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파트5] 전기요금 올리면 블랙아웃 우려 사라지나

▲ 계절마다 블랙아웃과 전기요금 인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전기료를 또다시 인상할 조짐이 감지된다. 요금을 올려 전기사용을 억제하면 블랙아웃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국민은 이 논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린 게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력산업기반기금이라든지 절전규제 등을 통해 전력 수요관리를 해왔다. 앞으로는 전기요금체계를 합리화해서 전력피크 수요조절 방안을 검토하겠다. 10월 중에 요금체계를 합리화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8월 7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했던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피크시간대와 경부하시간대의 요금차이는 당연하다. 기업이 경부하시간대에 조업을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전력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국민 대다수는 ‘전기료가 또 오르겠구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여당에선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 전력대란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서민은 안심할 수 없다. 올해 초에도 정부는 전기요금을 더 이상 안 올릴 것처럼 하더니 4%를 기습적으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최근까지 전기료는 약 20% 인상됐다. 폭탄이 따로 없다. 서민이 전기요금 인상에 민감한 것은 어쩌면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정부 탓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싼값에 전기를 잘 써왔으니 현실화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을 게다.

문제는 전기요금만 올리면 블랙아웃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전기요금과 블랙아웃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업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안고 있어서다. 더불어 온난화 문제까지 겹쳐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전기요금을 올린다고 블랙아웃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다.

 
먼저 국내 전력소비량이 가장 높은 분야는 산업용과 상업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집계한 부문별 전력소비량 비중을 살펴보면 2002~2011년 주택용 평균전력소비량은 18.8%였다. 매년 20%를 넘어간 적이 없다. 반면 산업용은 매년 50% 이상이었고, 평균전력소비량은 51%였다. 상업용은 평균 30.2%에 가까운 전력을 소비했다. 나머지가 기계전자 부문(16.4%)이었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총 전력량의 80%가 넘는 전력을 산업용과 상업용으로 소진한다는 얘기다.

산업용 전력 중에서도 제조업(특히 기계ㆍ장비와 석유화학) 분야의 전력소비량이 48.7%로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하계ㆍ동계피크의 부하 비중은 산업용이 각각 49.5%와 47.7%로 가장 높았고, 상업용은 27.6%와 28.5%였다. 주택용은 10.9%와 11.6%로 비교적 낮았다. 계절별 전력부하가 주택의 전력소비량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전기료 인상 불안 언제까지

이 때문에 전력소비량과 부하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윤상직 장관의 말처럼 정부는 아직까지 산업용 전기료를 획기적으로 올리기보다는 시간대를 조정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재계는 벌써부터 “전기요금 인상은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전기요금 인상을 막고 있다. 국민이 전기요금 인상 얘기가 나올 때마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제대로 건드리지 않는 정부를 지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낮은 산업용 전기료를 쫓아 한국으로 들어오는 해외기업까지 늘고 있다. 산업자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2008~2012년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비율은 매년 증가했다. 특히 올해 4월 일본 화학기업인 도레이첨단소재가 경북 구미공단에 탄소섬유 공장을 짓겠다며 2년간 약 600억원의 투자를 결정한 것 역시 낮은 전기요금 때문이었다. 이 기업은 2011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전기요금이 일본의 절반 수준이고 중국보다도 30~40% 싸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석유화학 분야는 전력소비량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많은 제조업이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1년 5억3000만t에서 2010년 6억6800만t으로 늘었다. 증가율은 같은 기간 3.6%에서 9.8%로 껑충 뛰었다. 이 중 석유화학 분야는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9.9%를 차지해 금속제품(13.4%)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전력소비량도 중요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면 온난화가 가속화된다. 그러면 전력소비량이 다시 늘어 블랙아웃 우려가 커지고 전기요금이 인상된다. 문제는 실제로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7~8월 평균기온은 10년 전인 2003년에 비해 각각 1.7도, 4.3도 더 높았다. 겨울에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평균기온은 2003~2004년에 비해 각각 -4.8도, -0.8도 더 낮았다. 점점 여름은 폭염, 겨울은 혹한의 날씨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냉난방기구 사용량이 증가하고, 봄과 가을은 사라지면서 블랙아웃 공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블랙아웃 공포가 나타나면 전기료 인상 논의도 다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면서 온난화로 인한 악순환은 가중되고 있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화력발전은 물론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원전도 마찬가지다. 환경전문가들은 “우라늄을 채굴하고 핵연료로 제조ㆍ가공하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며 “원전에서 냉각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다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LNG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적다는 게 중론이다.

정리해보면 블랙아웃 공포와 전기요금 인상은 악순환의 고리로 얽혀 있다. 싼 전기료를 바탕으로 전기를 펑펑 써대는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문제가 한꺼번에 맞물려 있다는 거다.

전문가들이 ‘산업용 전기료 인상과 탄소세 부과를 통해 전반적인 전력소비량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승래 한림대(경제학) 교수는 7월 초 열린 ‘대한민국 행복에너지 탄소세 입법공청회’ 기조연설에서 “에너지 세제 강화 과정은 에너지 절약으로 온실가스를 직접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미래의 친환경기술개발을 촉진해 간접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며 탄소세 필요성을 강조했다. 

▲ 블랙아웃 위기의 원인은 대기업이 싼값에 산업용 전기를 펑펑 써댔기 때문이다.(사진=뉴시스)
전기료 인상 명분 있어야

악순환은 단순히 수급조절과 국민발전소 같은 캠페인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최근 유례없는 폭염에도 전기 아껴야 된다는 정부의 엄포에 국민이 에어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게 된 건 무작정 산업용 전기료를 낮춰준 결과다.

이처럼 ‘전기 먹는 하마’들에게 적절한 전기료를 부과하지 않는 한 정부가 아무리 전력수요계획을 잘 세우고, 국민발전소 캠페인을 벌여봤자 블랙아웃과 전기료 인상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력소비량을 줄이고, 전기에만 집중된 에너지소비구조를 다변화하며, 친환경 전력생산 구조로 변경하는 것이 먼 미래를 위해서도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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