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뉴타운 해제지역 가보니…

올 6월 13일 창신ㆍ숭인 재정비촉진지구에 대한 뉴타운 계획이 백지화됐다. 뉴타운 구역 중 일부가 해제되거나 부분손질된 경우는 있었으나 지구 전체가 해제된 곳은 창신ㆍ숭인뉴타운이 처음이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개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주민이 상당수라서다.

▲ 부동산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뉴타운 구역이 해제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을 원하는 주민도 많아 갈등이 일고 있다.<사진: 뉴시스>

“지금 아파트 가격이 바닥이야, 바닥. 뉴타운 추진해서 뭘 어쩌자는 거야!”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왜 맘대로 결정하고 난리야!”

8월 12일 종로구 창신3동주민센터 강당. 서울시에서 마련한 창신ㆍ숭인 뉴타운지구 해제 관련 설명회에 참석한 150여 주민은 흥분해 있었다. 해제가 결정됐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추진위원회 측과 해제를 환영하는 비상대책위 측이 나뉘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혼란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2007년 4월, 창신ㆍ숭인동 일대 84만6100㎡에 대해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 계획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주민들은 희망에 들떴다. 기반시설이 들어서고 주택이 정비되면서 재산가치가 오를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험악해진 설명회장

그러나 이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주민들은 ‘돈 들여 개발해봐야 손해’라며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측과 ‘그래도 개발을 추진해 재산증식을 도모해야 한다’는 추진위원회 측으로 나뉘었다. 중심을 잡아야 할 서울시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며 주민혼란을 부추겼다.

 

결국 뉴타운사업 반대파는 창신ㆍ숭인 지역 토지ㆍ주택소유자 30% 이상의 동의를 얻어 올 4월 서울시에 뉴타운 해제를 신청했고, 6월 13일 전격적으로 해제가 결정됐다. 서울시 종로구청은 8월 8일부터 13일까지 4회에 걸쳐 주민설명회를 진행했다. 해제 이후 지역관리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설명회장은 이해관계에 따른 주민갈등 표출의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설명회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주요인사 소개를 마친 뒤, 종로구청 도시개발과의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질 때까지만 해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마지막 질의ㆍ응답 시간이 뇌관이었다. 개발에 미련이 남은 추진위 관계자가 “감정평가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사업성이 충분한 것으로 나왔는데, 왜 맘대로 계획을 철회했냐”며 불만을 토로하자, 반대측 비상대책위 관계자는 “이익이 된다면 우리가 왜 안하겠나, 빚내서 아파트 지어봐야 가격만 떨어지고 재산만 반토막 난다”고 맞받아쳤다.

양측의 고성이 이어졌고 일부 주민은 멱살잡이까지 했다. 당황한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지금은 찬반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중재에 나섰으나 흥분한 주민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뉴타운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이던 2002년 처음 기획됐다. 취지 자체는 좋았다. 일반적인 재개발ㆍ재건축의 경우 주택중심으로만 추진되면서 난개발을 야기했다. 민간주도 사업이다 보니 기반시설을 세우지 못한 탓이다. 뉴타운은 낡은 거주지를 허물고 새 주택을 짓는다는 맥락에선 재개발ㆍ재건축 사업과 비슷하지만, 도로 등 공공기반시설의 개발계획이 포함되면서 주민의 호응을 얻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당시 시장)은 뉴타운 사업구역으로 은평ㆍ길음ㆍ왕십리 등 34곳을 처음 지정했다. 지역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택가격이 수직상승했음은 물론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2006년 지방선거 유세당시 ‘뉴타운 50곳 추가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배턴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와 이후 이어진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뉴타운 열풍은 된서리를 맞았다. 결국 2011년 11월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임기 내에 새로운 뉴타운 지정은 없을 것”이라며 사업종료를 선언했다. 이후 필요에 따라 뉴타운 구역 중 일부가 해제되거나 부분손질 됐다. 그러나 지구 전체가 해제된 곳은 창신ㆍ숭인뉴타운이 처음이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매몰비용 청구도 논란이 됐다. 매몰비용이란 사업 진행을 위해 그간 투입된 경비ㆍ노력ㆍ시간 등을 일컫는다. 오형근 창신뉴타운 비상대책위 사무국장은 “뉴타운과 관련한 매몰비용에 대해 서울시는 어떤 보상안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확답을 드리기 어려운 문제”라며 “도면설계라던지 기타 서류구비를 위해 쓰인 돈에 대해선 매몰비용으로 인정할 수도 있겠으나 회의를 위해 차 한잔 마신 비용까지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서울시는 창신·숭인뉴타운 지구해제와 관련한 주민설명회를 4회에 걸쳐 진행했다. 그러나 설명회장 분위기는 녹록치 않았다. <사진: 종로구청 제공>

서울시는 지난해 1월 박원순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 발표 이후 구역별 사업성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뉴타운ㆍ재개발ㆍ재건축 구역 571곳 중 선별된 308곳에 대해 실태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가 끝난 구역은 138곳이다. 서울시는 이중 81곳의 개발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계속 추진하기로 결정한 곳은 3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구역은 주민의견을 좀더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뉴타운ㆍ재개발ㆍ재건축 실태조사는 올 연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아직 조사 중인 구역이 다수인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해제지역은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 뉴타운은 추진이 미진한 경우 서울시에서 직권으로 해제할 수도 있지만, 창신ㆍ숭인지구처럼 개발 윤곽이 잡혔던 곳은 주민투표를 통해 해제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주민투표를 통해 해제가 된 곳은 수색ㆍ증산뉴타운 내 증산1구역, 방화뉴타운 지구 내 방화 4구역 등 여러 곳이 있다. 물론 민주주의 원칙를 따르자면 투표결과가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뉴타운은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재산권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뉴타운 사업을 추진 또는 해제함에 있어 반대편을 끌어안으려면 충분한 설명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명자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태현 창신뉴타운 추진위 사무국장은 “해제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입증 자료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사업이 중단되니 어안이 벙벙한 것”이라며 “뉴타운 해제는 되돌릴 수 없다 하더라도, 뜻이 맞는 주민들을 모아 부분적인 재개발을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 Issue in Issue | 뉴타운 해제 후 대안은…

‘마을공동체 만들기’ 좋은 솔루션

뉴타운이 해제된 구역은 추후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해제구역 주민이 원할 경우 주거환경관리, 가로주택정비, 리모델링 활성화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한 대안사업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주거환경관리사업이란 단독과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의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공동이용시설을 확충해 주거환경을 개량ㆍ정비하는 사업이다. 기존의 전면 철거형 재개발ㆍ재건축 사업과는 구분되며 주거지 재생사업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주민 50%가 희망할 경우 추진이 가능하다. 대표 사례로는 성북구 장수마을, 강동구 서원마을 등을 들 수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란 노후ㆍ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구역에서 종전의 가로街路는 유지하면서 소규모로 주거환경 개선작업을 하는 것이다. 가로주택정비와 관련한 조합을 구성하기 위해선 소유자의 90%, 면적의 3분의 2가 찬성하면 된다. 서울시는 증축ㆍ개량 등을 통해 주거환경 리모델링을 지원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이다.

이외에 ‘마을공동체 만들기’사업 역시 뉴타운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주민 스스로 일상 생활환경인 삶터, 일터, 쉼터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풀뿌리 생활공동체 운동이다. 획일화된 개발보다는 지역의 특색과 전통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둔다. 지난해 서울시는 마을공동체 사업에 총 1340억원을 투입했으며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도 개설했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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