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명이 마케팅이다

글로벌 IT기업 구글은 모바일 운영체제(OS) 코드명을 ‘음식’에서 따온다. 애플은 리조트와 동물에서, 소니는 온천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지명에서 제품의 코드명을 가져온다. 이런 코드명은 대중의 친밀함과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신선함을 줄 수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등극한 삼성전자. 이 기업의 코드명은 어떨까.

▲ 코드명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품의 특징을 강조해 친밀함을 주는 것은 물론 대중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어서다.
유통업체들은 때때로 정식명칭을 대체하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를 ‘코드명’이라고 한다. 코드명을 사용한 예는 생각보다 많다. 화장품 E브랜드의 에센스를 ‘갈색병’, S전자업체 에어컨을 ‘김연아에어컨’, 양털부츠 B브랜드를 ‘어그’라고 부르는 것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유통업체들만 코드명을 쓰는 건 아니다. IT업체들도 사용한다. IT업계에서 코드명은 원래 개발단계에 있는 제품의 닉네임이었다. 그래서 제품을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까지만 사용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코드명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업체들이 많다. 제품의 특징을 강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신선함을 줘서다.

이색 코드명으로 대중 관심 받아

올 6월 온라인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소니의 사례를 보자. 6월 27일 브라질 등 해외 IT사이트에 ‘소니 호나미’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소니의 새로운 카메라폰으로 추정되는 코드명과 사진이 유출된 거였다.

언론과 대중은 소니의 신제품 사양을 확인하기 위해 사이트로 몰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눈길을 끈 것이 있었으니 코드명 ‘호나미’였다. 호나미에 담긴 뜻을 파악해 소니의 전략과 제품의 특징을 가늠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코드명 호나미는 일본 나가노長野에 위치한 온천 이름이었다. 소니는 실제로 신제품의 코드명으로 온천 이름을 붙일 때가 많다. 요가(오카야마 유가 온천)ㆍ도고(에히메 도고 온천)ㆍ가가(미야기현 온천) 등이 대표적이다. 소니코리아 관계자는 “코드명이 외부로 알려지면 신제품이 사전에 유출되는 위험부담은 있지만 대중과 언론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코드명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사례는 또 있다. 세계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점유율 1위인 구글이다. 구글은 도넛ㆍ이끌레어ㆍ진저브레드ㆍ젤리빈ㆍ아이스크림샌드위치 등 영미권 사람들이 즐겨 먹는 디저트 음식을 코드명으로 사용한다. 업계에서 좀처럼 사용하지 않은 신선한 코드명이다. 덕분에 구글은 새로운 OS 코드명을 발표할 때마다 언론과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주요 제품군 코드명은 도시 이름이다. 유명 도시부터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까지 다양하다. MS가 1995년 출시한 PC OS 윈도우 95의 코드명은 시카고였다. 1998년 선보인 윈도우 98의 코드명은 미국 테네시의 멤피스였고, 윈도우 NY 4.0의 코드명은 올랜도주의 소도시 데이토나가 쓰였다.

흥미로운 점은 MS의 코드명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발 나아가 도시의 특색을 알리는 전기도 마련했다. 윈도우 95의 코드명 시카고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었지만 당시 범죄의 천국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시카고를 MS는 코드명으로 적극 활용해 도시 이미지를 바꿔버렸다. 이뿐만 아니라 윈도우 98의 코드명 멤피스는 블루스 음악의 도시, 윈도우 NY 4.0의 코드명 데이토나는 자동차 경주의 도시로 새롭게 거듭났다.

MS가 도시 이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 반도체 업계 1위 인텔은 마을ㆍ관광지 등 지명을 2000년부터 사용해오고 있다. 인텔은 2006년 센트리노 듀오 프로세서를 출시하면서 내부 코드명으로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도시 ‘나파’를 선택했다. 덕분에 전 세계인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가 와인생산지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글로벌 기업 못지않게 코드명 작명에 골몰하는 국내 기업은 어떨까.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를 보자. 삼성전자는 사업부마다 코드명이 다르다.

삼성전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사업부는 주로 그리스 신화를 활용한다. 엑시노스5 옥타(엑시노스5410)의 코드명 ‘아도니스’가 대표적이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신화 속 사이프러스 왕 키니라스와 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미소년이다.

또 다른 모바일AP 모델의 코드명은 아레스ㆍ헬렌이다.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로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이고, 헬렌은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트로이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의 코드명도 그리스 신화와 관련 있다. 브랜드 엑시노스는 그리스어 Exypnos와 Prasionos를 합성한 것이다.

삼성전자 코드명이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탄생하는 건 아니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는 코드명을 와인에서 따온다. 지난해 1월 미국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선보인 삼성 5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의 코드명은 ‘그랑크루’(GrandCru)였다. 그랑크루는 1등급 포도밭을 가리키는 와인전문용어다.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는 앞서 2006년 출시한 TV의 코드명으로 포도주 이름 ‘보르도’를 채택한 바 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코드명은 단순하다. 알파벳이 전부다. 갤럭시S4 개발 코드명은 ‘J’고, 갤럭시노트3 코드명은 ‘H’다. 업계에서는 J는 전반기에서 전前을 뜻하고, H는 후반기에서 후後를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발음하기 쉽고 표기가 간결한 명칭을 코드명으로 정한다”면서도 “코드명은 편의상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의미를 담고 있든 담고 있지 않든 코드명은 이제 전략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단순 제품 홍보를 떠나 새롭고 독특한 것으로 사람의 이목을 끌기 때문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이 코드명으로 지역ㆍ음식ㆍ온천 이름을 활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과 제품의 색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적인 코드명 있었으면 …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어느덧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서초사옥에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외국인이 방문한다. 삼성전자의 로고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삼성전자의 제품을 가까이 향유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기 위해 기꺼이 한국을 찾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제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삼성전자의 제품 코드명이 한국적인 것이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노니스ㆍ아레스ㆍ그랑크루도 좋지만 우리 지명, 우리 상품을 코드명으로 활용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그래서 나온다. MSㆍ인텔ㆍ소니의 사례에서 보았듯 맛있고 특이한 코드명이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코드명이 마케팅인 시대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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