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12년 갈길 먼 금융지주회사

▲ 금융지주회사의 문제점이 커지고 있다. 금융지주회사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에 금융지주회사가 등장한 지 12년지 지났다. 하지만 설립 초기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와 수익성 개선의 효과는 크지 않다. 오히려 금융지주회사의 문제점에 대한 논란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금융지주회사가 선진화되기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얘기다.

금융지주회사는 은행ㆍ증권ㆍ보험 등 금융계열 자회사의 주식을 보유해 자회사의 경영을 지배ㆍ관리하는 회사다. 우리나라의 금융지주회사는 순수지주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순수지주회사는 영리 목적의 업무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금융지주회사가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되면서부터였다. 2001년 3월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시작으로 금융지주회사의 본격적인 설립이 시작됐다. 금융지주사를 통해 여러 계열사를 하나의 기업처럼 관리하면 정보공유ㆍ통제시스템 통합 등을 통한 비용절감의 내부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자회사 사이의 정보와 업무능력 공유를 통한 복합상품 개발ㆍ교차판매 등 수익증대의 외부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이한 점은 국내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이 정부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부실 금융기관을 인수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금융지주회사 설립에 나섰다. 정부는 은행 대형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금융지주회사법을 제정했다.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는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국유화된 5개의 금융회사 경남은행ㆍ광주은행ㆍ평화은행ㆍ한빛은행ㆍ하나로종합금융회사를 통합해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켰다.

국내에 금융지주회사가 도입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 국내 금융지주회사는 12개로 늘었다. 이 가운데 10개사가 은행지주회사다. 비은행금융지주회사는 2개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지주회사는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은행 중심의 지주회사체제는 심화됐다. 실제로 17개 국내은행 중에서 7개 시중은행과 6개 지방은행 등 13개의 은행과 농협은행과 산업은행 2개의 특수은행이 지주자회사다. 규모 면에서도 은행의 비중은 막대하다. 지주회사에 포함된 은행 자산은 국내은행 전체 자산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를 만들면서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와 수익성 개선 효과는 미미하기만 하다. 해외 진출을 활성화하고 전문 투자은행을 육성하겠다던 금융지주회사 초기의 목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은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지점과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정도로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해외 금융회사의 인수합병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행한 경우는 하나은행과 국민은행 2곳에 불과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금융지주회사 성과

오히려 국내 은행간 인수합병(M&A)과 은행의 금융지주사 전환으로 은행의 시장 독과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금융지주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지배구조 갈등노사관계의 갈등심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 중심의 국내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국제기관의 평가도 좋지 않다.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지난 4월 국내 은행ㆍ보험ㆍ증권 등을 대상으로 금융부문 평가프로그램을 실시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은행 중심의 국내 지주회사와 관련된 법률체계가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해 통합적인 위험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미국의 경우 은행지주회사법이 은행ㆍ보험사ㆍ증권사 등 자회사에 일괄적으로 적용되지만 우리나라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 보험법 등 각각의 개별법이 적용돼 금융지주회사 차원에서의 일괄적이고 통합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은산분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금융기관 가운데에서도 은행과 비금융회사를 분리시키는 은산분리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미국 대공황 이전 은행이 자본을 앞세워 경제적 영향력을 기업 활동에 행사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은행과 산업을 분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비교적 광범위한 금산분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재벌 기업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금융 계열사를 운영할 경우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로 인한 은행의 사금고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금융 산업 전체를 산업에서 분리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적용되는 법률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업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는 비교적 강한 편”이라며 “각각의 개별법으로 분리된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일괄적으로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보험법과 금융지주회사법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지주회사법과 다른 개별법과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해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글로벌 금융지주회사와 국내 금융지주회사의 차이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익구조에서도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회사의 수익구조는 지나치게 이자수익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수익의 절반이상이 자산운용과 자산 관리를 통해 창출하고 있다. 규모가 큰 소비자금융을 통해서는 안정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상업은행을 통한 기업투자, 상품개발을 통한 자산관리 등 수익구조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국내 지주사는 수익의 약 80% 이상이 이자 수익과 수수료 수익에서 발생한다. 상품개발보다 상품판매의 비중이 높아 단순한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십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며 금융그룹의 모습은 갖추고 있지만 은행부문과 비은행부문의 불균형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이다.

한상일 한국기술대학교 교수는 “국내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사업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이것은 재무구조의 단순성, 자금 운영과 조달의 단순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는 영업 형태와 수익구조의 단순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내 금융지주회사의 수익은 이자 이익과 수수료 이익에 집중돼 있다.
조직체계의 구조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지주회사는 수평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금융지주회사의 조직체계는 수직적 구조로 돼 있다. 금융지주회사의 과도한 영향력으로 인해 자회사는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영구조의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미국 금융지주회사의 대표는 업계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국내 금융지주회사는 은행과 금융권에서의 실무경험이 많은 인물이 대표에 오르는 경우가 적고 정부 관료 출신이 대표를 맡는 경우가 많다.

수익의 80% 이상 이자 수익에 편중

업계의 실질적인 경험을 쌓은 인물이 아닌 정책 경험이 많은 인물이 대표를 맡고 있다. 이런 경우 실질적인 경영 전문성은 떨어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장의 권력은 강화되고 있다. 정부의 인사개입이 권력 집중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한상일 교수는 “최근 금융지주회사가 수익성과 운영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의 어려움이 국내금융지주사의 시스템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경영구조의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며 “전문성 있는 인사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는 장치와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ksg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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