아쉬운 건 내가 만든 작품들이 사라질 때다. 10년 전쯤 전자랜드의 랜드시네마를 디자인했는데 최근 롯데시네마로 바뀌었더라. 초기 멀티플렉스라는 개념이 도입될 때 나름의 콘셉트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서 그런지 아쉽더라.”

✚건축물이 사라진 경우가 많나.
“2000년대 초, 강남 옛 동아극장을 주공공이(ZOOOOZ)라는 신개념 멀티플렉스로 리노베이션 작업을 맡은 적이 있다. 강제규 감독이 의뢰해 야심차게 만든 영화관이었는데 이제는 쇼핑몰로 바뀌었다. 신사동 도산공원 뒤 ‘바포장’이라는 실내포장마차 건물을 설계한 적이 있다. 새로운 개념의 실내포장마차였다. 홍보도 안했는데 해외에서 소개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형체를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자본의 흐름 등 여러 이유로 사라지는 건축물을 볼 때면 아쉽다.”

✚양진석의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
“내 건축 대부분에는 탄생 배경이 있다. 건축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두고 있느냐,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영화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거듭 말하지만 건축물을 만들 때 인문학적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가 중요하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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