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는 窓

6월 국회 때 6일간에 걸쳐 ‘을 살리기 입법 촉구’ 단식농성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국회의원이 다루는 법안 하나하나가 이들의 희망을 무너뜨리는 비수가, 때론 생명의 동아줄이 되기도 했다.

▲ 6월 28일, 단식농성 중인 윤후덕 의원이 상인들 지지 발언을 하는 모습.(사진=뉴시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최근 경제민주화 논의를 일단락 짓고, 경기부양에 올인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꾸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현 부총리는 “기업들이 불확실하게 느끼는 부분이 경제민주화”라며 “이런 우려를 하반기에는 해소해 경기를 회복시키겠다”고 말했다. 경기회복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경기회복을 막는다는 식의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는 성장의 기반이다. 세계사史를 봐도 그렇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땀을 흘린 만큼 나라는 부강한다. 을乙을 위한 나라에서 국가경쟁력이 살아나고 지속가능한 성장도 가능하다.

6월 국회 때 6일간에 걸쳐 ‘을 살리기 입법 촉구’ 단식농성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을들의 애절한 사연을 들을 땐 단 며칠간의 배고픔이 잊힐 정도였다. 국회의원이 다루는 법안 하나하나가 이들의 희망을 무너뜨리는 비수가, 때론 생명의 동아줄이 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법은 주로 경제개발 단계에서 제정됐다. 그래서 성장·자본·갑甲 중심으로 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이제는 함께 사는 세상, 국민행복시대로 나가야 할 때다. 을을 살리는 정책과 입법이 절실한 이유다.

인적이 끊긴 새벽까지 편의점을 강제로 영업하게 만드는 계약서를 우리 법은 그동안 그대로 뒀다. 불공정 행위를 갑이 자행해도 우리 법은 갑의 편만 들어줬다. 재벌기업은 그들의 2세가 세운 작은 비상장 기업에 수십년 동안 일감을 몰아줘 재산을 불렸다. 이런 부정한 일이 아무런 통제도, 제제도 없이 자행되면서 우리 사회는 분열됐다.

이제 스타트 끊은 경제민주화

이제는 변해야 한다. 전월세에 사는 사람들도 잘 사는 세상이 돼야 한다. 전세 보증금과 월세가 너무 많이 올라가지 않도록 관련법을 제정해야 한다. 대리점·가맹점을 하는 사람들에게 본사가 함부로 물량을 밀어내고, 24시간 철야영업을 강요하며, 부당한 위약금을 물리는 ‘갑질’을 막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살기 어려운 화물운송·건설기계 노동자에게는 최저운임을 보장하고, 과적운행을 강요당하지 않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하우스푸어가 은행빚과 강제경매에 내몰리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염원 덕분에 올 6월 국회에서 을을 위한 여러 법안이 통과됐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막판에 실효성이 약해진 부분은 다듬어야 한다. ‘경제민주화 입법’이 마무리됐다는 정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을을 위한 경제민주화는 갈 길이 아직 멀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다음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경제민주화 법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6월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남양유업 방지법(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기업 순환출자 금지 법안, 제2금융권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 강화 등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정리해고 요건강화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상설특검제·특별감찰관제 도입을 담은 검찰개혁법, 보육료·양육수당 국고지원 비율을 높이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의 통과도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을을 위한 경제민주화 작업은 스타트를 끊었을 뿐이다. 지금까지의 작은 성과에 만족하면 경제민주화 바람은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윤후덕 민주당 의원 yoons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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